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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언양 오영수문학관

홍류폭포를 다녀오며 거리를 지나는데 오영수 문학관의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찾아가니 동네 뒷편 언덕에 문학관이 보인다

오영수

오영수(吳永壽)[1909~1979]는 경상남도 울산군 언양면 동부리 313번지에서 태어났다. 맥랑생(麥浪生)이란

필명을 사용하였다.

어릴 적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20년 4월 언양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6년 3월에 졸업하였다.

이후 가계를 돕기 위해 향리의 우체국에서 잠시 일하였다. 근대 문인들이 대부분 그러하였듯이, 이 무렵

『동아 일보』와 『조선 일보』에 동시(童詩)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2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 나니와[浪速]중학 속성과를 수료하였고, 1935년 일본 대학 전문부를

중퇴하였다.

1937년에는 동경국민예술원에 입학하여 2년 만에 졸업하였다. 이후 만주에서 방랑하다가, 1943년경 귀국한

뒤 아내의 직장을 따라 동래군 일광면 좌천리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의 백 씨(伯氏)인 김범 부를 만났으며, 이를 계기로 김동리와 문학적 교분을 쌓았다.

오영수는 1945년 12월부터 경남공립여자중학교[현 경남여자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일하면서 동료 교사인

 박영한(朴榮漢), 김수돈(金洙敦)과 함께 교우지 『학교 소식』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1927년 『동아 일보』에 ‘언양 소년단 오영수’로 투고한 동시 「병아리」 이후, 1949년 「남이와 엿장수」로 

등단하기 전까지 발표한 시는 20편을 훌쩍 넘는다. 1946년 6월에는 광복 초기 좌파가 주도한 지역 문단에

 맞서 조선청년문학협회 경남지부가 결성될 때 준비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1948년 맥랑생이라는 필명으로 『문예 신문』 신춘문예에 시 「호마(胡馬)」가 3등으로 당선되면서 문단에 

공식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1949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남이와 엿장수」를 『신천지』 9월호에 게재하였고,

 1950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머루」로 입선하여 소설가로 이름을 드러낸 후에는 단편 소설 창작에 

주력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동부 전선에서 종군하였고, 1951년 부산중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4년 서울로 근거지를 옮겼다.

1955년에 조연현(趙演鉉)과 함께 문예지 『현대 문학』 창간을 주도하면서 편집장이 되어 오랫동안 매체

 발행인이자 편집인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66년 현대문학사를 퇴사한 뒤 1970년 한국문인협회 소설 분과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77년에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하여 창작에 전념하였다.

 1979년 『문학 사상』 1월호에 발표한 「특질고」로 필화를 겪으면서 절필 선언을 하였으며, 이어서

 한국문인협회에서 제명되었다.

그러나 오영수는 한국 소설사에서 단편 소설의 미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소설가로 꼽힌다. 

30여 년을 훌쩍 넘는 문학적 이력에 걸맞게 150편에 이르는 단편 소설을 창작하였다. 

대체로 자연 예찬과 소박한 향촌의 향수, 한국적인 정서와 인간의 본원적 심성에 대한 탐구, 인정과 

긍정의 미학, 휴머니즘의 옹호 등을 오영수 소설 세계의 특징으로 지적한다. 광복기 부산 문학 사회를

 이끌며 단편 소설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한 오영수는 말년의 뜻하지 않은 필화 사건이 빌미가 되었는지 

건강이 악화되어 향년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 전자대전

소박하고 포근한 고향의 내음을 전해주는 오영수였다

그림에도 조예가 있어 미술교사로 시작했고 이렇게 쏘가리와 징거미 개구리와 두꺼비 잠자리

그림이 유품으로 남아 있다

서예에도 능했다 산심 강정이라는 사자성어도 남기고

낚시도 좋아해 월척을 낚을 정도였다니 다방면으로 소질이 있었다고 보인다

현대문학 창간에도 관여를 하셨다

형제자매가 10명이다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유품으로 남겨진 낚시 상장과 편지와 메모

평소에 사랑했던 도자기와 담배 파이프

그 시절에 만돌린을 연주했다니 다재다능하신 분이다

작가 시절의 모습 한결같이 마른 체형이다

오영수의 작품세계

집필실에는 본인이 만든 병풍과 현대문학이 진열되어 있다

이 필통도 본인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만든 병풍

오영수의 단편집

소설 갯마을 풍경

1953년 문예지에 발표한 갯마을은 1965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 일광해수욕장 인근 이천마을에서

촬영을 했다 지금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일광에서는 매년 갯마을 축제를 열고 있다

갯마을 줄거리

오영수의 일대기

오영수와 교유하던 분들

오영수의 문학상도 생겨서 지금까지 오영수문학상을 받은 사람들

2층에는 휴게소와 사랑방이 마련돼 있어 독서와 창작 자료검색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학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해설사가 반가이 맞아주며  혼자인데도 오영수 선생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반하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는데 문학관을 가끔 들리지만 처음 맞이하는

풍경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감사히 잘 봤습니다 인사를 했더니 차 한잔 하고 가라면서

안내를 하는데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생각에 사양을 하고 돌아서는데 팸플릿과 그림엽서까지

챙겨주는 친절함에 감동을 먹었다 관계자 두 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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