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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화순 쌍봉사

창건주인 철감선사의 호를 따라 쌍봉사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철감선사는 847년(문성왕 9)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경문왕 때 이 절을 창건하여 신라 선종구산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점차 퇴락한 것을 1081년(문종 35) 혜소국사가 중건했고, 공민왕 때 전라도관찰사였던 김발이 시주하여

중창한 바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28년(인조 6)에 중건했고, 1667년(현종 8)과 1724년(경종 4)에

중건했다. 중요문화재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雙峯寺澈鑒禪師塔:국보 제57호)과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和順雙峯寺澈鑒禪師塔碑:보물 제170호)가 있으며 이밖에도 극락전·명부전·

요사채 등의 당우가 남아 있다.

쌍봉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리산문(桐里山門)의 개산조 혜철(慧徹)이 839년(문성왕 1)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839년 이전에 쌍봉사가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855년에는 철감(澈鑒)선사가 이곳에서 선문을 개설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고 개산조가 되는데 이때 쌍봉사의 사세가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중기에는 혜조국사가 쌍봉사를 재건한 사실이 『쌍봉사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쌍봉사는 정유재란 때 대웅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불사가 소실되었다.

쌍봉사 대웅전은 1628년(인조 6)에 중건되었고, 1690년, 1724년에 중창이 있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대웅전은 1984년에 신도의 부주의로 전소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전남 화순에 있는 쌍봉사 대웅전이다. 건립 시기도 법주사와 비슷한 시기이다.

이 건물은 탑이 아니고, 법당이다. 목탑 형식의 법당인 것이다.

단층 법당으로 심주의 처리를 2층에서 한 것이 다르나 근본적인 구조는 목탑 형식이다.

 목조 건축에서 탑과 법당을 구분하는 방법은 건물의 지붕이 어떤 양식이냐로 따진다.

탑은 찰주가 있으나 법단은 찰주가 없이 지붕 양식이다.

 한국 목조 건물로서는 날렵함과 체감비, 처마 곡선의 처리 등으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물로 손꼽혀 왔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澈鑒禪師)가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창건하였다.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지자

왕이 궁중으로 불러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며, 창건주 철감선사의 도호가 쌍봉이었으므로 사찰명을 쌍봉사라

하였다고 한다.

철감선사는 이 절에서 선문 9산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이곳에서 그의 뒤를 이어받은

징효(澄曉)가 영월의 흥녕사(興寧寺)에서 사자산문을 개산 하게 되었다.

창건 이후 퇴락한 절을 1081년(문종 35)에 혜소국사(慧昭國師)가 창건 당시의 모습대로 중건하였고, 공민왕 때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절의 땅을 면세해 주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628년(인조 6)에 중건하였고, 1667년(현종 8)과 1724년(경종 4)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4년에는 쌍봉사 일원이 전라남도 기념물 제247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이점으로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최충헌(1149~1219)에서 시작된 최씨 정권의 제3대 집정자인 최항(?~1257)이

젊은 시절 '만전(萬全)'이라는 이름으로 쌍봉사에서 주지를 지낸 적이 있었다. 고려사 열전에 전하는 바로는

무뢰배 승려들을 모아다가 문도로 삼고 오직 재물을 늘리는 것만 일삼으니, 금과 비단을 엄청나게 모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만전은 환속 후에 이름을 최항으로 고치고 최씨 정권을 이어받는다.

무설전

곳곳에 연등을 달기 위한 시설을 하고 있었다 

범종각

찬왕문 앞의 쉼터

당간지주

호성전

조주선사

오염제리

연꽃은 오염된 물을 정화시킨다는 말인지 오염된 것을 멀리 하라는 뜻인지 오염된 것을

제거하라는 뜻인지 잘 모르는데 문의하니 오염된 것은 모두 보내고 새로운 것을 가지자

라는 말로 해석이 나옵니다 뜻글의 애로사항입니다

쌍봉사 극락전 

극락전 내부의 모습

지장전 

불두화

사찰(寺刹)에 가면 스님들의 선방 댓돌 위에 조고각하라는 주련(柱聯)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무신을 가지런히 놓는 것을 살피라는 것이다.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마음자세인 지를 살펴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 나온 말인 조고각하는 “진리를 밖에서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기  발밑부터 잘 살펴보고 바르고 정의롭고 참되게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다.

여왕벌이 나와 딴살림을 차리려고 하는데 이렇게 바위에 여왕벌이 붙으니

일벌들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벌통하나가 생기는데 아무도 부근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사찰 앞의 작은 연못

2년 전에 본 대수염인데 이제야 다시 보게 된다

광대수염

전국의 습기 많은 물가 또는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인도, 일본, 러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 넓게 분포한다.

줄기는 네모지고, 높이 30-60cm, 털이 조금 있다. 잎은 마주나며, 난형,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톱니가 있다.잎 양면은 맥 위에 털이 드문드문 난다.

꽃은 4-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5-6개씩 층층이 달리며, 흰색 또는 연한 노란색이다.

꽃이 달리는 잎에도 잎자루가 있다. 화관의 아랫입술은 넓게 퍼지며, 옆에 부속체가 있다.

수술은 2강웅예이며, 암술은 1개다. 열매는 소견과다. 약용으로 쓰인다.

방가지똥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길가나 빈터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60~120cm 정도로 가지가 갈라지고 둥글며 속이 비어 있다.

모여 나는 근생엽은 개화기에도 남아 있다.

어긋나는 경생엽은 길이 10~25cm, 너비 5~8cm 정도의 넓은 도피침형이나 우상으로 깊게 갈라지고

밑부분은 원줄기를 감싸고 가장자리에 치아상의 톱니가 있으며 톱니 끝은 바늘처럼 뾰족하다.

5~10월에 피는 두상화는 지름 1~2cm 정도이고 설상화로 구성되며 황색이다.

수과는 갈색이며 길이 3mm 정도의 타원형으로 3개의 능선과 백색 관모가 있다.

‘큰방가지똥’과 달리 잎이 줄기에 달리는 곳은 뾰족한 이저로 되며 잎가장자리 톱니 끝의 가시는

작으며 수과의 옆줄이 뚜렷하다. 여름 밭작물 포장에서 문제잡초가 된다.

사료용으로도 이용한다. 어린순을 삶아 나물로 먹는다.

하얀 민들레

새완두

중남부지방에 분포하며 산 가장자리나 들의 풀밭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밑부분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길이 30~60cm 정도이고 덩굴이 지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는 우상복엽이고 12~16개의 소엽은 길이 10~16mm, 너비 2~4mm 정도의 피침형이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총상꽃차례의 3~4개의 꽃은 백자색이다.

꼬투리는 길이 8mm, 너비 3mm 정도의 긴 타원형으로 잔털이 있으며 2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종자는 편평한 원형이며 흑색이다.

‘얼치기완두’와 달리 한 꽃차례에 3~4개의 꽃이 달리고 꼬투리에 털이 있으며 2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퇴비용, 식용 및 사료용으로 이용하며 밀원용이나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전초는 ‘소소채’라 하여 약용하고 달여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어린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는다.

새순을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하며 열매는 콩이 여물기전에 튀김을 하거나 데쳐서 볶아 먹는다.

모과

화순에 2개밖에 없는 국보 중의 하나로 국보 제57호.

쌍봉사에 세워진 철감선사(澈鑒禪師)의 승탑으로 화강암 재질이다.

탑이 조성된 시기는 철감선사가 71세로 입적한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 즈음이리라 추정한다.

본 승탑은 기단부터 지붕돌까지 전체가 8 각형이다.

아쉽게도 지붕돌 위에 있었을 머리장식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원형이 상당히 잘 보존되었다.

본 승탑은 기단부부터 탑신, 지붕돌까지 하나하나 섬세하며 화려한 조각들을 부조로 새겼다.

팔각형 기단에는 사자 8마리와 구름, 연꽃,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조인 가릉빈가를 묘사했다.

 사리를 모신 탑신은 매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기고 기둥 사이의 각 면마다 문과 사천왕, 비천상 등을 조각했다.

역시 팔각으로 된 지붕돌도 섬세한 하게 조각했다.

 

 기와 사이의 기왓골도 하나하나 표현하고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도 하나하나 만들어놨는데 심지어

막새기와의 문양까지도 모두 조각했다. 지붕의 기와 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마에는 서까래까지도

만들어놨다. 이렇게나 디테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덕에 본 승탑은 신라시대 건축물의 지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승탑 가운데 원형을 잘 보존하였거니와 조형 수준이 대단히

뛰어나고 섬세하여 가치가 대단히 높다. 현전 하는 모든 승탑 중에서도 아름답고 빼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칠갑선사 탑비

보물 제170호. 높이 1.4m.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868년(경문왕 8) 철감선사 도윤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철감선사(798~868)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호는 쌍봉(雙峰), 속성은 박 씨이다.

825년(헌덕왕 7) 당나라로 유학 갔다가 847년(문성왕 9) 범일국사와 함께 귀국하여 쌍봉사를 창건하고

신라 선종구산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닦았다.

 

71세에 쌍봉사에서 입적하니, 시호는 철감(澈鑒), 답호는 징소(澄昭)라 했다.

현재 비몸돌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오른발을 살짝 들어 올린 새로운 조형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다투는 용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 ‘雙峯山澈鑒禪師塔碑銘’(쌍봉산 철감선사탑비명)이라는 2행의 전액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격렬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95-1번지 쌍봉사에 있다.

 

금년에는 금창초를 많이도 만나고 다녔는데 오늘 여기에도 금창초가 지천에 깔려 있다

Norman Candler - 작은 소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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