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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

계획은 임하 천전에 의성김씨 종택을 가려 했으나 지난번 여행 때 그쪽 부근을 돌아봤기에

그곳만 가기는 너무 멀고 이번에는 봉정사와 무섬마을 길초인 학봉종택을 먼져 가보기로 한다

종택 건물은 일(一)자형의 안채와 사당, 문간채, 풍뢰헌, 운장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봉종택은 1995년 12월 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종택 입구의 이 안내판을 보면

학봉은 퇴계(退溪) 이황의 고제(高第)로 학통 전수의 징표인 병명(屛銘)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 고제(高第)라는 것은 지금의 수제자로서 적통을 이어 받는 것인데 퇴계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은 그들의 사후에 후손들에 의하여 400년간의 병호시비(屛虎是非)에 휘말리게 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내 나름대로 집약하여 올린 아래의 자료에서 밝혀본다

 

'병호시비(屛虎是非)'로 불리는 두 가문의 갈등은 영남 3대 시비 중 하나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과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 문중 간 벌어진 사건이다

 

퇴계(退溪) 제자들이 호계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면서

두 번째 서열인 왼쪽 위패를 누구의 것으로 하느냐를 두고 다투면서 발생한 3차례의 시비를 말한다

‘병호시비’에서 ‘병’(屛)은 서애를 배향한 병산서원을, ‘호’(虎)는 학봉 중심의 호계서원을 지칭한다

 

당시 학봉 문중은 서애보다 네 살 위인 점을 들어 나이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애 문중은 학봉보다 벼슬이 높았던 점을 내세워 관직에 따라 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 시비는 이후 퇴계 적통 시비로까지 이어지면서 갈등이 커졌다

 

퇴계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1563∼1633)가 '나이가 아닌 벼슬 순'으로 결론짓기도 했지만

논란은 400여년간 갈등을 빚어왔으며, 영남유림을 둘로 갈라놓기에 이른다

 

두 문중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결국 호계서원 내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은 사라졌고

퇴계의 위패는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류성룡의 위패는 병산서원(屛山書院)으로 갔고,

김성일의 위패는 낙동강변의 임천서원(臨川書院)으로 갔다

 

호계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1573년 여강서원으로 창건된 후

숙종 2년(1676년) 사액되면서 호계서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다가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어졌는데

이마저도 안동댐 건설로 1973년 임하댐 아래로 옮겨졌지만 습기로 건물 훼손이 우려되자

지역유림은 다시 이건과 함께 서원의 복설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2013년 경상북도가 총사업비 65억원을 들여 호계서원을 이건하고 복원도 추진하여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부지에 호계서원을 복설했다

 

호계서원 복설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묵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경상북도에서는 세 분의 위패를 원래 있었던 호계서원으로 다시 모시되,

서애를 퇴계 위패의 동쪽에, 학봉은 서쪽에 두되 그 옆에 학봉의 후학인 이상정을 배향하기로 중재했다

서애는 높은 자리를, 학봉은 두 명의 자리를 보장하는 화해안을 제시하였고,

두 학파가 이에 동의하면서 400년간 이어진 영남유림의 병호시비는 화해의 물꼬를 텃고,

이날 호계서원에서 '복설(復設) 고유제'를 지냄으로서 비로소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딜라일라님 글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장손들이 가계를 이어오며 잘가꾸어온 정원이다

좌측은 ㅁ자형 안채고 우측은 문충고가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풍뢰헌이다

복주머니

학봉종택은 학봉 김성일의 종가이다.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156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와

호조의 낭관을 거쳐 1576년(선조 9)에는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간, 홍문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1579년(선조 12)에 함경도 순무어사(巡撫御史)로 나가 6진(鎭) 등

국경지대를 살펴보았고, 1583년(선조 16)에 다시 황해도 순무어사로 나가 민정을 살피고 돌아왔다.

1590년에는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 등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1591년 일본에서 돌아온 황윤길은 현지의 분위기를 볼 때 일본이 침공해올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김성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보고했다. 황윤길 외에 다른 수행원들도 일본의 침공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조선 조정은 김성일의 보고를 믿는 우를 범했다.

황윤길 등의 보고대로 이듬해인 1592년 일본이 침공해오자 선조 임금은 김성일의 처벌을 명했으나

김성일은 그와 동문수학했던 유성룡의 변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 김성일은 초유사에 임명되어 함양, 죽산

등지에서 격문을 띄웠으며 곽재우의 도움을 받아 의병을 일으켜 경상도 지역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어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가 되어 관내 각지를 순행하며 독전하다가 이듬해 진주공관에서 순직했다.

문충고가의 현판들

풍뢰헌쪽에서 바라본 마당과 안채 문충고가

운장각

불천위를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현격한 공을 세운 조상은 5대가 지나도 신위를 땅에 갖다 묻지 않고  영원히 제사를 모시도록 국가에서

허락하였다. 집안에 불천위가 있어야 안동에서는 비로소 종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불천위는

후손들의 큰 자랑이다.

학봉종택에 2010년 5월 2일에 길제가 있었다 불천위를 설명하기 위해 길제의 모습을 가져왔다

옛날의 삼년상을 그대로 치르고 있는 전국에 몇 안되는 종택이다.

종손이 가신지 만2년 동안 살아계신 것처럼 조석 공양하고 삭망마다 사당에 제를 드렸다.

그렇게 2년이 되면 대상을 치르고 또 두달 지나면 담제라 해서 비로소 상복을 벗고 소복을 입었다.

그로부터 또 한달이 지나야 평상복을 입는 길제를 지낸다.

사대봉사를 하는 풍속상 새로 모실 젊은 신위가 생겼으니 5대조는 자리를 물려주고 산으로 가야한다. 

따라서 길제를 지내야 봉사자가 정식으로 지금의 종손으로 바뀌는 것이다. 

길제는 그 5대조를 마지막 떠나보내는 제사이자 , 봉사자 종손 내외가 정식으로 취임하는 날이다.

바로 15대  김종길 종손이다

안채문

정침(正寢)은 와가‘ㅁ’자형 고가인데 모두 오량을 꾸민 팔작지붕이며 우측 편에 3칸의
사당을 배치했고 주위에는 토담을 설치하였다.

 

안채에 걸려있는 현판 광풍제월

중국송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품을 평한 말로

맑은날의 바람과 비개인날의 달처럼 가슴속에 맑은 인품을 지닌사람이라는 뜻

미수 허목의 글씨라고 한다

현재 15대 종손 김종길씨가 기거하며 관리하고 있다

복두꺼비

학봉의 13대 종손인 김용환은

음주가무와 노름으로 수백억대의 가산을 탕진한 당대의 파락호, 난봉꾼 행세를 하며 빼돌린 돈을 만주의

독립군 군자금으로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딸의 장롱 구입용 혼수자금까지 독립운동자금으로 송금해 버리는 바람에 딸은 큰어머니가 쓰던

헌 장롱을 울면서 가져갔다는 일화도 있는 독립투사였다

 

 

 

김용환 지사는 겉으로는 노름꾼, 파락호 노릇을 하면서 뒤로는 독립자금을 대던 분이다
당시 문중 종택을 팔아서 독립자금을 대던 임청각 이상룡 지사와는 사돈으로 맺어진 사이다.
두 사돈이 똑같이 문중 종택을 팔아서 독립자금을 대고는 했던 것이다.
문중은 종택이 팔리면 굉장히 수치스럽게 여겼기에 돈을 각출해서 팔린 종택을 다시 사들이게 되는데
김용환 지사는 그렇게 해서 세 번이나 종택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그러니 노름꾼이 노름하다가 종택을 팔아먹었다고 문중이나 주위에서 얼마나 손가락질을 받았을까요?
돌아가실 때까지도 자신이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알리지 않다가 돌아가신 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학봉의 가장 아픈 점은 황윤길과 함께 왜국에 통신사 부사로 갔다 온 뒤에 왜국의 조선 침략 징후를

보고할 때 왜국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배웠던 역사에서는 당파 싸움에 휘말려  서인(西人)인 정사(正使) 황윤길과는 달리

동인(東人)인 부사(副使)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관상이나 여러가지를 볼 때 감히 조선을 침략할 위인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봉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전투에 임했으며

진주성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3만여 왜적을 격퇴한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쟁중 역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밖에서 바라본 학봉종택

여기는 임하면 천전리 의성김씨 종택이다

블친이신 해피님의 외가인데 다음기회에는 이곳을 들려봐야겠다


http://youtu.be/uOIHHMnI_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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