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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충주.수주팔봉

서울팀과 굴업도 가기로 했는데 겨울이라 픙랑이 심하면 배가 못들어간다 하여 민박집에서

에약을 받을 수 없다 하여 부득히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1박 2일 일정으로 모이기로 했다

9명이 두팀으로 나누어 철저히 방역수칙을 지키며 모이기로해 출발부터 신경이 쓰였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것도 찜찜해 자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하루 먼저출발 충주를

돌아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첫번째가 수주팔봉이다(2/20)

아침 7시반 출발 10시반에 도착을 했다 

차에서 내리니 추위가 부산하고는 너무 차이가 나네 가지고온 패팅으로 갈아입고

출렁다리로 올라사는데 귀도 시렵고 눈물도 나고 안경은 수증기로 보일락말락 난감이다

나만 겨울에 온 것이 아니고 차량이 20대정도는 주차해 있다

주로 부부이거나 청춘남녀 가족단위이다

드라마 빈센트 16회분 촬영지였다고 한다

출렁다리 아래로 팔봉 마을로 들어가는 팔봉교가 보인다

저곳은 달천과 팔봉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다

오르는 길이 그리 좋지는 않다 날이 가물어 먼지가 푸석푸석 옷은 먼지투성이다

이명수옹이 부모님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모원정이다

모원정

모원정은 농부였던 이명수가 부모님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양친의 산소가 있는 이곳에

1981년 12월에 정자를 건립하고 비석은 이명수가 살았던 충주시 지현동과 이웃동장들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명수옹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1996년 3월에 세웠다

수주팔봉

수주팔봉은 높이가 493m로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야트막하지만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세가 당당하다.

수주팔봉은 문주리 팔봉마을에서 달천 건너 동쪽의 산을 바라볼 때,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달천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절경을 이루고, 송곳바위·중바위·칼바위 등 창검처럼

세워진 날카로운 바위들이 수직 절벽을 이루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수부팔봉 일대는 옥천계 문주리층

(담녹색녹이석편암)이 분포하는 곳에 풍화에 강한 암맥이 뚫고 들어간 곳이다.

 

수안보면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오가천이 달천과 합하여지는 과정에서 심하게 곡류하면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산줄기가 남은 것이다.

이후 다른 방향 구조선들에 의해 산줄기가 잘게 나누어지면서 여러 개의 봉우리로 분리됨으로써 달천의 맑은

물과 깎은 듯한 절벽을 안고 서 있는 기암 계곡이 형성되었다.

석문동천(오가천)

자갈밭에 텐트한동 그리고 그위에 차가한대 주차해 있는데 설마 이추위에 야영을 했을까?

팔봉마을과 앞에 야영장이 있는데 겨울이라 썰렁하기만 하다

달천과 물돌이 마을이다 하회마을 무섬마을 회룡포 마을이나 비슷한 모습니다

팔봉 마을은 곡류천으로 물길이 아름답고 마을 안쪽의 팔봉 서원은 4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달천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 지역을 흐를 때는 청천, 괴강으로 불리고 충주로 흘러오면서 달천이라

하였다. 물맞이 달다고 하여 “달래” 또는 “감천(甘川)”이라 하였고 수달이 많아 “달강(獺江)”이라고도 불렸다.

팔봉교와 굽이처 흐르고 있는 달천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주팔봉과 구름다리

산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절경을 이루고, 송곳바위·중바위·칼바위 등 창검처럼

세워진 날카로운 바위들이 수직 절벽을 이루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수부팔봉 일대는 옥천계 문주리층(담녹색녹이석편암)이 분포하는 곳에 풍화에 강한 암맥이 뚫고 들어간 곳이다.

수안보면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오가천이 달천과 합하여지는 과정에서 심하게 곡류하면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산줄기가 남은 것이다.

이후 다른 방향 구조선들에 의해 산줄기가 잘게 나누어지면서 여러 개의 봉우리로 분리됨으로써달천의 맑은 물과

깎은 듯한 절벽을 안고 서 있는 기암 계곡이 형성되었다.

팔봉마을 하천 변을 거닐면 빛과 위치에 따라 수주팔봉 윤곽이 다르다.

잔잔하게 흐르던 달천은 칼바위를 만나 쾌청한 물살을 만든다.

칼바위폭포는 살미면 토계리에서 흘러드는 오가천 물길을 달천으로 연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바위를

자르며 생겼다.

 1960년대 초반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연에 생채기를 낸 셈인데, 50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흔적이

작은 울림을 준다.

수주팔봉은 tvN 드라마 〈빈센조〉에 나와 화제가 됐다. 입구에 드라마 촬영지 간판이 큼직하게 걸렸다.

팔봉마을에는 캠핑장이

있으며, 달천 변 캠핑과 차박은 무료다. 캠핑장에 주차장과 CCTV를 마련하고 쓰레기 무단 투기를

금지하는 등 주민과 차박이용자의 상생을 위해 노력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주팔봉 강변 차박이 금지되어있다.

구름다리

소나무사이로 보이는 달천의 모습

팔봉서원

충주 팔봉서원은 조선시대 명현(名賢)인 이자·이연경·김세필·노수신 등 4현을 모신 서원으로 후생교육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팔봉서원은 조선 선조 15년(1582)에 건립되었고, 현종 13년(1672)에 나라에서 ‘팔봉서원(八峰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년(1871) 전국적으로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원되었다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 전통양식으로 복원하였다.

이자(1480∼1533)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연산군 7년(1501) 식년문과에 장원급제, 이조좌랑을 거치다 연산군의

난정(亂政)으로 사직했다가 중종반정으로 부제학, 우참찬을 역임하다 기묘사화로 연좌되어 파직되었다.

이연경(1484∼1548)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로 유배되는 할아버지를 따라 유배소까지

갔다. 중종반정으로 풀려 형조좌랑까지 지내다 중종 14년(1519) 현량과(賢良科) 병과에 급제, 교리(校理)를

지내다 을묘사화때 파직되었고 현량과에 복구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김세필(1473∼1533)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연산군 1년(1459) 식년문과에 급제 후 대사헌·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기묘사화때 중종의 과오를 규탄하다 음죽현(陰竹縣)에 장배(杖配)된 후 생극면에 은거, 죽은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노수신(1515∼1590)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38년(1543) 식년문과에 장원급제 후 사간원·이조좌랑을 지내다

을사사화때 파직되어 충주로 돌아왔다. 1547년부터 19년간 섬에서 귀양살이하며 이황, 김인후 등과 서신으로

학문을 토론하였다. 1567년 선조의 즉위로 이조판서·대제학·좌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충주 팔봉서원지는 사액서원으로 지방 유교교육을 담당했던 곳이며, 이 곳에 위패를 봉안한 네 분은

사화(士禍)와 관련되어 지조와 절개를 지켰던 분들로, 우리 선현들의 고매한 정신과 서원의 전통을 널리

알려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선조들의 얼을 기리는 터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위키리백과에서

팔봉마을에서 바라본 수주팔봉

오가천에서 흘러 내리는 물은 폭포를 이루지만 꽁꽁 얼어서 알음기둥이 되어 있다

팔봉마을에서 야영장으로가는 길초에 이러한 민가가 있는데 페가로 남아 있어

흉물스러운데 지자체에서 이런 것은 정비를 할 수 없는 것인지 소유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관광지에 흉물로 남아 있으니 미관상 좋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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