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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 마을과 송흥록선생 생가

황산대첩비 바로 옆이 송흥록 선생 생가가 있다

황산대첩비 공원

대첩교

람천

 

동편제 :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순창·곡성·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으로 일컬어지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우조(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가능한 절제 하며,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발성은 통성을 사용하여 엄하게 하며, 구절 끝마침을

되게 끊어낸다.

 

서편제 :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담양·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며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계면조(슬픈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발성의 기교를 중시하여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 소리가 늘어지는 특징을 지니며, 장단의 운용 면에서는 엇부침이라하여, 매우 기교적인

리듬을 구사한다. 또한 발림(육체적 표현. 동작)이 매우 세련되어 있다.

 

중고제 :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 전승된 소리로, 송흥록과 동시대 사람인 강경 출신 김성옥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음악적 특색은 비동 비서(非東非西), 혹은 동·서편의 중간인데, 일제강점기 이후 전승이 끊어졌다.

송흥록(宋興祿)은 (1780년경)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태어나 소리는 극히 청미하며, 성량이 풍부하였고

부친이 한두 번 선창을 하면 그대로 방창 하였다. 

부친 송 첨지는 초대 명창 권삼득의 수행 고수였다.

12세 때 백운산으로 들어가 소리공부에 전념하고 밤이면 글을 배우며 입산한 지 5년 만에

소리를 터득하였다. 또한 소리를 정리하고 집대성하였으며 10년 만에 득음 대성하였다.

1859년(철종 10년) 봄 의정부 좌찬성 김병기(1818-1875)의 부름을 받고 왕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를 하였다. 
이에 철종은 송흥록에 세 정삼품(正三品)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하였다.

송흥록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로 알기 쉽게 기록을 하였다

업적
중국의 시중 천자(詩中天子) 이태백에 비유하기도 한다. 
당시의 모든 판소리를 집대성하여 한 차원 높은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켰으며 동편제 창법을 창시,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을 받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송흥록의 판소리가 들려온다

공간 구성의 원리

본 공간은 가왕 송홍록의 업적을 기리는 곳으로 직선적인 길은 동편제 판소리의

미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임 여러 개의 둥근 조형물은 메나리조의 구성음을 2개의

석연지에 담긴 물은 개면 조의 세련미를 보인 송흥록의 비곡을 듣고 두 눈에서 흘린

눈물을 상징화한 것이다

공적을 요약하면
첫째, 계면조의 완성이다. 판소리의 기본이 되는 선율이 바로 계면조인데, 그의 귀곡성이 신기에 달했다는

표현은 곧 계면조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판소리 표현력의 증대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진양조의 완성이다. 진양조는 판소리 장단의 하나인데 흔히 송흥록의 내부인 명창 김성옥이

처음 개발한 것이라 전해 진다. 그의 진양조 완성은 성가의 음악적 특성을 판소리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의

표현력의 증대에 기여한 것이다.

셋째, 경상도 민요의 메나리조(흔히 산유 화조라고도 한다.)를 전라도의 무가와 민요의 선율에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판소리가 전라도의 무가와 민요의 선율을 중신로 이루어졌으나 그에 의해 전국의 민요의

선율을 이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가 전라도의 지역성을 벗어나 민족 예술로서의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석연지

송흥록 생가

아래 5개의 사각기둥 조형물은 메나리조의 구성음을 표현한 조형물이다.

박초월 생가

1934년 김정문(金正文)에게 소리를 배웠고, 1935년부터 10년간 송만갑(宋萬甲)에게 〈춘향가〉·〈심청가〉·

〈수궁가〉·〈적벽가〉 등을 배웠다. 1930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7세에 오케·포리 돌·빅타레코드사와 계약하고, 〈흥부가〉·〈춘향가〉·〈심청가〉등을 취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창제는 동편제이고, 조통달(趙通達)·남해성·김수연(金壽蓮)·김정민(金貞民)에게 〈수궁가〉를 가르쳤다.

1955년 박귀희와 함께 한국 민속예술학원을 창립해 후진을 양성했고, 1962년 초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맡았다. 1966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활동했고, 1971년 국악협회 상임고문, 1974년 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지냈다. 1976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 민속 음악제에 참가했다. 〈춘향가〉·〈심청가〉에 특히 뛰어났다.

가왕 송흥록의 업적

조선 전기 8 명창 중 한 분으로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임 

모든 가사를 집대성하였으며 게 면조 진양조의 완성과

메나리조를 도입하여 판소리를 오늘날의 민족음악으로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우물

놀이기구가 없었던 옛날에는 이러한 말타기 놀이를 많이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도 이런 놀이를 할까? 협동심을 기르는 데는 최고인데....

 

며칠 자리 비웁니다

말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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