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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곡수당.낙서재

.동천석실을 돌아보고 여기 곡수당과 낙서재로 왔다

곡수당 : 윤선도 아들 학관이 거주한 휴식처

윤선도의 많은 문학작품도 이 서자 아들 학관이 관리하고 세상에 전했다고 한다.

낙서재로 가는길에 먼저 곡수당이 나온다 윤선도가 정을 주었던 아들 학관이 아버지를 모시기위해

이곳에 집을짓고 살았다고 한다 곡수당은 초당 한칸의 작은 정자로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아치형 홍예교

석교를 건너간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받아서 돌로만든 관으로 흘러 내리게 해서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아 푹포가 형성되지 않는다

서재

곡수 남쪽 두골짜기 중앙에 입지한 강학을 위한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학유공 정유악.

심진사단.학관(고산 5남)등 여러사람이 고산 선생에게 배우던 곳이다

곡수당

낙서재 가는길은 양쪽에 수크령이 자라고 있다 수크령은 결초보은의 풀이다

 

동와와 사당

동와東窩, 西窩 ; 窩는 움집와, 무민당 양옆으로 작은 한칸자리 집. 부속건물

한칸짜리 사랑채, 침실이었다.

지금 보기로는 아마도 비서 하인이 거처하는 수위실 역할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보길도는 윤선도의 고장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듯 박학다식하고 곧은 성격에 목숨을 건 상소와 치열한

당파싸움과 모함에 여러차례 휘말려 일생중 20여년을 전국 8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19년을 초야에

스스로 묻혀 지내기도한 자연을 특히 좋아하셨던 문인 윤선도다

낙서재(樂書齋), 강학, 독서당. 음식을 할 수있는 부엌은 없다. 별채가 있었을 듯. 

침소는 무민당에 거처하며, 새벽 첫닭이 울면 벌써 기침하여 몸을 씻고 정신을 차리며, 경옥주 한잔 하고,

독서를 하거나 제자를 가르칠 일과를 준비하였다. 부지런하고 엄격한 선비다운 행자(行姿)다.

낙서재의 사당. 윤선도가 85세 때(1671년) 여기 낙서재에서 별세했다. 이 사당은 초장(草葬)을 지낸 곳.

 초장이란 초분(草墳)이라고도 하고, 섬지역에 주로 성행한 1차 장례법이다. 곽을 지상에 안치하고 짚이나 풀,

띠풀로 덮어서 오래두면 뼈만 남는다. 그 동안 그 앞에서 자주 제사를 지낸다. 몇 년 후 이 뼈를 잘 간추려

2차로 땅에 묻는다.

 우리 역사상 고대에 나오는 세골장(洗骨葬)과 같은 것이다.

 윤선도의 묘는 선조들의 세거지 해남 녹우당 부근 금쇄동에 있다.  

윤선도는 1671년 6월 11일 별세하고, 3개월 여 여기에 안치됐다가 9월 22일에 해남 금쇄동으로 옮겨 매장됐다 한다.

화가 공재 윤두수는 윤선도의 증손자, 정약용은 (외5대조부) 외6세손자이다

전사청

학관의 아들 이관이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제기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노화읍 번화가이고 왼쪽에는 이목항이다

한국수산업 경영인 노화읍 협의회

노화읍 전통시장

이렇게 조그마한 전통시장이지만 한번 둘러보고 차집으로 향한다

바실리 차잡인데 깔끔하고 젊은 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문구가 있어 담아본다

예쁘다는데 싫어할 사람 있겠는가 모두를 기쁘게 하는 문구겠지

이곳에도 차와 빵을 같이 판매하고 있는데 직접 굽는지는 모르겠다

각자 취향대로 차 한잔씩 마시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길도로 들어가기 전 보길대교로 가지 않고 노화도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만 특별히 볼거리는 없다

평범한 어촌마을이다

보길도에서 바라본 이목항과 노화읍 풍경

보길도항 완도를 오가는 여객선인 것 같다

 이렇게 삼겹살구이 쌈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시간 어제 휴무로 들어가 보지 못했던 세연정과 공룡알 해변에서

에송리 해변까지 어부사시사 명상 길을 트레킹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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