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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무장읍성

무장 개갑장터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 개갑장터는 만민평등을 주창하며

동학과 서학이 함께하는 국내유일의 종교성지다.

천주교 신자인 최여겸 마티아가 1801년 이곳에서 순교했고, 100여 년 뒤 1894년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접주들과 교도들이 이곳에 모였다가 인근 구수내마을에서 봉기했다.

무장읍성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144,949.4m²

(43,847평)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흙으로만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던 이 성이 공사때에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났었는데 성곽일부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것임이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만 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한편 1894년 일어났던 동학 농민혁명은 이곳 무장읍성에서 맨 처음 봉기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진무루

무장읍성에는 남문인 진무루(鎭茂樓)가 터만 남아 있었고 누각 또한 한동안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옹성과 함께 복원돼 옛 위용을 되찾았다.

진무루는 앞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이다. 아직 복원이 안됐지만 동문은 터가 남아 있다

처마에는 송사지관(松沙之館)이라고 쓰인 대형 편액이 내걸려 있다.

옛 고을 무송과 장사 끝 자를 딴 이름이다. 옛 무장현의 위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선조 14년(1581년)에 지었다고 하니 400년이 넘었다.

객사 한 가운데 정청은 임금의 궐패를 모셔놓고 관헌들이 매월 초하루, 보름 북쪽 궁궐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던 신성한 공간이다. 돌계단에는 구름무늬, 태극무늬 꽃무늬 등이 새겨져 눈길을 끈다.

읍성 안에 판 우물 두 곳 또한 풍수지리학적으로 뱀의 눈에 해당하는 지점에 있다.

읍취루(挹翠樓)

 

동학혁명 무장기포지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복원사업의 하나로 축조되었다.

당시 주민 생활상을 살피고 민정 시찰 용도로 활용한 읍취루는 한식목조 2층 누각 68여㎡ 규모로 조성되었다.

읍취루는 예를 갖추며 금조를 만나는 곳이라 하여

업무를 보았다기 보단 외부인을 맞이하여 환담하며 화합을 갖는 연회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읍성 중 제작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유일한 읍성인 무장읍성은 조선 태조 때에 빈번하게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은 호남 천년의 역사가 서린 고장이다. ‘무장’은 본래 고려조 무송현과 장사현의 두 고을

앞 자를 따 붙인 이름이다. 왜적의 침입이 빈번하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따로 있던 두 고을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이와 함께 읍성을 수축하고 관아가 들어서 행정 군사적 치소로서 기능을 다했다.

한말까지만 해도 장시가 서고 물산이 풍부해 크게 번영을 누렸다.

사창지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전북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1894년 5월 11일 첫 황토현 전투에서 전라감영군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어 황토현을 출발한 동학농민군은 흥덕과 고창을 거쳐 무장읍성에 재집결한다.

주로 인근 정읍, 부안, 고창 등지에서 모인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부대였다.

이들은 먼저 옥문을 부순다. 억울하게 갇혀있던 동학교도 44명이 풀려난다. 농민군은 사흘간 읍성 안에 머문다.

휴식을 취하면서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무장읍성에 입성한 뒤 동학농민군의 숫자는 무려 1만여 명으로 불어난다.

사흘 뒤 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경 군이 무장을 향해 달려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농민군은 읍성을 벗어나 읍내에서 5 리 떨어진 여시뫼봉에 진을 치고 공격에 대비하게 된다.

무장읍성에 들어서면 기치를 흔들며 내지르는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동헌으로 사용한 취백당

취백당

동헌주위의 뜰

군산동국사에 보관 중인 무장동헌의 옛 모습

연못의 정자

형옥이 있었던 터

복원된 연못과 정자

나오면서 담아본 무장객사  송사관

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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