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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온달관광단지.온달 동굴.온달관

 

단양군 영춘면은 육지속의 섬으로 불려진 마을로 90년대 초 영춘교가 건설됨으로서

육지마을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이곳 영춘면은 한때  단양의 매포와 여주의 이포 서울 마포와 함께 한강줄기의 4대포구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소금배도 종종 올라왔다고 함 노인들에 의하면 곡식과 물물교환도 했다고 한다

영춘면에는 60년대까지만해도 2만여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4천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단양에서 영춘면으로 가는 길은 내내 남한강을 끼고 달리며, 때로는 강가에 기암절벽이 시선을 압도하기도

하는 대단히 수려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영춘면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방향을 틀어 구인사로 향하다

보면 거대한 기와의 물결이 화려한 온달관광지 입구에 오른다.

 

이곳은 고구려의 명장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테마로 한 온달전시관을 비롯하여 온달산성,

온달동굴 등 명승지를 모아놓은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떡 벌어진 풍채를 자랑하는

드라마세트장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는 SBS드라마 [연개소문]과 MBC드라마 [태왕사신기], 최근 KBS의 [바람의 나라]와 [천추태후]까지

드라마 대작들이 연이어 탄생하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사진이 생동감 있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 드라마 촬영 당시 사용된 의상이라던가 소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국풍의 이국적인 정원도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풍스러운 홍등이 소담스럽게 매달린 복도를 지나 아담한 연못 풍경을 만나고, 무지개처럼 휘어진 다리를

건너 여인네의 치마폭처럼 활짝 기와를 펼친 정원까지 거닐어보면 현실은 사라지고 꿈 같은 시간만이 남아

영원히 헤어나오질 못할 황홀감이 느껴진다.

 

세트장에서 850m를 걸어 오르면 온달산성에 이르게 된다.

972m의 온달산성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고구려와 신라의 전투가 치열했던 전적지이기도 하지만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 지하에서 약 4억 5,000만년 전부터 생성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온달동굴은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760m인 석회암 천연동굴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오랫동안 동굴 안을 오가던

원시의 바람이 상쾌하게 몸 안으로 밀려들고 신비로운 자태의 종유석들은 동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출처 : 단양군 문화관광>

삼족오 설화의 시원지는 고대 한반도이며 고구려에서 가장 화려하게 부활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무용총, 각저총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고분벽화 속의 사신은 동, 서, 남, 북을

지키고 있으며 사신의 중심에는 삼족오가 있다. 이는 즉, 삼족오가 고구려 시대의 상징이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보이며 역사드라마 주몽에서 신격화된 삼족오는 고구려인들에게 통치철학의

이념처럼 강조되었다. 해의 정령신인 삼족오는 우리 문화의 구심점으로 인식되어 아름다운 현실문화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은 가장 위대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원형의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삼족오는 천손(天孫)의식을

갖고 있던 한민족 고유의 상징이 되었다.

연개소문 세트장들의 모습

연개소문

고구려말기(603년~666년5월) 장군이자 정치가

단재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를 근거로 2006년 7월 8일 ~2007년 6월 17일까지

총 100부작 대하드라마를 SBS에서 방영하였다

 

위는 진부인 처소

진부인은 원한을 품은채 미치광이 기질이 다분한 양광이 왕위에 오르도록 돕기도 했다

양광은 아버지 수문제를 살해하고 그녀를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진부인은 양광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시대 갑옷과 무기들

건물 중에는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곳이 더러 있는데, 촬영 소품부터 고구려의 전통 복식에 

 관한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촬영세트장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멋을 풍긴다.

연못과 정자 주변에 조성된 정원은 한국식보다 중국식에 가까운 형태를 띠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홍불화의 처소

연개소문의 첫째부인 홍불화 이밀 이라는 인물이 동의족이라는 점에 착안했고 따라서

홍불화가 이화로 바뀐 것은 이러한 비난을 피하기 위한 작가의 정치로 보인다

이연저택

당고조 이름이 이연(566~~635)자가 숙덕이다

당태종이 된 이세민의 아버지로써 9년간 제위 하다가 그의 아들 당태종 이세민의 

강요로 황위를 선양한 후 70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양현감 저택

수양제의 2차 고구려 원정에서 예부상서 양현감은 여양에서 보급물자 운송의 최고 책임자로 

있다가 이민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양제의 폭정 타도를 선언하며 반란을 일으키나 실패한다

촬영세트장 동선이 온달동굴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 동굴은 《동국여지승람》에 ‘남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산 아래에 있는 동굴이라 하여 ‘성산굴’이라고도 불렸으나, 현재는

‘온달동굴’로 불리고 있다.

온달동굴(천연기념물 제261호)

온달관광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온달동굴은 하부고생대 조선누충군 막골층 석회암으로

주굴의 길이가 693 미터, 자굴이 길이는 832 미터로 북서-남동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동굴 내부에는 종규관, 종류석, 석순, 석주, 유석, 휴석, 동굴방패, 커튼, 베어컨시트와

일부 구간에 소규모로 동굴진주, 석화, 곡설, 부유, 방해석, 박스윅 등 다양한 동굴생성뭃이

2차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동굴형성에 주된 영향을 미친 수많은 절리면 또는 단층면 등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가지굴 형성에 크게 기여한 소규모 단층과 습곡구조 등이 모두 지질구조와 관련되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와 충북지방의 동굴들은 거의가 석회 종류동굴이라  그동굴이 그동굴 같다

동굴의 종류는 동굴이 발달한 암석의 종류나 동굴의 생성원인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암석의 종류 즉, 석회암이나 대리암 내에 발달해 있으면 석회암동굴(석회동, 종유동; limestone cave),

암염(돌소금)에 발달하면 암염동굴(소금동굴; halite cave), 석고->석고동굴(gypsum cave), 얼음(빙하)->

얼음동굴(ice cave), 용암->용암동굴(lava tube) 등등 이다.

생성원인에 따라 석회암동굴, 암염동굴, 석고동굴, 얼음동굴 등은 액체인 물에 녹아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용식(溶蝕)동굴, 용암동굴은 화산활동에 기인하기 때문에 화산동굴, 바닷물의 파도에 깍인 것은

해식(海蝕)동굴(sea cave), 하천에 의하면 하식(河蝕)동굴 등등으로 나누어진다. 

해식이나 하식동굴은 암석의 종류에 관계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석회암동굴(1,000여개 이상?), 용암동굴(약 150여 개), 해식동굴(매우 많음)이 대부분이며,

석회암동굴은 주로 강원도, 충청북도에, 용암동굴은 제주도, 해식동굴은 섬이나 해안가에 있다.

이중에서 석회암동굴이나 용암동굴이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천장에 매달린 것은 종유석, 바닥에서 자라 올라오는 것은 석순으로 크게 나눈다.

종유석과 석순이 점점 자라서 서로 붙게 되면 석주가 된다.

여기는 저저거리와 평민들이 사는 곳을 촬영하기위한 세트장인 것 같다

온달관

고구려 25대 평원왕과 26대 영양왕 때 활약한 온달장군의 충성심과

도전정신을 재조명하고, 고구려의 역사 문화 생활상을 인식하는 학습의 장으로

온달관 생활관 유적관 정벌관 계승관 등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온달관은 고구려 제25대 평원왕과 제26대 영양왕 시대의 실존 인물인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삶을

역사 기록과 설화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고구려 700년 역사 중 온달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구려의 전성기가 지난 때이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던 당시 온달은 고구려의 명장으로 대외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다.

이후 온달은 신라군과 온달산성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관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남아 있다.

“고구려 장군 온달은 ‘계립현(충주와 문경 사이 하늘재)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출정한 후, 아단성(온달산성) 아래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온달의 효심,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했던 남녀의 이야기, 평민에서 한 나라의

영웅이 된 온달과 그를 내조한 평강공주… 온달과 평강공주에 관한 설화에 우리가 본받을 만한

여러 덕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