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가야국)의 시조. 42년(신라 유리왕 19년)에 가락국의 구간(九干)이 북쪽 구지봉에서 6개의 알이 들어
있는 금합을 얻었다. 그 6개의 알이 모두 사람으로 변하여 6가야국의 왕이 되었는데, 김수로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에 수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대가야국의 왕으로 추대되어 아유타국(인도에 있던 나라)의 공주 허황옥을 비로 맞았다. 치적이 많았고 장수하여 199년(신라 내해왕 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김해 김씨의 시조이며, 신라 김유신은 그 12대손이다.
김수로왕은 가락국의 시조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김수로왕의 탄생과 치적은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다. 가락 지역(경상남도 김해지역)에 촌장 아홉 명이 각각의 부족을 다스리고 있었다. 3월 어느 날 하늘에서 구지봉으로 가서 하늘이 내려 주신 왕을맞이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촌장과 사람들은 구지봉으로 올라가 왕을 맞이하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왔는데 그 속에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얼마 뒤 이 알에서 남자 아이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온 아이의 이름을 '수로'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수로를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국' 또는 '가락국'이라고 했다. 나머지 다른 남자 아이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이때가 42년(신라 유리왕19)이었다고 한다. 김수로왕은 다른 부족국가를 정복하여 금관가야를 세우고,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파사 석탑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오자 공주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다. 수로왕은 왕위에 올라 157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죽었다. 수로왕은 허왕후와의 사이에서 여러 명의 왕자들을 두었는데, 그 중 일곱 명은 지리산에 들어가 운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고, 거등왕이 수로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었다.
김수로왕은 199년까지 157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구체적인 사례는 알 수가 없다. 가야가 신라에 통합되면서 가야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도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해 지방의 가야 유적지 발굴 현장에서는 고도로 발전한 문화 유물이 발견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금관가야나 대가야도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바다 건너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한 것은 가야가 바다로도 진출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