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성북동에 위치한 나주정미소는 1920년 무렵 만들어졌다.
쌀을 생산하던 장소이자 1929∼1930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였던 나주 학생 만세시위 등 항일운동의
주역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항일운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나주역 사건의 주인공 박준채는 정미소 설립자 박준삼의 동생이다.
금호그룹 창업자 고(故) 박인천 회장이 1950년부터 1971년까지 그룹의 기반을 다질 무렵 ‘죽호정미소’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했던 정미소다.
나주시와 나주시도시재생협의체, 광주 MBC는 나주읍성권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폐허나 다름없던 정미소를
탈바꿈시켰다. 100년이 넘은 붉은 벽돌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구조물을 보강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것이다.
새로운 이름은 정(情)과 맛[味]을 간직한 웃음[笑] 꽃이 피는 나주의 대표적인 장소가 돼야 한다는 뜻을 담아
‘나주정미소(情味笑)’라는 의미와 함께 ‘난장곡간(曲間)’이름으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본래 이름인 ‘나주정미소’와 어울리는 단어인 ‘곳간(庫間)’에서 착안해 음악을 비롯한 문화와 예술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새롭게 탄생한 ‘나주정미소 난장곡간(曲間)’은 나주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옛 나주정미소 부지에 자리한 정미소와 양곡창고 등 4동의 건물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난장곡간이 첫 번째 시도로 알려지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아있는 4개의 건물 중
한 곳은 재활용을 넘어 디자인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새로운 활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공간은 100% 라이브 방송 무대를 지향하는 광주 MBC ‘문화콘서트 난장’의 전용 공연장인 ‘난장곡간(曲間)’으로
활용된다. 곡물과 각종 물건을 넣어두었던 곳간에 음악(곡·曲)이 합쳐진 이름으로, 음악과 추억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문화콘서트 난장은 ‘대한민국 생음악 중심 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난장곡간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난장곡간은 공연 녹화뿐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 다양한 예술 전시공간, 촉망받는 뮤지션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적인 의미와 소소한 사연을 품고 있는 옛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아있는 4개 동의 건물 중 나머지 3개 동 중
2개는 리모델링을 거쳐 또 다른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나주향교 외삼문과 하마비와 나주향교 표지석
평소에는 외삼문은 잠겨있고 옆으로 돌아가면 작은 출입문이 따로 있다
대소인원개하마비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을 모시는 곳으로 이곳을 방문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분 고. 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표지석이다
내삼문과 대성전이 보인다
나주향교는 전묘후학 즉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 앞에 자리하고 공부하는 강당이 뒤에 있다
600년 된 은행나무
나주향교의 비석 군
나주향교의 운영관리와 관련하여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여 놓은 비석이다
특히 충복사유허비는 정유재란 때 향교 노비의 우두머리 김개남이 위패를 안전하게
보호한 공적을 기록하고 있다(가장 오른쪽 하얀 비석)
보호수
비자나무 수령 500년
서재
동재
동재와 서재는 명륜당 동서 쪽에 있는 집으로 유생들이 글공부도 하고 유숙하던 곳으로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다른 향교의 기숙사보다 규모가 월등히 크다
동재앞면
충효관
향교 관리사무실
Kiss and say goodbye / The Manhat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