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울산
지리산 삼성궁과 청학동
데미안2
2021. 5. 23. 06:11
여수 연안여객터미날에서 바로 여기 하동 섬진강 갈굴식당으로 왔다
서울팀 한분이 하동벚굴식당을 추천했는데 지금 벚굴 채취금지 기간이라서 식당
운영을 안한다고 해서 여기 강굴식당에 왔는데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 영업일이라고 한다
식당 앞에 피어 있는 큰 낮달맞이꽃
영업술이지만 자랑할만 하네
굴껍질 조형물
물껍질을 도료를 제조하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벚굴이 이렇게 크다 3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듯
이렇게 벚굴로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로 바로 출발하기도 그렇고 일행중 한분이 하동 유명한 곳
추천해달라고 사장한테 부탁하니 삼성궁이다 나야 3~4번 다녀왔는데 서울팀은 누구도 다녀온
사람이 없다 여기까지 내가 안내하기로 하고 출발이다
경남 하동군은 청학동 삼성궁이 한국관광공사 경남지사가 선정한 ‘경남 안심나들이 10선’에 올랐다고
2월 3일 밝혔다.
경남 안심나들이 10선은 코로나 시대 여행지 방역을 일상화하는 분위기를 확산하고 침체된 관광산업
회복을 위해 도내 야외 관광지를 대상으로 매력도, 지속가능성, 접근성, 편의성, 방역 및 안전관리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됐다.
안심나들이 10선에 오른 삼성궁은 고조선의 역사를 간직한 하동의 대표 관광지로서 한국 문화의 대표성과
상징성, 역사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지리산 청학동에 위치해 지역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를 되찾고자 오랜 세월 수행의 일환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돌성은 ‘슬로시티 하동’만의
삶의 미학과 장인정신의 정성이 깃들어 하동의 지역관광 이미지를 대표한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로 인공 폭포를 만들었다
감실안의 모습
지리산 깊숙히 자리잡은 <삼성궁>은 우리 민족의 환웅, 한인, 단군을 모신 곳이다
놀라운 것은 자연돌을 쌓아 만든 온갖 구조물이다
삼성궁 코스를 모두 돌아보는데 약 2시간이 소요되는 좋은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온갖 돌조각들과 돌탑, 돌담장, 폭포, 연못들이 있으며 기이하고 신비하여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어떻게 이것들을 조성하였는지 감탄의 연속이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원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 말의 뜻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환웅이 땅으로 내려올 때 환인이 준 천부인에는 홍익인간 정신이 깃들어 있다.
홍익인간은 진정한 자비와 사랑의 경지에서 나온 말이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민족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널리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자비심과 기독교의 사랑 등도 홍익인간과 통한다.
다람쥐 한마리 요리조리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삼성궁은 우리민족이 6천 여 년 전에 만든 기무를 가르치고 있다.
이는 6천 여 년 전 만들어진 고조선의 삼일신고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삼성궁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삼일신고의 가르침에 따라 삼법수행을 수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풀선사는 “선무는 우선 춤사위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춤사위를 마치면 아시(처음)검, 아린(풋것)검등 십여가지의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아리랑가락에
맞춰 구사하는 아리랑검법으로 완성의 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아리랑검법은 삼성궁에서만 볼 수 있는
검법입니다. 각 과정에는 또 다시 얻기(기초), 떼(모습갖추기), 불임(마치기)의 3단계 고행과정이 있습니다
”라고 설명하면서 선무외에도 무예 24반, 택견 등 모든 전통무예를 닦고 있는데 무예마다 각기 다른
사범들이 있어 체계적인 전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현재 전국에서 대학생, 회사원등 4천 여 명의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수료하고 있다고 했다.
![](https://blog.kakaocdn.net/dn/cfGHcM/btq4YjhXcmd/9eiux8oq6eHQKNcbbGe3wK/img.jpg)
한풀선사 강민주의 모습
삼성궁의 모든 도량은 한풀선사 혼자 힘으로 지었다. 특히 도량은 고조선이 지배하던 동아시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수련은 고조선시대의 계율을 따르고 있다.
한풀선사는 맑은 눈빛과 긴 수염, 가볍게 말을 달리는 모습 등 전형적인 도인의 모습이다.
지리산에서 태어난 그는 6세 때 부친(의사)의 친구였던 낙천선사 문하에 들어가 선도를 배웠으며
검정고시로 중앙대에 진학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이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역시 역사학자가
만든 삼성궁의 모습이며 계율이다.
지리산은 동쪽에 천황봉, 서쪽에 반야봉, 중앙에 영신대가 최치원과 도선국사도 지리산을 동방제일의
명지로 꼽았다. 이런 정기를 지니고 있는 지리산의 한 자락에 자리 잡은 ‘지리산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의 규모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상상 그 이상이다.
“저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이 같은 배달민족성전을 건립했습니다.
손으로 돌 하나 하나 가지고 와 쌓았습니다. 특히 한반도와 만주를 닮은 연못에는 제가 백두산 천지에서
가져온 물을 연못에 합수했습니다.
제가 고조선의 소도를 복원하는 까닭은 우리의 배달선도문화를 계승하고자 함입니다“라며 지리산 향이
가득 묻어 있는 차를 조용히 음미한다.
한풀선사가 매일 하루 20톤의 돌을 지고 와 세운 솟대는 삼성궁의 상징이다.
또한 이곳의 맷돌은1만 2천 여 개나 되고, 골동품도 1만 여 점 소장돼 있다.
지금도 삼일신고의 정신에 따라 3천 3백 33새의 솟대를 세우고 있고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의 맷돌을
수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풀선사는 “솟대는 환웅이 나라를 다스릴 때 제천을 지내던 소도를 의미하며, 음양의
이치로 만들어진 맷돌은 우리민족의 민족정기를 대변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궁에는 한배임, 한배웅, 한배검등 삼성과 역대 왕조의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 무장을 모시고 있다.
이곳에서 한풀선사의 민족정기를 전수받고 있는 수행자는 직계수자, 방계수자, 일반수자
(일반 참배객)로 나누어진다. 직계수자는 삼성궁에서 최소한 3년 이상 수련을 쌓고 계율에 따라
움직이는 수행자며, 방계수자는 각 대학동아리(전국에 8개)와 삼성궁의 정신에 뜻을 함께 하는
수행자들이다. 삼성궁은 평일에는 1천여 명, 주말이나 휴일에는 3천여 명의 관광객을 포함
이곳에 참배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삼성궁은 매년 음력 춘삼월 열엿새를 기해 봄 천제를 지낸다.
대체로 영고(迎鼓 초기 부족연맹체 국가인 부여(夫餘)에서 행했던 집단적 제천의식)의 열림소리부터
시작해 천단춤-천례-일신-월신-헌화-헌다-고천-참알-독경-해원-아리랑검-참알-천례-닫힘소리로
제천의식을 마치고 도당 부정거리-불사, 칠성, 제석거리-도당산거리-대신거리-성제님, 별성장군,
신장 대감거리-살풀이-창부거리-뒷전거리등으로 신명나는 잔치를 이어간다.
출처 : 지리산힐링신문
삼성궁을 나와 청학동 도인촌으로 향한다
청학동
청학동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전해 오던 도인(道人)들의 이상향을 말한다.
전국의 여러 명산에는 청학동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학동의 위치는 지리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다.
청학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의 종교적 표상에서 잘 나타난다.
청학동 주민들은 모두 강대성(姜大成, 1898〜1954)이 창시한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이곳에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명 일심교라고도 하는데, 그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동서학 합일대도 대명다경
대길유도 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남원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리산 청학동에는 수련소를 설치해 놓았다.
갱정유도의 사회적 표상은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 이외에도, 신도는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옛 선비들처럼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낸다.
특히, 현대문명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 갱정유도의 큰 특징이다. 또한, 주색초(酒色草)를
엄격히 금하나, 때로는 허용하기도 한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20세기 후반 주민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마을의 문화 경관으로 인해 매스미디어에 노출되고, 때마침
문화 관광의 붐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도인촌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지방 자치체와 정부에 의해 마침내 이곳은 공식적으로 청학동이라 명명되고
사회적으로 널리 인지됨에 따라 청학동으로 고착되었다.
묵계리가 청학동으로 알려지게 된 최초의 계기는 1956년경 신흥 종교인 갱정유도인(更定儒道人)들이
외부에서 들어와 학동마을에 정주하면서부터였다. 집단 신앙촌의 독특한 경관 구성과 삶의 방식이
주위에 알려지고, 동시에 매스미디어가 도인촌의 장소 이미지를 복고적인 향수와 신비적인 공간으로
창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에 갱정유도인들도 도인에서 청학동 사람으로 정체성을 바꾸며,
1986년에 청학동으로 명명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니까 현대의 묵계리 청학동도인촌은, 지리산
청학동이라는 이상향의 장소 이미지로 포장되면서 관광지로서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디지탈하동문화대전에서
.높은 지대라서인지 아직도 이런 꽃들이 남아 있었네(금낭화.붓꽃.죽단화.모란)
전설에 의하면 '청학동'은 신선이 푸른학을 타고 노닐던
'지상 선경'이라 하여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이 세파의
이해에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사는 천하 명승지를 일컫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청학동'을 꿈에도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이라 하여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여겨왔었다
청학동 전통서당
청학동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3백여년전 부터라 하고 특히 왜정(倭政)때
왜정을 반대한 선사들께서 피난해 모여 산것이 110가구 정도
6.25후 지리산 공비소탕으로 인해, 일시에 그 마을이 없어지고,
그 뒤로 갱정유도(更正儒道)를 신봉하는 현 청학동 주민들이 모여
옛 모습을 고수하면서 선현들의 얼과 전통을 계승하며 수도 정진하고있다.
여행중입니다 예약글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