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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단양팔경 .사인암.도담삼봉.석문

사인암(舍人岩):단양 남쪽 8km 지점인 대강면(大崗面)사인암리(舍人岩里)에 있으며, 덕절산(德節山:780m)

줄기에 깎아지른 강변을 따라 치솟아 있는데, 우탁(禹倬)이 사인재관(舍人在官) 때 이곳에서 자주 휴양한

데서 사인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역(易)이 동(東)으로 왔다. ‘역’이란 동양의 우주론적 철학이다. 역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는 뜻으로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변역의 원리를 통달하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혜안을 갖게 되어 길흉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주나라 때

정립된 주역(周易)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이 탄생한 본고장 중국에서 해동국인 고려로

그 중심이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고려의 우탁으로 역에 능통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역동(易東) 선생이라 불렀다.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사인암은 역동 우탁에 의해 명명된 경승이다.

고려 말 정주학의 대가였던 우탁은 단양군 현곡면 적성리에서 태어났다.

충렬왕 4년에 항공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간 후 여러 직에 보임되었다.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와 통간하자 당시 감찰규정이었던 역동은 흰 옷을 입고 도끼를 든 채

궁궐에 들어가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을 때는 목을 쳐도 좋다는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군주의 비행을 직간한 역동의 기개와 충의를 본 충선왕은

부끄러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탁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선비였다.

《고려사(高麗史)》 열전에는 우탁이 영해사록(寧海司錄)으로 부임했을 때 민간신앙이었던 팔령신(八鈴神)

때문에 백성의 폐해가 심하자 신사를 철폐하는 혁신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는 벼슬을 버린 후에는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우탁이 ‘사인(舍人)’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사인암 근처에 초막을 짓고 기거했다. 그래서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임재광이 우탁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사인암은 마치 해금강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석벽이다.

깎아지른 듯 하늘을 향해 뻗은 수직의 바위가 거대한 단애를 이루고 암벽의 정수리에는 늘 푸른 창송이

꼿꼿이 자라고 있다.

 

사인암은 기품이 넘치는 장엄하고 우뚝한 자태를 자랑한다. 바둑판 모양이 선연한

암벽의 격자무늬와 푸른 노송의 어우러짐은 기묘한 조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운계천의 맑은 물이

푸르고 영롱한 옥색 여울이 되어 기암절벽을 안고 도는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운선구곡의 하나다.

 

소백산의 정기가 모인 물줄기가 서쪽으로 흐르다 급히 돌아 북으로 굽이치고 다시 돌아 동남으로

흘러가는 운계천은 물이 옥같이 맑고 산수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러한 운계천의 절정을 이루는 사인암은

마치 속세를 떠난 듯하며 암벽에는 역동 우탁의 글이 새겨져 있다.출처:우리 명승기행에서

사인암의 신비로운 선경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을 불러들였다.

추사 김정희는 “속된 정과 평범한 느낌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다(俗情凡韻一毫無)”며 하늘이 내린

그림이라고 경탄했다. 추사 외에도 사인암의 선경을 묘사한 시문은 매우 많다.

신광수의 〈단산별곡(丹山別曲)〉, 한진호의 《도담행정기(島潭行程記)》, 오대익의 〈운선구곡가(雲仙九曲歌)〉

등이 사인암의 비경을 담고 있으며, 김홍도와 이방운 등 조선의 이름난 화가들도 아름다운 절경을

화폭에 진경산수의 필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질사적 관점으로 보면 사인암은 석회암 지대에 관입한 화강암이 하천의 반석 위에 세워진

병풍 모양의 수직절리면이다.

다양한 색깔로 드러난 수직 수평의 절리면이 마치 수많은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신비로운 비경을 지닌 사인암은 옛사람들은 물론 오늘날 이곳을 찾는 탐방객까지도

매료시키고 있다.

암벽 아래​와 옆으로 돌아가며 구석구석에 빼곡하게 글이 새겨져 있다.

2011년 단양군에서 이 바위에 새겨진 이름의 수를 조사해보니 131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돌계단 옆에는 사인암이란 이름을 유래케 한 역동 우탁 선생의 시조 탄로가(嘆老歌)가 새겨져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삼성각 맞은 편 바위에는 조선 영조 때 단양군수를 지낸 조정세(趙靖世)의 글씨로 알려진 글이 새겨져 있다.

卓爾弗群 / 탁이불군 / 탁월한 것은 무리에 비할 바가 아니고

      確乎不拔 / 확호불발 / 확실하고 단단하여 꿈쩍도 하지 않는다.

爛柯 난가. 도끼자루가 썩는 줄도 모르고 구경할 만큼 재미있다고 해서 붙은, 바둑의 옛 명칭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하는 속담에서 신선놀음이란 바둑을 뜻한다.  

사인암 암벽에는 누구의 글씨보다 아름다운 글씨 두 점이 새겨져 전해오는데, 바로 능호관 이인상,

 단릉 이윤영의 글씨이다.

조선시대 화가 중 단양을 진정 사랑했던 분은 영조시대의 문인화가 능호관 이인상

(凌壺觀 李麟祥, 1710~1760)과 단릉 이윤영(丹陵 李胤永, 1714~1759)이었다.

절친한 사이였던 둘은 모두 시서화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평생 벼슬살이를 하지 않은 고사(高士)였던 단릉은, 단양군수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단양에 와서

이곳 산수에 심취하여 호를 단릉산인(丹陵山人)이라 하고 5년간 여기에 살았다.

아래의 사진은 능호관 이인상이 1751년에 단릉 이윤영, 몽촌 김종수(夢村 金鍾秀)와 함께 이곳에

와서 지은 글을 새긴 곳이다

 

 繩直準平 / 승직준평​ / 뻗어오른 것은 곧고 수평은 반듯한데

   玉色金聲 / 옥색금성 / 옥빛에 금 같은 소리 어리어 있네

   仰之彌高 / 앙지미고 / 우러러보니 아득히 높아

   魏乎無名 / 위호무명 / 우뚝할 손 비할 데 없구나

 

단릉 또한 단정한 전서체로 자신이 단양에 은둔한 뜻을 주역의 ' 택풍대과(澤風大過)' 에 나오는

구절을 빌려 다음과 같이 새겨놓았다.

 

   獨立不懼 / 독립불구 / 홀로 서니 두려운 것이 없고

   遯世無悶 / 둔세무민 / 세상을 은둔하니 근심이 없다.

사인암과 옥순봉

당대 최고의 화원이라 칭송받던 단원 김홍도(1745 ~ ?)는 세 차례나 임금의 어진을 그린 공로로 47세

되는 1791년 연풍현감이 되었다. 연풍현감 시절 이웃한 단양에 자주 놀러다녔던 단원은 사인암을

그리려 붓을 잡았다가 1년 여를 고민했다고 한다.

단원이 연풍현감 자리에서 파직된 것은 1795년 1월이었다. 그 해에 그가 그린 8폭의 산수화첩이

『 을묘년화첩』이고, 그 이듬 해인 1796년에 산수와 화조 각각 10폭을 그린 작품이 『 병진년화첩』(

보물 782호. 삼성 리움 미술관 소장)이다.

 

[출처] 사인암  분당친구님 글에서

이 도담삼봉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세 개의 바위 중 가운데 큰 바위를 남편봉(다른 이름은 장군봉)

이라 하고, 오른쪽 바위를 처봉(다른 이름은 아들봉), 왼쪽 바위를 첩봉(다른 이름은 딸봉)이라 부르는데,

이 이름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아이를 갖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첩을 얻어 아이를 낳았는데,

첩이 아내에게 배를 내밀며 시위를 했고, 이를 본 아내는 화가 나서 돌아앉아 버렸다. 이를 본 하늘에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첩을 그대로 돌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도담삼봉이란 이름은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하면서 불러진 이름으로 단양팔경 중의 하나이다.

단양팔경은 도담삼봉을 비롯해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석문, 구담봉, 옥순봉 등 여덟 곳을 말한다.

그중에서 지형의 훼손이 많은 곳을 제외한 도담삼봉, 사인암, 석문, 구담봉, 옥순봉 등 다섯 곳이

현재 국가문화재인 명승지로 지정되어있다. 도담삼봉은 맑은 물이 굽이치는 강 한가운데에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푸른 강물 위에 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중봉)가 가장 높고 남과 북에 낮은 봉우리가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이념적 기반을 구축한 개국공신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즐겨 찾았다.

정도전은 삼봉에 얽힌 전설의 인물로도 전해지고 있단다. 퇴계 이황은 단양을 무척 사랑했다.

단양의 빼어난 경치 때문에 스스로 청해서 단양군수로 부임했다.

이황은 도담삼봉의 아름다운 경승지를 보고 많은 시들을 남겼다.

저 위에 보이는게 이향정이다

도담삼봉에서 입구 반대편 언덕 위에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가 이향정(離鄕亭)이고, 이 언덕이 노루봉재이다.

이향정은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정자인데,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도담삼봉이 멋지다.

이향정

여기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가 백년대계인 충주댐 건설로 한마을 전체가 영원히 물속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담양군 매포읍 하괴리 300여세대가 망향의 아픔을 간직한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흩어져갑니다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 말로 다할 수 없으나충주댐이 나라 발전과 번영에

도움되기를 기원하며 우리들의 새 삶의 터전에도 무궁한 행운이 함께하길 빌면서 후세에

남길 흔적으로 이향정을 건립합니다 1985년 9월 25일 이향민 ㅡ일동

블친님 니엘님께서 라이딩을 즐겨하시는 생각을 하며 부산과 양산팀의 장거리 라이딩을 응원해본다

저뒤에 산은 소백산 줄기와 천문대 그리고 오른쪽에 양백산 전망대다 

내일 아침에 오르려고 한다 거기서는 페러글라이딩도 할 수 있다

야외 음악당도 돔형식으로 새단장을하였다

박목월의 나그네를 징검다리 식으로 배열을 해놨다

 

석문을 구경하기 위하여 나무 계단을 오른다. 가파른 계단에는 쇠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 왼쪽인 산 쪽으로는 나무로 가로막을 만들어 놓았고, 낭떠러지가 있는 오른 쪽은 쇠로

가로막을 만들어 관람객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도담삼봉에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도담삼봉이 너무 아름다워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짓고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단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 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단다. 그래서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다.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

”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석문 가는 정자에서 바라본 도담삼봉과 이향정

이 도담삼봉에서 유람선을 이용하여 도담삼봉을 둘러보는 코스도 좋다.

도담삼봉 선착장을 출발해 석문 앞을 지나 신단양 선착장까지 가는 유람선으로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2500원이다.

단양 석문은 단양팔경의 하나로 2008년에 명승 제45호로 지정되었다.

석문은 석회암이 풍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암석의 형태가 마치 돌로 만든 문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무지개와 같은 석문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석문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농촌마을의 전경은 마치 화폭에 그려진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석문은 매우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신증동국여지승람’단양조에 “도담에서 흐름을 거슬러

수백 보쯤 가면 푸른 바위가 만 길이나 된다. 하양목과 측백이 돌 틈에서 거꾸로 나고 바위 구멍이

문과 같아서 따로 한 동천이 있는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자주 쓴풀

정도전은 단양 출신으로

이성계를 도와 제도의 개혁을 통해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이 된 정치가. 자는 종지, 호는 삼봉으로

1370년 성균관에 중영되고 성균박사가 되었으며, 1383년 이성계를 찾아가 세상사를 논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일으킬 때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워 밀직부사가 됐다.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살해되고 반대세력이 제거되자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해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이후 진법 훈련을 강화하면서 요동정벌을 추진하고, 이방원을 전자로도,

이방번을 동북면으로 보내려 했으나 이방원 세력의 기습을 받아 방번, 방석 등과 함께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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