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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춘당지의 가을

창경궁은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 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는데,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 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으며,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전과 연결되는 명정문

 

명정전(明政殿) (국보)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며, 우측에는 무신, 좌측에는 문신이 섰고, 중앙에 있는 어도는 

국왕이 이동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명정전 건물 내부에는 국왕이 앉았던 용상이 있고,  ‘일월 오봉병’이라는 병풍이 

있으며, 명정전 앞 양 옆에는 ‘드므’라 불리는 큰 청동그릇이 있다.

https://kts4500.tistory.com/7398908

 

서울 창경궁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동향이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대한민국 보물 제384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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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진풍경을 보려면 위 주소를 클릭하세요

명정문은 수리 중인 것 같아서 옆길로 접어드니 여기저기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붉은빛으로 황홀경이다

이리 담고 저리 담고 담고 또 담아도 새로운 풍경 같고 금년의 단풍 구경은 여기서 최고 절정에 이른다

중부지방에 단풍이 다 지고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심 복판에 아주 멋진 단풍 명소가

있었으니 바로 여기 창경궁이었다 

춘당지
춘당지는 물에 비친 풍광이 아름다우며 서울에서 이름난 단풍 명소이기도 하고

알록달록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춘당지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연못에 

반영된 모습이 좋은데 오늘은 원앙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으니 언감생심이다

춘당지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내에 있는 연못으로서, 1909년에 춘당대 앞 귄 농장 자리에 연못을 파고,

춘당대 앞이 되므로 춘당지라고 이름 붙여졌다. 연못가에 수정을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나,

창경궁이 복원되면서 연못으로만 정비되어 있다.

백송

오리들도 있을 법한데 모두 원앙들만 보인다

반영이나 담아볼까 했는데 많은 원앙들이 어찌나 장난질을 치는지 담을 수가 없다

청화 쑥부쟁이

식충식물

식충식물은 벌레를 잡아서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식물이다

토종동백

온실에서 본

유자. 금감. 백량금. 극락조화

위 아래 사진은 창덕궁 후원의 단풍을 담너머로 담은 사진이다

춘당지는 본래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 너른 터에 자리했던 작은 연못이다.

지금의 춘당지에는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 농포'라는

논이 있었는데 일제가 이를 파헤쳐서 큰 연못으로 만들었고, 1983년 이후에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 오늘날의 춘당지다.

성균관 은행나무만 보고 갔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담장 너머로 보이는 단풍이 있어

들어갔는데 여름에 들렸던 춘당지 하고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정말 반하고 말았다

이곳은 홍화문 쪽 단풍이다

궁궐의 여러 건물들을 다 담으면 좋겠으나 지난 5월에 들려 포스팅을 했기에 오늘은 단풍의 

풍경만 담기로 한다

이리 봐도 좋고 저리 봐도 좋고 그저 아~~ 감탄사만 나온다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넘어가 보자 잘하면 후원에도 들어갈 수 있는데

휴일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다

저곳은 창덕궁 후원으로 통하는 길이다

한 번에 50명이 들어가고 50명이 나오면 또 들어가는 예약제다

오전에 와야 현지에서 예약을 해서 들어갈 수가 있는데 단풍철이라 2시 이후라서

모두 매진이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후원의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없으니 구태어 창덕궁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리고 여러 번 돌아봤던 곳이고 전에 사진도 올렸으니 오늘은 돈화문으로 나가

종로3가역으로 가서 여의도로 이동을 하기로 한다

낙선재 앞의 뜰의 단풍

낙선재의 모습

이곳은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던 곳이고 불운의 덕혜옹주가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사량 정과 주위 풍경

선정전

보물 제814호. 조선 초기에 창건되어 오랫동안 편전(便殿)으로 이용되다가 조선 후기에 내전의 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별로 활용되지 못하였다. 당초에는 조계청(朝啓廳)이라는 건물이었는데 1461년

(세조 7)에 선정 전으로 개명하였다.

 

이 건물에서는 왕과 왕비가 크고 작은 행사를 벌였는데, 성종 때 왕비는 이곳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고 친히 누에를 치는 일을 모범으로 보였으며, 왕이 주연을 열기도 하였다.

 

인조반정 때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적에 소실된 것으로 추측되며, 1647년(인조 25) 창덕궁 중건 때

다시 중건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1674년(현종 15)에 수리한 바 있고, 1803년(순조 3) 12월에 선정전

서행각(西行閣)이 소실된 것을 다음 해 12월에 복건(復建)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창덕궁 인정문(昌德宮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이르는 출입문이다

창덕궁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다.

'인정(仁政)'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며,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法殿)이 된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결혼식, 세자 책봉식 그리고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 때의 중요한 건물이다.

숙장문

숙장문(肅章門)은 진선문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의 중문으로 내전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금호문과 마찬가지로 1475년(성종 6)에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 중 하나를 성종이 낙점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 공사를 통해 재건되었습니다.

동남아 관광객인 듯 한복을 입고 단체사진 촬영 중

돈화문을 지나면 첫 번째 나오는 진선문

진선문(進善門)은 창덕궁의 중문으로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 너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1908년 탁지부 건축사무소에서 시행되었던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6년에 복원 공사를 착수 199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태종 때 신문고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고 다음 해인 1413년(태종 13)에

무게 1만 5천 근의 동종을 걸어 시간을 알리게 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07년(선조 40)에 복구를 시작해 1609년(광해군 원년)에 완공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