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경기.강원.인천

인사동거리와 탑골공원

오늘은 반창회가 열리는 날이다 

친구와 시내 구경하고 시간 맞추어 모임 장소로 가기로 하고 인사동과 광화문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오늘의 날씨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눈이 내린다는 예보다 그러나 아직 눈이 내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종로 3가에서 점심부터 해결을 하고 인사동으로 진입을 한다

블친님의 개인전을 보기위해 방문했던 때가 벌써 7~8년은 되는 것 같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날씨가 별로여서인지 인사동 거리는 너무도 썰렁하기만 하다

저 앞에 국일관도 보이네

서울에 살 때 몇번 가본 곳인데 지금은 많이도 변했겠지 오래전에 보니 친구 매형 이 0식

타 렌트가 사장으로 있는 것 같던데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어느 학교 학생들 같은데 아마 자기 학교 미술 선생님 전시회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짐작을 해본다

전에 몇 번 와봤지만 오늘 같이 거리가 한산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동 네거리(서울 종로구 인사동) 부터부터안국동사거리(서울 종로구 송현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종로 2가)에서 관훈동 136번지(안국동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로

 길이 0.7㎞, 너비 12m이며 1984년 11월 7일 도로명이 처음 제정되었으며, 이 길이 통과하는 

중심지인 인사동에서 도로명이 유래하였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국동 사거리에서 장교(長橋)를 건너 청계천으로 갈 수 있었다.

문방사우를 판매하는 관성 필방이다

먹거리 골목도 들여다보지만 여기도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인사동에서 유명한 갈비찜 면옥 갈비탕 수제만두로 유명한 집인데 현재 점심시간 조용하기만 하다

역시 갤러리가 많고 전시회도 많이 열리는 이곳 

필방이 여러 곳 자리하고 있다

낙원동 낙원떡집 체인점인 듯

아직도 태극당이라는 빵집이 있었네 50년 전 내가 살 때는 태극당이라는 빵집이

서울에는 체인점 형식으로 많이 있었는데 빵 회사들이 많이 생기면서 자취를 감춘 듯 

했었는데.......

인사동이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지역에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 방(寬仁坊)과 견 평방(堅平坊)이 있었고(방(坊)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도의 행정구역 명칭의 하나로 성안의 일정한 구획을 말함),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 이루어진

행정개혁 때는 대사동(大寺洞), 원동(園洞), 승동(承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있었다. 관인 방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인사동이라는 동명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사동(댓 절골)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백과사전에서

일제강점기부터 골동품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들 상점들은 문화재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인사동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는 1919년 3월 1일의 독립운동을 들 수 있다.

당시 33인이 모였던 태화관 자리에는 태화빌딩이 자리 잡고 있다.

 

해방 후 1970년대에 들어와 화랑, 표구점 등의 미술품 관련 상점들이 이곳으로 집중되면서 인사동은

현재와 비슷한 문화의 거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는 1988년에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하였고 2002년 4월 24일에는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백과 사잔에서

손맛 나는 인사동 쌈지길

인사동 쌈지길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 손맛 나는 작품과 문화를 만나고 즐길 수 있는 '공예전문 쇼핑몰'

인 인사동의 가장 대표 장소입니다. 전통과 현대문화가 어우러진 곳 쌈지길은 도자, 섬유, 금속, 목공예 등의

공예 샵과 젊은 디자이너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운데 마당과 쌈지길 곳곳에 전시,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쌈지길만의 특화된 체험 공방/ 원데이 클래스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누구나 함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쌈지길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어른과 아이,

친구와 연인 누구나 함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도자기 공예, 자개공예, 핸드메이드 주얼리 및

가죽공예, 동판공예, 유리공예, 양모펠트공예, 비누공예, 한지공예 등을 원데이 클래스, 자격증 클래스,

단체 클래스까지 미리 예약을 통해 즐길 수 있습니다.

필방

쌈지길.

영업시간 10:30 ~ 20 :30.( 설날, 추석 당일만 휴관)

쌈지길은 우리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전통고 예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다양한 공예품과 디자인

상품, 작가의 아트 상품을 만날 수 있는 공예, 디자인 전문 쇼핑몰입니다.

쌈지길에는 도자, 섬유, 금속, 목공예 등의 공예 숍과 젊은 작가&디자이너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디자인 숍,

맛과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점과 찻집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운데 마당과 쌈지길 곳곳에서 전시,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이벤트가 진행되며, B1 체험공방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와 어른, 연인과 친구 모두 함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인사동의

대표 복합 문화공간 쌈지길은 인사동의 명소로서 다채로운 한국의 멋과 문화를 새롭게 전하려고 합니다.

삼지길 앞에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잇으나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이곳마저도 썰렁하다

인사동은 도심 속에서 낡지만 귀중한 전통의 물건들이 교류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인사동에는 큰 대로를 중심으로 사이사이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이 미로 속에는 화랑, 전통공예점, 고미술점,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카페 등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인사동의 가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멋으로 젊은이들은 물론 중년층에게까지 매우 인기가 많다.

그중에서도 화랑은 인사동의 맥을 이어온 중심이다, 백과사전에서

이곳에는 100여 개의 화랑이 밀집되어 있는데 한국화에서 판화, 조각전까지 다양한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랑으로는 민중미술의 중심 역할을 했던 학고재, 재능 있는 작가들의 터전이 되었던 가나화랑,

가나아트센터 등이 있다. 만약 인사동의 유명한 화랑만을 골라서 편하게 구경하고 싶다면 미술관 순화 버스를

이용해보자.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 화랑 10여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인사동은 매주 토/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날은 기존 가게는 물론 거리에는 전통공연과 전시는 물론 엿장수, 사주와 궁합을 보는 할아버지가 함께 한다.

이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은 바로 각국에서 몰려든 외국인들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기 위해 찾아든 외국인 관광객들은 전통가게에서 고물 건을 보거나 고미술을 산다.

그리고 거리에 있는 엿을 사고 전통 파전을 먹는다. 도심에서 느끼는 전통의 멋에 빠진 외국인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백과사전에서

골동품을 파는 상점이지만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주인장 밖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4층으로 이루어진 안녕 인사동은 놀거리, 즐길거리, 볼거리로 한가한 곳이다 다.

YG 플레이스, 인생 네 컷, 하리보 전시회, 컬러풀 뮤지엄, 라인 프렌즈, 모나미, 오르골 하우스,

소품샵, 그리고

가족 캐릭터를 이모티콘으로 만든 곳으로 엽서, 키링, 카드 등을 판매하는 소품샵 등

1층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인사 센트럴 뮤지엄이 있다. 이곳에서 하리보 전시회가 진행 중

2,3,4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놀거리들이 있다. 한때 즐겨 사용했던 이모티콘 소품샵 등

윈 윈터 페스티벌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상품을 판매 촉진하는 행사로

12월 16~25일까지 10일간 최대 5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소비촉 진행 사라고 함

종로구 열린 송현 광장

광화문 거리가 확 달라졌다 차도가 반으로 줄어들고 광장으로 변했다

세종대왕 동상을 뒤로하고 종로 3가로 다시 간다

눈이라도 내릴 듯 잔뜩 찌푸린 날씨 2시부터 5시까지 눈이 내린다는 예보인데

아직 그 시간은 되지 않았다

탑골공원으로 왔다

지금 현재 눈발이 날리고 있는데 쌓일 정도는 아니고 내리며 녹아버린다

 

         독립선언서 현대 말 풀이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 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반만 년이나 이어 온 우리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된 마음을

모아서 이 선언을 널리 펴서 밝히는 바이며, 민족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올바르게 바뀌는 커다란

기회와 운수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워 보이는 것이니, 이 독립 선언은 하늘의 밝은 명령이며,

민족 자결주의 에로 옮아 가는 시대의 큰 형세이며,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려는 정당한

움직임이므로, 천하의 무엇이든지 우리의 이 독립 선언을 가로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찌꺼기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의 희생이 되어 우리 역사가 기록된 지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구속당하는 고통을 맛본 지 이제 10년을 지났으니, 그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적 발전에 장애를 받음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함과 영화로움에 손상을 입은 바가

그 얼마이며, 새로우면서도 날카로운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참여할 기회와 인연을 잃어버린

것이 그 얼마인가?

 

 아, 슬프다. 지난날 당한 억울함을 드러내어 세상에 펴려 하면, 지금 당하는 고통을 벗어나려 하면, 앞날의

두려움을 없이 하려면, 억눌려 오그라들고 사그라진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위엄과 체면을 떨쳐 일으켜

세우려면, 각 개인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자손들에게 쓰라리고 부끄러운 재산(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스러움과 복됨을 이끌어 맞이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굳게 결의를 품고 인류의

공통된 본성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와 인도를 실현하기 위해 군대와 무기를 대신하여 도우고

지켜 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함에 어떤 강한 자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나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1876년, 강화도에서 수호 조약을 맺은 뒤로, 여러 차례에 걸쳐 맺은 가지가지의 굳은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벌하려고는 아니한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그들 정치가는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온 신의 없음을 벌하려고는 아니한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그들 정치가는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온 빛나는 업적(자랑스러운 이 나라)을 식민지로

여기고, 우리 문화 민족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으로 대우하여, 다만 정복자로서의 쾌감을 욕심낼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적 바탕과 뛰어난 민족정신을 업신여긴다 하여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고도 아니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급한 우리는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겨를이 없다. 지금의 처지를 고치고

수습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잘못을 들추어 응징할 겨를이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나라를 건설하는

것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때의 감정에 따라 남을 시기하여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다.

침략주의라는 낡은 사상과 군벌의 묵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이 되어 버린,

불합리하고 또 부자연스러운 그릇된 상태를 크게 바로잡아 고쳐서, 일본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고도 합리적이며

올바르고 떳떳한 큰 원칙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처음부터 민족의 요구에서 나오지 않은 두 나라 합방의 결과가 마침내, 힘으로 억누르려는 임시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통계 숫자로 거짓 꾸민 상태에서, 이익과 손해가 서로 다른 두 민족이 영원히 화목하게

살아갈 수 없는 원한의 구렁텅이를 날이 갈수록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제 모습을 보라. 날래고 밝은

결단력으로써 묵은 잘못을 바로잡고, 참되고 바른 이해와 동정에 바탕을 둔 우호적인 새 국면을 여는 것이

서로가 불행을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임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은가?                      

 

또, 분함과 원한이 쌓인 우리 2천만 민족을 위압적인 힘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오직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정과 위험의 주축이 되는 4억의 중국인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와 의심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망해버리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함과 아울러 일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힘과 아울러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자의 그릇된 길에서 나와, 동양을

떠받치는 자로서의 중요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자나 깨나 떨어 버리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과정이 되게 하는 것이니, 이 어찌 잘고 용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는가?

 

 아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갈고닦아

길러진 인도주의적 정신이 이제 막 밝아 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다. 새봄이 세계에

돌아와 만물이 되살아나기를 재촉하고 있다.

매서운 추위 속에 숨조차 제대로 못 쉬며 움츠리고 있듯이, 일본의 혹심한 탄압에 모든 활동이 막혔던 것이

저 지난날 한 형세였다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기운을 마음껏 펼치듯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떨쳐 펴는 것이 오늘의 형세이니, 세상의 회복된 시운을 맞이하고, 세계의 사조가 바뀌어 가는 기회를 탄

우리는 아무 망설일 것 없으며, 거리낄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온전히 지켜

왕성한 번영에 삶을 즐겨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새 봄이 가득 차 평화가

넘치는 온 세계에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를 맺게 할 것이다.

 

 우리가 이에 힘차게 떨치고 일어났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없이 누구나 어둡고 답답한 일본의 억압 상태에서 활발히 일어나 나와서, 삼라만상과 함께 즐겁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게 되었다. 먼 조상들의 혼령이 우리를 가만히 도우며, 밖으로 온 세계의 형세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다.

 

 공약삼장(약속 세 가지)

 

 一.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한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나타낼

것이며, 남을 배척하는 감정으로 그릇되게 달려 나가지 말라.

 

 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一.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든지 밝고 정당하게 하라.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손병희 선생 약력

팔각정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영국인 브라운이 조성한 현대식 공원으로 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 10층 석탑으로인하여 파고다공원 또는 탑동공원이라 불렸으며, 이때 팔각정 함께 지었다.

황실 공원으로 제실, 음악 연주장소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1913년부터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학생들과 시민이이 앞에 모여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시위행진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시민들이 울적해진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이곳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원각사지 삼층석탑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탑골공원 안에 있는 조선 전기의 10층 석탑. 전체를 대리석으로 건조했으며

4면 두출 성형의 평면으로 된 3층의 기단, 목조건축물의 형태를 모방한 10층의 탑신, 탑 표면의 장엄한

조각 장식 등이 그 유례가 드문 특수한 탑이다. 1348년 개성 근교에 건립된 경천사 10층 석탑을 본떠

1465년 원각사 창건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탑의 상륜부는 없어졌으며 상층 기단부 3층과

탑신 3층까지 4면 돌출형의 평면으로 이루어졌고, 4층 탑신부터 정사각형 평면으로 바뀌었다. 1·2·3층은

팔작지붕으로 표현했는데 특히 3층은 겹처마로 하여 4층 이상의 단조로운 지붕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원각사비

대원각사비

보물 제3호. 높이 4.9m, 폭 1.3m.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1464년(세조 10)에 창건된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로, 1471년(성종 2)에 건립되었다.

원각사는 탑골공원 자리에 있던 절로서,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의 본사로 세웠다.

조계종이 없어지자 관아로 사용되다가 세조가 간경도감에서 〈원각경 圓覺經〉을 번역하고, 회암사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다시 원각사를 짓고 13층 사리탑을 세웠다.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둔중한 몸체로 머리 모양은 목이 수평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다. 등 무늬는 육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평 행세선을 새겼으며, 등 중앙에 연잎 조각을, 꼬리와 다리에는 물고기 비늘을 조각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비는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 몸돌 위에 보주를 받든 2마리의 용을 조각했다.

 

조각 아래 가운데에는 '대 원각사지 비'라는 비의 이름이 강희맹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당대 명신들이

짓고 썼는데,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金守溫)·성임,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徐居正)·정난종이 각각 짓고 썼다.

대리석제의 비는 마멸이 심하여 전혀 알아볼 수 없는데, 다행히 비문의 내용이 〈속동문선 續東文選〉에

실려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3번지 탑골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경기.강원.인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주.강원감영  (22) 2023.01.04
오산 고인돌공원  (21) 2023.01.02
영월 고씨동굴  (37) 2022.12.25
한강 선유도  (39) 2022.12.21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35) 2022.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