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날 배롱나무 꽃이 유명한 함안 고려동유적지를 찾았는데 1차로 피었다
진 것인지 아직 덜핀 것인지 실망스런 모습이다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답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들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자미단
두문동서원 위폐 봉안문
몇 년 전에 왔을 때 이러한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는 때를 잘 못 맞춘 것 같다
이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후손들은 600년이 넘게 이곳에서 살아왔고 고려동이라는 이름도 전하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재령 이씨 후손 30여호가 모여 살면서 선조의 뜻을 기리고 있다
보호수
수종 배롱나무
수고 8,0미터
나무둘레 1,3미터
관리자 재령이씨 종중회장
나무특징 고려동 유적지에 있는 배롱나무는 연륜에비해
수관이 발달하고 수형이 아름답다. 자미나무라고도 함
이 나무에서 피는 자미화는 고려말 모은 이오 선생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물체문
자미정
경모당
우죽헌
경모당 내부
자미정 마루와 난간
자미정 뒤 못
자미정에 결려있는주련들
종택 솟을대문
계모당
계모당(繼慕堂): '선조의 훌륭한 유업을 이어받는다'는 뜻을 지닌 종택의 사랑채
안채
예전에는 종부께서 살고 계셨는데 연로하셔서 자손집으로 가셨는지 집이 비어있다
안사랑채 같은데 사진관으로 이용을 했던 곳이다
안채창호
복정(鰒井)
안채부엌
장독대 지금은 기거하는 가족이 없어 초라한 모습이다
사당
사당은 문이 잠겨있다
뒤뜰에 있는 배롱나무
계모당과 율간정으로 통하는 문
율간정으로 들어가는 청간문
모계정사
모계정사에서는 한복대여를 해주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 같다
율간정
다른 곳은 상사화가 다 지고 있는데 여기는 아직도 싱싱하게 피어 있다
율간정으로 들어가는 길가엔 채송화가 화단에는 맨드라미 백일홍 달맞이꽃 설악초등
많은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율간정의 창호들
율간정안에는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고 주위가 깨끗하게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효산정
화청문
회천정사 정문이다
문이 잠겨있고 앞에는 풀만 무성하다
문이 잠겨 있어 담 넘어로 본 회천정사의 모습
예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정사는 유생이나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사위질빵과 분꽃
계요등
담장을 둘렀다고 해서 마을이름을 담안리라 하였는데, 지금은 한자로 바꾸어 장내(牆內)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당시 모은이 조성하였던 고려전은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상의문
고려진사모은이선생 경모비
주차장 오른편에는 상의문(尙義門)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고려진사모은이선생경모비
(高麗進士矛隱李先生景慕碑)라 새긴 비석이 우뚝 서 있고 그 옆에는 선생의 행록을 담은
검은 비석이 따로 서 있다.
마을 입구에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워 이곳이 고려의 영역임을 나타내었다.
이로써 천하는 조선의 땅이지만 고려동만큼은 고려의 세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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