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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한산모시 전시관

서천특산품 판매장이 자리잡은 한산모시홍보관 1층에는 한산지역의 대표 특산품인 한산소곡주, 

모시잎소곡주, 소곡화주 등과 한산모시를 소재로 한 모시잎차, 모시가루, 모시송편, 참깨모시송편, 

동부모시송편, 모시개떡 모시찐빵 과 서천지역의 특산품인 소문난 서천김 등을 판매하고 있다.

벌써 감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한산모시 시연관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산의 모시짜기는 ≪택리지 擇里志≫ 북거총론편에

진안의 담배밭, 전주의 생강밭, 임천과 한산의 모시밭, 안동과 예안의 왕골논"이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예로부터 유명하였다.

 

특히, 이곳의 세모시는 섬세할 뿐만 아니라 단아하고 청아한 멋이 있어 모시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다.

그러나 섬유공업의 발달로 이 지방의 모시짜기는 점차 쇠퇴하여, 예전에는 15새모시가 극상품이었는데

지금은 12새모시를 최고로 칠 만큼 그 제직 기술이 저하되었다.

 

따라서,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기능을 보호하고 있으며, 2011년 11월 28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기능보유자로는 문정옥(文貞玉)이 지정되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1947년생)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은 문정옥 선생님한테 모시짜기를 배우면서

모시짜기 전 과정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1980년 8월 1일 전수장학생이 되었고, 1986년 2월 28일에

이수자가, 1987년 7월 1일에는 전수교육조교가 되었다가 1991년 5월 1일에는 보유자 후보가 된 뒤, 

2000년 8월 22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사모시짜기의 보유자 인증서를 받았다.

문정옥 선생님의 후계자로 선정된 후 약 23년째 되던 해였다.


보유자가 모시짜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밤나무 농사를 짓는 남편과 혼인한 후 몇 해 지난 때였다.

밤을 수확하려면 많은 인부를 사서 부려야 됐는데, 밤 값이 워낙 싸서 인건비도 못 건질 정도였다.

밤농사를 지어 생활하고 아이들 키우기에는 빠듯한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문정옥 선생님을 만나 모시짜기를 배우게 되었다. 원래 시댁은 아랫동네인

구동리에 있었는데, 얼마 후 지현리로 이사를 왔다.

지현리에 살면서 한산장을 오가다 보니 문정옥 선생님이 댁 뒷채에서 모시를 펴놓고 혼자 매는 것을

보고 도와드리게 되었다. 그 후 짬이 날 때마다 문정옥 선생님 댁에 들러 도와드리던 중 문정옥 선생님이

“모시짜는 법을 일러주면 배울 수 있겠느냐”고 하시며 배우기를 권유해 198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모시짜기를 배웠다.


이 후 문정옥 선생님 댁으로 모시짜는 법을 배우러 다니면서 선생님께서 식사를 하시거나하여 틈이나면

베틀에 올라도 보고, 말코도 차보고 하였다. 그 후 모시짜기에 자신이 붙으면서 친정에 가서 어머니가

쓰시던 베틀을 가져왔다. 1980년 겨우내 째고, 삼고, 해서 1981년도 3월에 짜서 완성하였다. 생애 최초로

짠 모시 4필은 약 12만원을 받고 팔았다. 당시 쌀값으로 산정해 보면 쌀 2가마니 분으로 꽤 큰 금액이었다.

모시짜는 여인상

단령(무연고묘출토 16세기)

단령은 깃이 둥근 포이며 관리의 시복(時服) 상복(常服)으로 착용했다

앞이 짧고 뒤가 긴 전단후장 형이며 출토당시 본래의 분홍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액주름(이흠 묘 출토 1522~1562년 경기도 박물관 소장)

액주름은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을 잡은 형태이다 

단령 답호 철릭안에 받침 옷으로 입었다 전단후장 형이며 깃과 겉섶은 이중칼깃

이중섶의 형태이다

철릭(남양홍씨 묘 출토 16세기중반 단국대학교 석주선 박물관소장)

철릭이란 상의와 하의를 따로구성하여 허리에서 연결시킨 포이다

왕의 행차를 수행할 때나 외국의 사신으로 파견될 때 국난을 당했을 때 입었다

좌우의 소매가 분리되어 매듭단추로 탈부착하는것이 특징이다

한삼과 치마(고령신씨 묘 출토. 치마 -무연고 묘 출토 16세기 초반 추정 국립민속박물관소장)

한삼은 땀 받이 용으로 사용하던 저고리의 종류로 남녀 모두가 입었다

도련이 둥글고 양 옆은 트여있으며 동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치마는 여성이 하의로 입는 옷들중  가장 겉에 입는 복식이다 여러폭의

옷감을 이어만들며 시대에 따라 길이에 차이가 있다

 

장의(고령신씨 묘 출토 16세기초 추정 국립민속박물관소장)

장의는 깃모양이 목판 깃이고 겉섶과 안섶이 좌우 대칭형이며 겨드랑이에 삼각무가 달린 옷이다

조선 초기부터 중기에 이르기까지 남녀 모두가 착용하던 외의중 하나다 

중치막(이단하 전세유물 1625~1689 개인소장)

중치막은 직령깃에 넓은 소매와 양옆에 트임이 있는 세자락 포이다 외출이나 의례복으로

착용하였다 도포나 창의의 받침옷이며 세조대를 맨다

유물은 이단하가 좌의정 시절에 입었다고 전해지는데 17세기 중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철릭(이응해 묘 출토 1547~1626년 충주박물관소장)

철릭은 상의와 하의를 연결한 옷이다철릭의 기본 형태는 변함이 없으나 시대에 따라

상하의 길이나 깃 소매 고름 주름등이 변한다 특히 상의와 하의의 비율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상의가 짧아진다

심의(김의교 묘 출토 1764~1832년 한국전통문학대학교소장)

심의는 조선시대 유학자의 법복으로 평상시에도 즐겨 입었으며 관레복은 물론 수의 제복 등 

다양한 용도로 착용하였다심의의 상은 12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년 1년 4계절 12달을 의미한다

검은 선을 두른 것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공경을 뜻한다

도포(전래유물 19세기 단국대 석주선 기념박물관소장)

도포는 도복이라고도 하여 도인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 입는 것으로 여길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옷이다 특히 일반인에게는 가장 큰 예복으로 혼례와 대소사 때 도포를 입어야만 참가가

가능하고 절을 할 수 있었다 유물은 깃모양이 둥글고 소매가 넓으며 두리형 소매이다

단령(전 박신용장군 전세유물 18~19세기 국립부여박물관소장)

단령은 둥근 깃의 관리 옷이다 시복이나 상복으로 착용하였다

녹색의 모시로 만든 홑단령으로 전 박신용장군의 의복중 관복으로 지정된 단령이다

흉배는 부착되어 있지 않고 깃 끝에 박쥐매듭이 달려 있다

한산모시전시관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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