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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보길도 3일 째날

보길도에서의 3일째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일출을 볼까하고 바닷가에 산책을 나왔다

그러나 해뜨는 방향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 산에 가려저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는 볼 수가 없다

볼써 작업하러 나가는 배들이 보인다

보길도는 아침 6시에서 오후 2시까지 전복양식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이른아침 무슨작업을 나가시는지 아주머니 두분이 중리 백사장을 가로질러 가시는데

한분은 허리가 70도는 굽으신 분이다

썰물 때의 중리해수욕장

가로등 불빛은 아직 켜저 있는데 작업나가는 차량이 오가는데 쌩쌩 날아가는 것 같이 보인다

보길동초등학교 여기도 전교생이 8~100명정도 된다고 하는데 시골학교 치고는 많은 편이다

전복양식장에 보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던데 귀어 인구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6일동안 머무르는 은모래펜션인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렇게 펜션을 운영하고

아들과 손자는 전복양식을 하고 있다

어제 놓았던 통발을 올려보니 꽃게 2마리 잡혔다

그대로 놔두고 미끼를 다시 넣어 던져 놓는다

어제 월요일 휴관이라서 오늘 세연정으로 왔다

세연정으로 들어가는 길

세연정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고산 윤선도(1587~1671)가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감동하여 머물렀다고 한다.

 

보길도는 그가 인조 15년(1631) 51세 때부터 13년간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이루어 낸 곳이다. 또한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은 아직도 남아있다.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세워 ‘곡수당’이라 하고, 그 건너 산중턱 위에 집을 지어

‘동천석실’이라 하였다. 계곡의 동북쪽에는 ‘세연정’을 세워 책을 읽고 뱃놀이도 하며 자연을 벗 삼아 지냈다.

 

보길도에는 동양의 자연관과 성리학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한 윤선도의 뛰어난 안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다음백과에서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보길도는 상록수가 우거지고

물이 맑아 자연경관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고산이 직접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놀이공간이다

비홍교 [보길도지]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 동쪽

겨우 한 간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앙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방단이 연결되어 있어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섬의 주봉인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그 후 두 차례의 귀양을 가고 벼슬을 하여 서울로 가거나 해남의 금쇄동 등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 85세로 낙서재에서 삶을 마치기까지 섬 여기저기에 세연정,무민당,

곡수당 등 건물을 짓고, 바위 등 자연의 경승에 대(臺)의 명칭을 붙였는데, 이 정자와 대가 모두 25여

개소에 이르며 오우가, 산중신곡 등 많은 가사와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비롯하여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겼다.

사투암 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세연정 지역은 3천여 평의 계원으로 부용동 입구에 있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조우에 연못 (205여 평)과

계담(600여 평)과 판석재방과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와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아름답다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으로 [고산연보]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때 지은 정자라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 동쪽에 호광루, 서쪽에 동하각, 남쪽에 낙기란 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세연지 중앙에 놓인 세연정은 일반 누각과 다르게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창호와 마루를 둘렀다.

창호는 분합문으로 문을 모두 들어 걸면 사방이 개방된 정자가 되어 주변의 풍경이 정자와 조화를 이룬다.

고산은 세연정의 앞에 석축단상인 동대와 서대, 서쪽 산의 옥소대를 끌어들인 거대하고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곳에서 예악(禮樂)으로 자연과 합일을 추구했다.

세연정과 세연지는 인공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인공미가 자연에 잘 녹아있다. 옛 선비들은 연못을 네모나게

만들고 그 안에 동그랗게 섬을 만들었다. 네모난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동그란 섬은 하늘을 상징한다.

하늘을 품은 땅으로 이는 인간의 몸 안에 마음을 품었다는 옛 선비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판석보 우리나라 조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며, 세연지의 저수를 위해 만들었으며,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보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그 안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세연정은 원래 터만 남아있었지만 1993년에 새로 복원하였다.

오전 이른시간 세연정 못에 비치는 반영도 선명하고 아름답다

혹약암 세연지 계담에 있는 칠암 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는 '혹약제연'이란 효사에서 따온 말로,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다. 즉 혹약암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말한다

세연정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연못 속에 놓여있다. 이를 ‘칠암(七巖)’이라고 부르는데 고산의 오우가에

물과 돌이 먼저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세연지과 칠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칠암은 문학적인 역할뿐 아니라 호우가 내릴 때 유속을 떨어뜨리기 위한 과학적인 건축물이기도 했다.

고산의 또 다른 벗인 송, 죽 또한 연못 주변에 서있다. ‘연정고송(然亭孤松)’ 부용동의 팔경 중 하나로

외로이 홀로 선 소나무도 고고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밤이 되면 고산의 다섯 벗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옛 시인의 감성을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완도신문에서

세연정

사적 제368호 보길도윤선도유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월 8일 보길도윤선도원림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명승 제34호로 재지정되었다. 지정구역 8만 1,745㎡. 보호구역 39만 8,983㎡.

남도지방에는 송악이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가장 오래된 선운사에 송악이 있다

윤선도의 오우가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로다

동쪽 산에 달이 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가운 일이로구나 그만두자 이 다섯 외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1) 물(水)

구름 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조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2)돌(石)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야 파란듯하다 누런빛 띄우나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3)소나무(松)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九泉)의 불휘고

곧은 줄은 글로 하여 아노라

​4)대나무(竹)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이 비어있는고 저렇고도

사철에 푸르니 나는 그를 좋아하노라

​5)달(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비취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 한 것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 인가하노라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윤선도가 65세 때 벼슬을 그만 두고 전라남도 보길도의 부용동에 들어가 은거할 무렵에 지은 것으로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이다.

세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강호한정(江湖閑情)에 빠지는 것이 주제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음이 붙어 있다.

여음은 배를 띄우는 것에서부터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따라 말을 붙였다.

고려 후기의 <어부가>를 이어받아 다시 창작한 것으로 이현보의 <어부사>나 그 밖의 어부가에 속하는

노래는 한시에 여음이 붙어 있으나, <어부사시사>는 순우리말로 여음을 새롭게 썼다.

또한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였다. <오우가>와 함께 윤선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고산유고>에 실려 전한다.

이렇게 세연정을 돌아보고 윤선도의 유적지 탐방을 마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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