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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와 보문사

김포 애기봉을 돌아보고 강화도 일주를 시켜준다는 제의에 어디 면 어때 

전에 세번이나 왔던 강화도지만 일주 도로를 달려보진 않았으니

한번 달려보자

일단 석모도를 돌아보기 위해 가는데 점심시간이다 

친구 왈 점심을 꽃게탕으로 사준다고 이곳 외포리 왕꽃게탕으로

안내를 한다

차림표도 살펴보는데 옆에 김준현이 일행이 다녀갔다고 주인장과 찍은 사진도 걸려있다

꽃게탕과 강화 인삼막걸리도 한병 

화분에 있는 아마릴리스도 담고

하얀 씨클라맨도 담고

차창으로 보이는 석모대교 

전에 배 타고 다닐 때는 갈매기에 새우깡을 주며 즐거운 시간도 있었는데.....

차창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들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한국의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이다.

635년(선덕여왕 4)에 창건했다고 하며, 이 마을에 살던 한 어부가 그물을 쳤다가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건져 올렸는데 꿈에 나타난 스님이 일러준 대로 현재의 석실에 봉안했다는 전설이 있다.

 

1812년(순조 12)에 홍 봉장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민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법당·관음전·나한전·대방·종각·석실 등이 있다.

특히 이 절의 역사를 대표하는 순례지인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의 입구에는 3개의 홍예문이

있고, 동굴 내에는 반원형의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를 설치했는데 그 사이에 있는 21개의 감실에는 석불을

안치했다.

해변길 따라 여기 보문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오르는데 명품 소나무 한그루가 보여

사진을 담는데 검은색 지갑이 하나가 보인다

살펴보니 인천에 어느 학교 교장선생 주민증은 강화도 커드는 한 장도 보이지 않고 

현금은 20만 원쯤(세어보지 않고 해양경찰에 넘기면서 보니 17만 5천 원) 운전면허증

신분증을 살펴보니 인천교육청 전화번호가 있어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말하고

전번을 알려달라 했더니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라 한다 현찰이 들어 있어 그런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

돌아오며 해양경찰서(지구대인 것도 같고)에서 습득자 이름과 전번 알려주고 인계를

했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본인에게 전달이 잘 됐겠지

층층나무

사찰까지 가는 길은 꽤나 급경사지역이다

친구들은 벌써 여기서 포기를 하고 나 보고만 올라갔다 오라고 한다

10년 전에 왔다 갔지만 그래도 저기 눈썹바위까지는 다녀와야지

보문사는 법음루와 종각이 따로 있다

예전에 왔을 때 찍은 사진

극락보전

 

와불전

석실 문

석실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보살이 못 찍게 하여  10년 전 왔을 때 사진으로 대신

극락보전 앞에 공조팝나무

윤장대

보통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윤장대는 팽이처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불경을 넣어둔다.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불경은 사실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렵게 느껴지며,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는 사람도 많다. 윤장대는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불구로, 중국 양(梁) 나라의梁 선혜 대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눈썹바위에 오르는 계단인데 계단 수가 400개 정도 된다

소원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눈썹바위에서 바라본 보문사 앞 풍경

눈섭바위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江華 普門寺 磨崖觀音菩薩坐像)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보문사에 있는,

1928년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석불좌상이다.

높이 9.2m, 폭 3.3m이며,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금강산 표훈사의 주지인 이 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석불좌상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머리에는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네모진 모습이다. 얼굴에 비해 코는 넓고 높으며, 귀는

투박하고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다.

 

옷은 각이 진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에는 큼직한 卍자 무늬가 새겨져 있다.

손에는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으며, 불신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가 있다.

 

이 불상은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성지(聖地)로서 더 중요시되고 있는데, 이 석불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찾는 여인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오백나한상과 사리탑

석모도를 둘러보고 강화도 본섬으로 나와 동막 해수욕장 쪽으로 왔다

동막해수욕장

돈대의 형태는 원형과 방형 2가지가 있으며, 내부에는 2~3단의 마루를 만들고 외부를 향한 벽면에 각 층마다

작은 안 혈을 내어 대포·총·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하였다. 돈대 설치의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나타난다.

〈남한지 南漢志〉에 인조(1623~49 재위) 때 수축된 남한산성에 2기의 돈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1679년(숙종 5) 병조판서 김석주(金錫胄)의 건의에 따라 강화에 53개소의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그 명칭과 위치가 그려져 있다.

1796년 완공된 수원 성곽의 서북·남·동북의 3곳에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이를 공심돈이라 불렀으며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물이다. 현재는 서북 공심돈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심돈은 서양 중세 봉건 제후 성의 일부인 탑과 유사한데 수원화성 성역에 참여했던 정약용이

〈기기 도설 奇器圖說〉을 연구한 것으로 미루어 서양 성곽을 본뜬 것으로 짐작된다.

광활한 갯벌 이넓은 갯벌을 농토로 전환한다면 ~~~

줌인해본 영종대교

돈대에서 바라본 동막해수욕장

강화도를 한 바퀴 돌았는데 자주 주차하는 것도 불편하여 눈으로만 감상을 하고

사진은 많이 담지를 못했다 블친 석화님께서 갯벌 풍경을 자주 담아 올리시는데

지나오면서 강화대교 못 미쳐 황도가 있는데 바로 저곳의 모습을 담았겠다

짐작을 하며 강화도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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