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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노루목적벽 보산적벽)

화순적벽은 수자원보호구역 안에 있어 출입금지지구다

화순군청에 적벽투어를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된다

10여 일 전에 블친님께서 예약을 해주셔서 쉽게 접근을 할 수가 있었다 

몇 년 전에 멋모르고 갔다가 코로나 시절이기도 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

적벽투어는 매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만 열리며, 하루 3회(09:30, 13:00, 15:30),

하루 최대 384명 만입 장할 수가 있다(4/23)

화순적벽 초소에서 화순적벽이 바라다보이는 망향정까지는 4.8km. 동복호의 절벽을 따라 비포장도로가

구불구불 휘어지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버스가 이런 길도 다니나 싶을 정도로 아찔함이 느껴진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화순적벽에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이 있는데 통칭해서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적벽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신재 최산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 붙였다

통천문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곳 외에도 화순온천과 이서커뮤니티센터에서도  예약을 받는다

가까이 가기 전에 바라본 장항적벽(노루목적벽) 

망미정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적송(赤松) 정지준(丁之寯, 1592~1663)이 1646년(인조 24)에

세운 정자이다.

건립당시에는 절벽 대안(對岸)에 있었으나 동북댐 확장공사로 말미암아 1985년 현 위치로 이축하게 되었다.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熙, 1786~1856)의 아우 금미(琴麋) 김상희(金相喜 : 1794~1861)의 글씨가 걸려

있었으나, 수몰과정에서 분실되었고, 현재는 정면에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1907~1997)의 글씨와 측면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글씨가 걸려 있다.
정지준(丁之寯)은 창원 정 씨로 청정재(淸淨齋) 정암수(鄭岩壽)의 손자이다.

정지준의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금산에서 순국한 참의공 정유성(鄭有成)이다.

정지준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향해 출병했으나 임금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했다. 그 뒤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망미정을 짓고 일생을 마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글씨라고 한다

소암 현중화가 썼다고 한다

오른쪽은 정지준의 시이고 왼쪽은 라무송의 시이다

白雲出峀鳥還飛(백운출수조환비)  흰 구름 솟아날 때 새는 돌아오는데

玄鶴盤空弄夕暉(현학반공농석휘)  검은 학은 공중에서 저녁 빛을 희롱하네

一赤中箭爭也畢(일적중전쟁야필)  붉은 점을 명중하며고 다투어 화살을 다 당겼는데

天風來拂六銖衣(천 풍래불육수의)  불어오는 하늘 바람에 가벼운 옷자락이 펄럭이노라 

 

                                                                                               적송(赤松) 정지준(丁之寯)

 

석천 임억령(1496∼1568)의 얘기처럼 '적벽동천(赤壁洞天)'이다.
적벽이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적벽의 절경을 보며 한을 달랜 정암 조광조(1482∼1519)도 떠올랐다.
정암은 기묘사화로 화순 능주에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았다.
적벽의 장관에 흠뻑 취해 오래 머문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1807∼1863)도 있다.
난고는 화순에서 오랜 방랑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호남을 대표하는 하서 김인후, 담양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금산에서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적벽을 찾았다.

석천 임억령은 적벽을 유람하고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남기기도 했다. 조선 후기 들어 실학자 홍대용과

정약용도 아버지를 따라 유람을 나섰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도 화순을 세 번이나

찾을 정도로 각별했다.

적벽은 오래전부터 시인묵객도 많이 찾았지만, 서민들의 휴식처이자 피서지였다.

적벽의 높은 절벽 위에서 짚불을 강으로 날리는 낙화놀이도 즐겼다.

가까운 담양에서도 사람이 몰려올 정도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동복댐이 건설되기 전만 하더라도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1971년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5년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출입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댐이 들어서면서 적벽의 일부를 비롯해 인근 15개 마을도 수몰됐다.

30년 만에 감격스러운 상봉을 하게 된 셈이다.

3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으니 적벽과 함께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남은 거었다.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이서면의 노루목적벽을 꼽는다.

화순적벽은 노루목적벽이 대표한다.
산의 형세가 노루의 목을 닮았다고 이름 붙었다고들 하나, 장항마을에 자리했음에 불린 게 정설이다.
한자로는 '장항적벽', 망미정 앞에 있었다고 '망미적벽'으로도 불린다.

노루목적벽은 하늘과 호수 사이에 펼쳐진 아담한 병풍 같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가 거꾸로 서있는 모양새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돌아 나오면서 이룬 절경이다.

높이가 본디 100m쯤 된다.
절벽에서 폭포가 쏟아지며 위용을 뽐냈다. 절벽 아래로는 물이 흘렀다.
모래밭이고 자갈밭이어서 으뜸 물놀이 터였다.
삿대를 저어 가는 나룻배도 떠 다녔다. 그 배를 타고 뱃놀이를 즐겼다.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는구나.”

적벽을 다녀간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김삿갓)은 화순적벽의 수려한 풍경에 넋을 잃었다.

아마도 적벽의 절경에 매료되어 더는 방랑을 멈추고 압해정 씨 댁에서 머물다 생을 마감했다

전남 화순에는 김병연의 흔적이 제법 남아 있다. 김삿갓 ‘종명지’와 ‘물염정’이 대표적이다

김병연은 화순적벽 가운데서도 물염적벽을 자주 찾아 시를 읊었다고 전한다.

물염적벽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정자, ‘물염정’이 있다.

지난 2004년 풍광이 수려하고 유서 깊은 정자로 뽑힌 8개 가운데 당당히 제1경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중엽에 물염 송정순이 세웠고, 1966년에 중수해 지금에 이른다.

물염정 내부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시 28수가 걸려 있다.

중수 당시 마을의 배롱나무를 다듬지 않고 자연스럽게 세운 기둥도 볼 만하다.

앞에 다듬지 않은 배롱나무가 보인다. 예전에 물염적벽에 왔을  때 담은 사진이다

김삿갓김병연 머물다 세상을 떠난 압해정 씨 창원군파 후손의 사랑채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 담은 사진이

 

김병연이 눈을 감은 곳은 노루목적벽에서 10km 남짓 떨어진 동복면 구암마을이다.

마을에는 그가 눈을 감은 곳이라는 뜻의 김삿갓 ‘종명지’가 있다.

압해 정 씨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로 김삿갓이 머물렀던 사랑채와 안채, 사당 등이 복원되어 있다.

김병연은 화순을 세 번 찾았으며 6년간 머물다  1863년 3월, 향년 57세로 이곳 사랑채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삿갓 종명지 왼편에는 삿갓동산이, 마을 뒤편에는 그가 죽은 뒤 초분을 했던 초분 터가 남아 있다

인증숏도 날리고

대밭 사이로 통행하는 길인데 질경이 길이다 

망향정

화순적벽의 첫 번째 포토존은 망양정이 있는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웅장한 화순적벽보다 망향정을 이고 있는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의 조화가 훨씬 더 멋지다.

포토존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 아쉬울 따름이다. 갈지자로 된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가야 망향정 입구에 닿는다.

망향정 주변에는 적벽동천과 적벽팔경이 새겨진 비석, 수몰된 15개 마을의 비석을 세운 망향비와 망배단,

천제단 등이 남아 있다.

동복댐이 만들어지면서 노루목적벽의 운명도 바뀌었다. 절반 이상 물에 잠기고 댐 안에 갇혀버렸다.
댐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4년엔 일반인의 출입마저 통제됐다. 정적만이 흐르는 적벽이었다.

노루목적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2014년 10월이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이 상생 발전을 위해 개방에 합의하면 서다

수몰지구 이주민들을 위한 망배단

수몰지역 주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망향탑. 탑을 둘러싸고 수몰된 15개 마을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수몰되기 전 옛 다리가 요즘 비가 내리지 않아 물부족으로 다 드러나 있

적벽팔경의 내용은 아래 전시관에 있으니 참고하시길 

적벽동천기 

화순적벽에 대한 해설

적벽팔경

적벽동천

석천 임억령이 적벽동천이라 명하였고  하서 김인후가 적벽시를 읊음으로써 만국의 명승지가 되었다

1847년 12월에 부임한 동복현감 이인승이 적벽동천이라는 글자를 석면에 새겼다

동복댐의 현황

동복댐이야기

김삿갓 시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에 대하여

천재단

송석정 

광산 김 씨 석정처사 김한명이 지은 송석정의 풍치도 아름다운 정자도 있는데

차를 타고 이동을 하기 때문에 이곳은 들려보지 못했다 캡처한 사진

적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하다.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백악기의 쇄설성 퇴적암류와 화성암류가 분포하고 있어 국가지질공원인

무등산권 지질공원의 명소이기도 하다.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이 한눈에 보인다

앞에 보이는 곳이 보산적벽이다

보산적벽(寶山赤壁)은 규모가 작지만, 경관이 두드려진다.

1982년부터 1985년에 걸쳐 지역 주민을 위한 상수도용 댐을 만든 뒤, 절애의 일부가 수몰되어

가까이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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