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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관방제림

옥정호 출렁다리와 붕어섬을 둘러보고 이곳 담양 관방제림으로 왔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아직 시간이 있어 잠시 둘러보기로 한다

 

관방제림

천연기념물 제366호. 면적 4만 9,228㎡. 나무의 나이는 300년 내외이고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1∼3m 정도이다.

담양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 곳으로 수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1648년(인조 26) 담양부사 성이성(成以性)이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으며, 1794년(정조 18)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다시 제방을

중수하면서 그 위에 숲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방제림은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부터 시작해서 담양읍 천 연리까지 이어지는데, 현재는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현재 자라고 있는 나무의 종류는 푸조나무 111그루, 느티나무 43그루, 팽나무 18그루, 벚나무 9그루,

개서어나무 1그루, 곰의말채나무 1그루, 엄나무 1그루 등 184그루이다. 나무를 심을 당시에는

왕버들·서어나무·갈참나무·이팝나무 등이 있었으나 최근 보고에는 이것들이 빠지고 은단풍나무가

1그루가 들어 있는 것이 다르다.

관방제림은 이제 둑이라기보다 하나의 산책코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렇게 오래된 나무는 번호를 매겨서 관리를 하고 있다

학소정 정자

이곳은 노인들의 쉼터 취사행위는 삼가달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지금 오후 6시가 가까워졌는데 시원한 오후 시간을 걷기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양수장도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재로는 찾을 길이 없다

저곳이 죽녹원인데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 이번에는 생략하기로 한다

국수거리에 접어들면 이러한 김삿갓 시비가 있다 

 

김삿갓 죽시
 
竹詩 (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대나무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관방제림과 연결되는 둑방길에는 담양에서 유명한 국수거리가 있다

저녁시간대가 아직이어서 인지 거리는 한산하다

담양국수거리

담양에 가면 영산강을 따라 국숫집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0여 년 전부터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담양의 명물 음식거리로 자리 잡았다.

 

국수거리 시작부터 끝까지 야외 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정겨운 영산강 풍경을 바라보며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대표 메뉴는 멸치로 육수를 낸 멸치국수와 새콤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돋우는 비빔국수다.

계절에 따라 상큼한 열무국수를 차갑게 내기도 한다.

 

곁들이는 메뉴로 약계란 하나를 보태면 더욱 든든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식당에 따라 갓 구운 파전이나 돼지 육전을 내는 곳들도 많다.

담양 국수거리는 사계절 푸른 빛깔을 뽐내는 죽녹원과 계절의 정취를 즐기기 좋은 관방제림 근처에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삼은 전선생유허비도 잠시 들려본다

 

고려가 망하자 서해 절해고도로 몸을 숨긴 충신이 있었다.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낸 뇌은(隱) 전귀생(田貴生)이다.

전우는 뇌은의 친형인 야은(隱) 전녹생(田綠生)의 후손이어서, 뇌은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다.

야은 전녹생, 뇌은 전귀생,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 이 삼 형제를 여말 3은(麗末三隱·목은, 포은, 야은)에

견주어 전 씨 3은이라고 부르는데, 전우는 전씨 3 은을 기리는 유허비문을 1899년에 짓기도 했다.

 

조선조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는 조선 성리학의 마침표를 찍었던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이 있다.
전우는 조선이 망하자, 서해 먼바다 왕등도로 몸을 숨겼다. 공자가 ‘논어’에서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道不行乘浮于於海)”고 한 말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에는 집안 선조의 유사한 판단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담양 전 씨가 조선시대에 큰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데는 고려 말 전씨 3은의 여파가 크다.

전 씨 3은이 모두 목숨을 걸고 고려 왕조를 지키려 했던 충신들이라 그 후손들이 조선 왕조와

잘 융화하지 못했다.  

전 씨 3은은 고려 말에 은(隱)자 돌림의 호를 썼던 10은(隱)에 꼽힐 만큼, 삼형제가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이름을 크게 떨쳤다.

따져보면 전씨 3 은처럼, 삼 형제가 함께 충신의 소리를 듣는 예도 우리 역사상 찾아보기 어렵다.  

 

 간재 전우에 대하여는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이나 여타문헌에 보면 자세히 알 수가 있다

Omar Akram - Take My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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