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부터 클럽회원님댁과 우리 부부 서해안 선유도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를
완료하고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
왜 이렇게 내가 어디를 계획하면 비가 내리고 날씨가 좋지 않은지 고사라도
지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저쪽에서는 비가 온다고 취소했으면 하는데
숙소도 예약 전액 송금을 했고 본디 비가 와도 떠나는 성격이라 강행군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니 2시까지만 비가 온다 해서 다행이다 안심시키고
내차로 출발을 했다
곰소항에서 젓갈도 사고 점심계획까지 세워 곰소항에 왔다
이곳은 고창과 부안을 경계하는 곰소만이다
저쪽 편에는 인촌 김성수선생과 유명 시인 서정주 선생의 고향땅이다
서해바다는 썰물이되면 갯벌만 드러나 보이는데 역시나 물이 빠져나가고 나니
갯벌과 물길이 보이는 강으로 변해 있다
비는 개었으나 여전히 구름은 끼어 있고 바람은 차갑게 불어온다
저쪽 바라보이는 산은 아마 고창선운사가 있는 도솔산이라고 하는 선운산인 것 같다
갯벌에서 좋은 소금이 생산됐다. 염전을 한글로 풀면 바닷가의 소금밭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좋은 소금은 좋은 밭에서 생산되는데 서해 갯벌이 좋은 소금을 생산했다.
그 무렵에는 지금과 같은 다단계 염전에 의한 완전한 천일염은 만들지 못하고 갯벌에서 증발시킨 소금물을
마지막에 토기나 솥에 넣고 끊여서 소금을 생산했다. 그래서 땔감이 많고 갯벌이 좋은 곳에서 소금을 생산했다.
주로 강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그런 곳이 많았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이 강 하류에서 발달한 이유다.
서해 갯벌은 생명체들의 보고였다. 세계 5대 갯벌 지역은 미국 동부, 캐나다 동부, 아마존 강 하부,
북해 연안 그리고 우리의 서해다. 이 중에서 생물 다양성 측면을 고려해볼 때 우리 서해가 단연 돋보인다.
예를 들어 새만금에는 어류가 약 155종, 저서생물이 141종, 규조류가 1 제곱센티미터 당 20만 개체가
서식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서해 갯벌 해산물로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라 형상
새우(대합) 형상의 조각상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가 해물 칼국수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옆집으로 잘 못 들어왔다
이왕 들어왔으니 이 집에서 식사하기로 결정 생선구이 게장 젓갈 정식으로 주문했다
인당 만 오천 원 된장국도 맛있고 모두가 맛이 있어 밥 한 공기 추가했지만 그래도
반찬이 남아돈다
식사 후 건어물 산다고 수산물 판매센터로 왔다
비도 내리고 코로나 영향 바람 불고 추워서인지 시장은 너무 썰렁하다
박대도 한 두름 사고 여러 가지 흥정을 하는데 남자들이야 뒤에서 남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다
홍어 한 마리에 6kg 11만원 술안주도 하고 저녁 찌개도 끓인다고 한마리 샀다
네 명이 엄청 먹고도 남아서 두 집이 나누어 가지고 왔다
싱싱해서 마치 가오리 먹는 기분 홍어 냄새는 하나도 나지를 않는다
수산물 판매센터에서 여러 가지 구입을 하고 여기 내소사에 왔다
내소사의 원래 이름은 소래사로 백제 무왕 34년(633)에 개산조 혜구 두타 스님이 처음 지었다.
건립 당시에는 2개의 절인 대 소래사, 소 소래사가 있었으나 대소래 사는 소실되었고 소 소래사만
남아 지금의 내소사가 되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피안교에 이르기까지 약 600m의 전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 내음은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내기에 적격이며 사색하기도 더없이 좋은 길이다.
전나무 숲이 형성된 시기와 이유에 대하여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400여 년 전 내소사를 중건할 당시
이 숲도 함께 조성되었으리라 추정될 뿐이다
처음 내소사에 왔을 때 오후 늦은 시간에 이곳을 찾았는데 솔향이 어찌나 향기롭던지
잊지 못하고 다음에 올 때마다 솔향을 느껴 보려고 코를 벌름거려 봤지만 전연 느끼지를
못했는데 이번에 비로소 짙은 솔향이 풍겨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왼쪽부터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동종
고려 고종 9년(1222)에 만든 것으로 원래 내변산의 청림사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원년(1850)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종은 주로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한다. 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용무늬를
새겼고, 종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는 화려한 식물 문양을 조각하였다.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고, 종의 가운데에는 세 분의 부처를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불은 연꽃 위에 앉은 모습이며 좌우의
협시불은 서 있는 모습이다. 종에 새겨진 장식과 문양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산수유나무를 분재 형식으로 잘 가꾸어 놓았다
범종각
종과 북 목어 윤판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설선당 정문으로 들어가면 왼쪽 무쇠솥이 보인다
설선당의 무쇠솥
설선당의 1~2층 문
봉래루
내소사에 있는 삼문 중 마지막 세 번째 문, 불이문 역할을 하는 "봉래루"
속세와 구별되는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이다.
태종 12년(1414)에 건립한 전면 5칸(12.23m), 측면 3칸(6.2m), 2층 누각의 맞배지붕의 건축물이다.
상량문과 중건기에 따르면 소실된 것을 복원하면서 자연석을 초석으로 써서 기둥 높낮이가 다르다고 하였다.
봉래루 안에는 정지상의 시와 그 주위로 정지상의 원운을 차운한 시가 여러 수와 중창기, 송덕기, 시주질 등
36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불이문이라고도 하고 해탈문이라고도 하는 사찰의 세번째 문은 수미산 정상의 입구를 나타낸다.
해탈문은 일주문이나 천왕문과는 달리 찾기가 어렵다.
숨은 문, 즉 비밀의 문인 것이다. 대웅전 등 주요한 전작으로의 진입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비밀의 문"처럼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사찰에 들어가는 방법은 "누하 진입"과 "우각 진입"이 있는데, 누하 진입은 누각 아래라는 좁고 어두운 폐쇄형
공간구조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내소사 봉래루가 그것이다.
참배객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인데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는 사찰 건축의 숨은 의도이다.
처음처럼 님 글에서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다고 한다.
이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 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짜은 장식구 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짜 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공예로 가치가 높은 문살 조각과 독창적인 장식물 등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건물이다.
내부만 봐도 어마어마한 목조 건축물 같다
보물 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꽃문살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우리나라 장식 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꽃살은 나뭇결 그대로에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답다.
대웅보전의 절묘한 꽃잎 문살은 그 꽃잎이 한 잎 한 잎 살아 움직이는 듯하며 그 예술성은 다른 곳에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고 여섯 잎 보상화를 조각하며 기묘하게 맞추어 나간 연속 문양
솜씨는 더욱 신기롭다.
법당 안에서 문을 보면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정갈하게 비쳐 든다
빗 국화 꽃살문, 빗 모란 연 꽃살문, 솟을 모란 연 꽃살문, 솟을 연 꽃살문 등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며 400여 년의 세월을 지난 꽃살문이 무상한 세월을 일깨워준다.
백의관음보살좌상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상 뒤에 있는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내소사 삼층석탑
전라북도 부안군 내소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986년 9월 8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다.
신라 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높이는 3.4m이다.
맨 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 돌을 이용한 것이다.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돌의 경사도 심한 편으로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설선당
강설과 참선을 같이 하는 곳
심검당
지혜의 칼을 갈아 풀을 벤다는 참선하는 곳
무설당
경전을 배우고 참선을 하는 곳(무언의 참선)
적묵당
말없이 참선을 하는 곳
지장전과 조사 전
나 혼자라면 저 뒤에 있는 관음봉도 올라보고 변산바람꽃도 찾아보면 좋겠는데
여럿이 움직이니 그저 조용히 안내만 하며 따라다닌다
노거수가 된 벚나무 꽃이 필 때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바람도 불고 비도 내려서인지 관람객들이 별로 없다
상가 어느 집에 피어 있는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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