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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청풍호반 케블카

청풍 문화재 단지를 돌아보고 유람선을 탈까 케블카를 탈까 망서리다

유람선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케블카 타는 것으로 결정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주차장부터 만차 먼저온 차량이 빠져 나가기를 기다려야된다

10여분 기다리다 주차하고 2층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3층 탑승장에 가니

미로 찾기처럼 줄이 늘어서 있는데 여기서도 20여분 기다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대기 상태다 코로나 때문에 일가족은 같이 타고 1명이든 2명이든

팀을 분류하여 한칸씩 탑승으로 정체가 되는 것 같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운행하는 케이블카 시설이다.
오스트리아의 도펠마이어社 퍼스트클래스 10인승 캐빈 43기로 운영 한다고 한다.
더욱이 케이블카 정상의 비봉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청풍호 중앙에 위치한 해발 531m의 명산이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케블카 탑승장은 물태리 역이다 여기서 타고 용화산 역에서 내려 주위 풍광을 감상을한다

 

5F 옥상 전망대
4F 의무실 / 운영사무실
3F 카카오라운지(커피/초콜렛/족욕카페), 한방바이오제천몰(쇼핑), 퍼팩트아이스

(아이스크림/커피), 씨알로 (스낵), 박정우갤러리 (염색공방)
2F 큐브스퀘어 (커피/도넛), 미식락희가 (식당), 관광안내소, 케이블카 매표소, 제2주차장 출입구,

환상미술관, 외부-시네마360 (영상 관람)
1F CU 편의점 (음료/스낵), 제1주차장 출입구

지금 용화산 역으로 가고 있는중

망월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과 별 차이는 없다

국민 건강보험 연수원 같다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 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다.

2000년 4월 15일 개장 되었다고 한다.

531m 비봉산이다.
청풍호반 가운데 우뚝선 비봉산 섬을 에어싸는듯한 분위기다.
소백산 치악산 월악산등 거대한 국립공원을 병풍처름 들러쳐진 가운데 

조그만한 산군들이 병풍처름 늘어서 있다.

타임캡슐을 저장하는 박스를 층층이 쌓은 설치미술 작품

청풍대교

구담봉

단양 구담봉은 단양팔경의 하나이며, 단양군 단성면 및 제천시 수산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 330m의 구담봉은 아담한 규모이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바위능선은 설악산을 닮은 듯하고, 능선 좌우의

기암절벽은 금강산에서 옮겨놓은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2008년에 명승 제46호로 지정되었다.

 

구담은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양군 산천조에는 “구담은 군 서쪽 20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또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 산수편에는 “구담은 청풍에 있는데 양쪽 언덕에 석벽이 하늘 높이 솟아 해를

가리었고 그 사이로 강물이 쏟아져 내린다. 석벽이 겹겹이 서로 막혀 문같이 되었는데, 좌우로 강선대

·채운봉·옥순봉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만중(金萬重) 등 수많은 학자와 시인묵객이 그 절경을 찬미했다.

특히 퇴계 이황은 구담봉의 장관을 보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장회나루 방향에는 퇴계 선생을 사모하던 기녀 두향의 묘가 있다.

 

또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이지번(李之蕃)은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는데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덩굴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구담봉은 충주호의 장회나루, 혹은 신단양나루에서 배를 타고 수로로 이동하여 충주호에서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제천시 수산면 계란재에서 육로로 오를 수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충주호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구덤봉은 제비봉에 세번 올라서 보고 관광차 유람선 타고 보고 금수산 등산 때 보고

수도 없이 봤지만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 담고 또 담는다

옥순봉

옥순봉(玉筍峯)은 단양팔경 중 유일하게 단양에 소재하지 않은 곳으로 현재 제천시 수산면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옥순봉은 청풍에 속했는데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청풍이 제천에 속하게 되어 원래부터 단양에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순봉은 분명히 단양팔경의 하나다.

그 옛날 한양에서 단양팔경을 유람하러 가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경승이 옥순봉이었다.

한양에서 단양으로 가는 길은 육로와 수로 두 가지가 있었는데 수로의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에 뱃길이

더 많이 이용되었다. 따라서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에서 단양 방향으로 올라가면 청풍을 지나게 되고

청풍에서 단양으로 진입하는 경계에 바로 옥순봉이 위치하고 있다.

옥순봉

장회나루에서 배를 타고 구담봉을 지나 청풍 방향으로 내려가면 희고 푸른 바위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신비한 총석(叢石)을 만나게 된다. 돌기둥처럼 생긴 석봉들은 비가 갠 후 옥과 같이

푸르고 흰 대나무 순이 돋아난 듯하다 해서 옥순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해발 283m의 옥순봉은 높은 산봉우리는 아니지만 청풍호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옥순봉이 수직으로 된 절벽을 형성하게 된 것은 수직절리가 발달한 화강암에 하천의 침식작용이

지속되어 깎아지른 단애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화강암 지대에서 많이 나타나는 모습으로

옥순봉의 자태가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라 할 수 있다. 금강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산의 기암괴석도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비경을 자랑한다.

청풍호를 가로질러 놓인 옥순대교에서 구담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병풍을 접은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반대로 하류로 내려오면 병풍을 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 명종조의 황준량은

일엽편주가 옥순봉을 지나는 모습을 보고 “조각배에 탄 사람이 병풍 속으로 들어간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퇴계(退溪)와 두향의 연정
퇴계 이황(李滉)은 48歲때 경치 좋은 단양(丹陽) 군수(守)로 부임(赴任) 했는데, 그 고을 관기였던 18세의

어린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첫 눈에 대나무처럼 올곧은 퇴계를 연모하게 되었고, 퇴계도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었던 터라
공허한 가슴에 두향이 들어왔다.

30년 세월(歲月)을 뛰어넘는 사랑의 교감(交感)이고, 반상(班常)의 신분(身分)을 뛰어넘는 로맨스다.
두향은 詩와 書와 거문고에 능했고 특히 매화(梅花)를 좋아했다.
그녀는 언제나 퇴계의 곁에서 거문고(금:琴)를 타며 퇴계(退溪)의 얼굴에서 미소(微笑)가 떠나지 않게 한

여인(女人)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시작한지 꼭 9개월 만에 퇴계가 경상도 풍기(豐基) 군수로 전근 발령(發令)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단한 충격(擊)이었고, 관기(官妓)를 못 데리고 다니는 당시의 규율(規律)때문에 결국(結局)

두향을 두고 퇴계는 혼자 풍기로 떠나야만 했다.

떠나면서 꾸린 짐 속에는 두향이 준 수석2개와 매화 화분(花盆) 한 개가 있었다.
떠나기 전날 밤에 마주 앉아 주고 받았던 한시(漢詩)가 백미다.

"死別己呑聲(사별기탄성)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測(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그리고 퇴계는 말을 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期約)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詩 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우는데, 어느덧 술도 비워 없어지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離別)은 결국(結局)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퇴계가 70세로 세상(世上)을 하직 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퇴계(退溪)가 부제학(副提學) 공조판조(工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승승장구(乘勝長驅) 하는데~
아마도 두향은 누가 될까하여 퇴계에 대한 두향의 배려였으리라.

퇴계와 이별(離別) 한 후 두향은 관기(官妓)를 그만두고 퇴계와 즐겨갔던 남한강(南漢江) 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平生)을 살았다.
이별 후 이들은 만나지 못하고 서로 서신(書信)만 주고받았다.

다음은 퇴계가 두향에게 보낸 시다.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속에 좋은 말씀을 보면서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 빈 방에 홀로 조용히 앉았는데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 그대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고 한탄 말라

퇴계는 말년(末年)에 안동(安東)에 있는 도산(陶山) 서원(書院) 에서 조용하게 지냈는데
한 때는 병세가 위독해서 자신도 모르게 옷을 입은 채로 설사를 하게 되었다.
그 경황에서도 그는 시중드는 사람에게 불결(不潔)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매화 화분을 딴 방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그 매화(梅花)가 바로 두향이 준 것 이여서 각별(各別)히 애지중지(愛之重之) 하였다.
명종과 선조 임금이 항상 퇴계에게 큰 벼슬을 내리면서 조정으로 나올 것을 간곡하게 청했지만, 그는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출세(出世)보다는 학문에 전력했던 군자(君子)였다.

그러나 詩와 음악(音樂)과 한 女人을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였고, 또 달과 山과 江과 梅花를 유달리

사랑했던 풍류객(風流客)이었다.
기록(記錄)에 의하면 그가 병이 깊어 누워 있던 1570년 섣달 초여드렛날, 제자들이 부축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창문으로는 눈부신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윗목에는 매화 화분 하나가 두세 송이 부푼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데,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이 말을 끝으로 선생은 미소 띤 표정으로 앉아서 이승을 하직 했으니, 이때 선생의 나이 70세 였다.

강선대

가은암산 아래 큰 바위로 보통 때는 충주호에 잠겨 볼 수 없지만 담수량이 줄어들면 넓은 바위가 드러난다.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이어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다.
어느 날 두향이 안동의 퇴계에게 난초를 보냈다.
단양에서 두향과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차린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 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井花水)로
소중히 다루었다.
어느 날 이 정화수가 빛깔이 변하는 것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 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 까지 4일간을 걸어서 돌아가신 님을 뵈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퇴계 종가(宗家)에서는 두향이 묘(墓)에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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