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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국악의성지 2.흥부마을

1편에이어 2편이 전개됩니다

20세기 전반 판소리

판소리는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쇠퇴하게 되었으며 양반층이 애호가 집단에서

사라지자 변화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이화중선과 임방울

일제 강점기와 명창

유성기의 보급으로 명창들의 춘향가 음반이 나왔다

흥부가

20세기 후반의 판소리

1960년대의 판소리

명창 김소희와 박동진(적벽가 예능보유자)

명창 정광수 춘향가 수궁가 예능보유자

판소리 구성요소

판소리의 기원

판소리

국악의 성지에 대한 해설

국악의 성지 본관

전에는 2층을 개방하여 볼거리가 많았는데 현재는 입장 불가  

운상문 내삼문

국악인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납골당과 묘지들

국악인들의 납골당

가왕 송흥록 선생과 악성 옥보고 선생의 묘

국악 한마당 공연장

국악의 성지 배치도

국악의 성지를 둘러보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흥부마을을 찾아보기로 하고 네비를 찍으니

아영면 성리로 안내를 한다 분명 입구에서 박 타는 조형물을 보았는데 마을로 들어서니 흥부골

우애관만 보이고 마을로 들어가도 보이는 것이 없다 거리에는 사람도 없어 다시 우애관으로

내려왔다

흥부 발복지(남원시 아영면 성리 마을)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 내려 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 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 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풂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 둔터, 새금 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 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 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갯마루에 높다랗게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금 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흰 죽 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진다. 흥부 아내가 이웃들이 흰 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 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 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있지만 개울가에는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간의 우애, 부(富)와 빈(貧),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을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 않은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되돌아봄직하다.

흥부골 권역의 방문자 센터인 흥부골 우애관은 7개 마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방문객들을

위한 안내실, 교육장, 체험장, 식당, 전통놀이, 문화공간 등이 준비되어 있어 동창회 향우회, 가족모임 등

흥부길을 방문하는 방문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문이 잠겨있다 활용을 안 하는 것 같다

다시 네비를 찍으니 이번에는 출생지가 나오기에 어차피 가는 기초 같아서 다시 방향을 돌린다

네비가 안내하는 대로 왔더니 여기는 흥부 출생지다

흥부 출생지

전북 남원시 인월면 성산길 19-14  

또한 흥부가 "제비 노정기"의 전설에 의하면 '전라도는 운봉이요 경상도는 함양이라' 운봉, 함양 두 얼품에

흥부가 사는 지라'라는 대목 및 이곳 마을의 유래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 마을의

유래는 흥부의 고향 마을일 것으로 생각된다.

흥부 고향마을

이곳은 남원시 인월면 성산마을로 <흥부전>의 발상지이다. 흥부전에 따르면 놀부와 흥부 형제가 살았던 곳은

조선시대 경상도 함양과 인접한 전라도 운봉 땅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박첨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바 이 박첨지가 흥부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흥부마을은 출생지와 발복지로 나누어지는데 출생지에서 놀부에게 쫓겨나

아영면 성리로 와서 발복을 해 잘살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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