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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기 나주곰탕과박물관

나주성과 금성관을 가는 중에 골동품상 같은 박물관이 보이고 나주곰탕 집이 보여서

향교까지 돌아보고 점심을 나주곰탕으로 해결하고 박물관도 돌아보려고 했기에

향교에서 바로 이곳 나주곰탕 집으로 왔다

사매기 나주곰탕짐 앞에는 모두 화분으로 된 정원이다

 

사매기는 사마교가 있었는데 잘 못 전해져 사매기라 했다는 설이 있다

1011년 거란의 침입으로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 혜종의 고향인 나주에 와서

10여 일 머물렀는데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리를 지나갔고

그 다리를 '사마교'라고 하였고 이후에 서내동 25-3번지 일대를

사매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무곰탕 집이 전국에 5천여 개가 있는데 정작 나주에는 여섯 집 밖에 없다고 한다

주방에는 대형 가마솥이 두개나 보인다

지금 시간 11시 내실에는 손님이 없고 밖에 테이블에만 손님들이 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평일에는 줄을 서야 될 정도로 손님이 많다고 한다

옛날의 번영을 간직한 고장인 만큼 나주에는 각종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그중에서 나주곰탕은 나주의 ‘3대 별미’ 중 하나로 꼽히는 대표음식이다.

나주시 중심가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금성관 앞에 가면 곰탕 전문식당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과거 벼슬아치들도 곰탕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곡창지대인 나주에서는 곰탕 재료인 소가 그만큼 흔했다.

곰탕이 만들어진 사연도 뜨끈한 국물만큼이나 훈훈하다.

곰탕은 나주 읍성 내 오일장을 찾는 장돌뱅이들과 주변 고을에서 장을 보러 온 백성에게 국밥을 팔던 것에서

유래했다.

소고기가 귀했던 그 시절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고깃국을 나눠주기 위해 곰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뿌연 색을 띠는 일반 곰탕과 달리 국물이 말갛다. 양지나 사태 등의 고기 위주로 육수를 내어서다.

곰탕의 인기가 높아 아예 골목이 형성되었을 정도다.

나주객사 ‘금성관’ 바로 앞에는 곰탕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얀 집을 비롯해 남평할머니집, 노안집, 한옥집, 사매기, 탯자리, 미향 등이 오랜 전통을 뚝심 있게 이어온

주인공이다.

식사를 마치고 옆에 있는 째깐한 박물관으로 왔다(작은 은 작은의 나주지방 사투리)

저기 서있는 분이 사매기나주곰탕집 사장님 남편분이시다

차를 팔고 박물관 관리를 하고 게시다

입구부터가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독특한 초가집이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처 근대에 이르기까지 나주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생활 속 물건 4천여

점을 이상덕씨가 빽빽하게 전시하고 있다.

 사매기 조선의 도시 공간이다. 양반으로부터 평민까지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 속 민속품 들다.

문방사 구와 떡살등이 진열돼 있다

각종 떡살들의 모형 

시대를 초월한 생활용품들

초등교과서와 옛 중고품들

대나무로 만든 소형 농이다

갓과 등잔 등 생활용

낙죽장 도구들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법 또는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이다.

낙죽에는 인두로 표면을 지지는 방법과 놋쇠로 여러 무늬의 본을 만들어 무늬를 내는 방법이 있다.

인두의 끝으로 지져내는 방법은 매우 숙련된 기량과 안목이 필요하다.

연죽·합죽선·참빗 같은 일상용품에 활용되었다.

이곳은 각종 화로가 진열되어 잇다

각종학용품들

우리 어렸을 때 쓰던 것들도 많이 보이고 

건물 안에 지열장소가 없어 밖에까지 진열을 해놨다

1900년도에서 2000년도까지 우리 농촌에서 사용하던 모든 생활용품들이 여기에 다 있는 것 같다

지석천(드들강)

옛날에 홍수피해가 잦아 둑을 쌓고 보를 만들었으나 계속 둑이 터지자 '드들'이란 처녀를 제물로 바쳐 둑 속에

묻고 보를 만들었다고 하여 이 강을 '드들강'이라고도 한다.

영산강의 제1지류이며, 길이는 55㎞이다. 화순군 이양면 증리 계당산(580m)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경전선과 나란히 북류해 화순군 도곡면 동부에서 화순천을 합류한다.

유로를 서쪽으로 바꾸어 남평면 경계에 이르러 대초천을 합친 뒤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이천보를 지나

영산강에 흘러든다. 지석천의 지류 대초천에는 영산강 유역 농업종합개발 1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관개용수

댐인 나주댐을 1976년에 완공했다.

댐의 높이 31m, 길이 496m, 총저수량 9,120만 t에 이르며, 주변 112㎢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나주시 다도면과 화순군 도암면 등 2개 면에 걸쳐 있는 나주호는 저수지로서뿐만 아니라 잉어·붕어·뱀장어

등이 많아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드들강의 유래 (위 문장 해설)

이강은 예부터 명경지수와 같이 깨끗하여 나주인의 유일한 식수원과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고려말엽 인근 주민들의 천신만고의 대역사로 보를 축조하였으나 홍수의 범람으로 붕괴되어

실의에 노심초사하던 중 당시 고을 수령의 현몽에 백발도사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이 곱고 효성이

지극한 처녀를 제물로 수장 보를 쌓은 후부터는 홍수와 재해의 피해를 면하고 혜택을 누려오면서

한마노은 드들처녀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드들강(보)이라 불리어 오고 있다 지금도 비올 때나

강물이 보를 넘칠 때에는 애처로운 드들처녀의 애곡이 들린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드들강은 솔밭유원지는 아름다운 소나무숲의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령이 수십 년에서 백여 년 넘은 나무들이 평원으로 이루어진 강변을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어

사계절 사진작가 사생화가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고았다. 또한 가족 단위에 야유회나

젊은이들의 야영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드들강 솔밭유원지

노송의 솔밭이 펼쳐진 나주 드들강 솔밭유원지는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의 삼각주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솔밭이 보존된 구간에 조성한 도시민의 휴식처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은 걸으면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조선 선조 때 세워진 탁사정,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작곡가 안성현 선생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으며, 청정 자연 속에서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기품 있는 모습으로 멋들어진 풍경을 만들고 있는 소나무 외에도 왕버들, 유원지를 조성하며 심은 배롱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걸으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좌측에는  지암 윤선기가 건립한 탁사정이 있고 오른쪽에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안성현 노래비가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래비 

이렇게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하춘화,고봉산 /잘했군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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