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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돌아왔는데 예매한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종묘에 들렸다 (8/27)

서울에는 이제 배롱나무 꽃이 피는 것 같다

종묘광장은 본디 휴식공간으로 이용되었으나 시니어들이 모여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들이

많이 일어나 시에서 이렇게 화단을 만들어 푸른 광장으로 변신을 시킨 것 같다

종묘 앞의 이상재선생 동상 

종묘 외삼문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터를 닦은 곳이 바로 종묘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신 곳으로, 사당에 해당한다 

왕이 나랏일을 보고 일상생활을 한 곳이 궁궐이라면 죽은 왕들의 영혼을 모신 공간이 종묘다.

신의길

종묘의 정전을 향해 곧게 뻗은 길이 보이는데요. 3단으로 되어 있는 길 가운데 길은 검은 전돌

(흙으로 빚어 구운 벽돌)로 만든 신도(神道)다.

신도는 신이 지나가는 김으로 혼령과 혼령을 위한 향, 축문(제사 때 읽는 글) 등이 다니는 길이므로

왕이라도 가운데로 다니지 않았다.

서쪽의 연못은 지금 수리중에 있고 동쪽의 연못은 그대로 있는데 어느 곳이나 연못을 보면

가운데 섬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향대청 앞쪽에는 망묘루

임금이 잠시 쉬던 곳으로 여기서 종묘을 바라보면서 선대 왕들과 종묘사직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만든 고았다.

향대청 

향대청은 종묘 제례에 쓰는 향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자 제관(제사를 올리는 관리)들이 옷을 갈아입던 곳이다.

제관들은 깨끗이 목욕하여 몸 가짐을 가다듬고 다른 일들을 멈춘 후에 향대청에 모여 오직 제례에 관련된 일만 했다.

신주 앞에 차려진 제상

보장 

책장 

축문 

종묘 일간도 

종묘일 간 도는 종묘의 괘에 수록되어 있는 신실한 칸의 배치도이다

신주를 모신 신주장을 중심으로 서쪽에 책장 동쪽에 보장이 있다

신주장 앞의 신탑에는 두레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제상과 좌. 우에 봉선과

황개가 놓여 있다 

향대청 한쪽에 있는 건물은 공민왕 신당으로 고려의 왕이었던 공민왕과 그의 왕비인 노국대장 공주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종묘를 지으면서 태조가 전 왕조인 고려에 대한 예의로 마련한 듯하다.

고려공만왕영정봉안지당

공민왕은 밖으로 원나라를 물리처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고 안으로 개혁정치를 폈으며 개인으로써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임금이었다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는 말 그림도 사당 안에 있다

조선왕조의 최고 사당인 종묘에 고려의 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제궁

재궁은 제사 때 왕이 머물며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북쪽에는 왕이 머물던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이 있고

서쪽에는 왕이 목욕하던 어목욕청이 있다.

중앙에 어제실 좌에는 왕이 목용하는 곳 우에는 세자 제실이다

제사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 평소에는 이곳에 제사용 집기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정전과 영녕전으로 가는 신의길  

지금 이렇게 수리 중에 있지만 정전은 아래 사진의 모습과 같다

정전 

정전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신주를 비롯하여 공덕이 있는 왕과 황제 19위와 왕비와 황후 30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으며 정전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불을 질러 훼손되어 다시 지어졌는데 일본 사람들은 다양한

신을 믿어 정전에 모셔진 신들이 일본군을 해친다고 생각하여 불을 질렀다고 한다

. 정전은 종묘에서 가장 큰 건물로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익공청  

종묘제례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악공과 무원이 대기하던 장소

영녕전 

영경의 뜻은 왕실 조상과 자손이 함께 평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영녕전에는 종묘 정전에서 옮겨온

왕과 황제 15위와 왕비와 황후 17위, 그리고 마지막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영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녕전에 모셔져 있는 분들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왕의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것과

또 하나는 왕의 즉위기간이 짧다는 것이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종묘 영녕전(永寧殿)은 1421년(세종 3) 정종(定宗)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태실(太室)이 부족하므로 정전(正殿)에 대한 별묘(別廟)를 건립하여 태조(太祖)의 4대조를

함께 옮겨 모신 이후로도 정전에 계속 모시지 않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다.

조선왕조가 이어지면서 신주를 모실 분이 늘어나 정전과 영녕전을 계속 증축할 수밖에 었었다

태종은 영녕전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영원히 후손과 함께할 수 있었다.

헌종 2년에 마지막으로 영년 전을 증축하여 현재의 규모인 16칸을 갖추었다.

현재 영녕전에는 중앙의 4실을 양 협실(夾室) 보다 높게 꾸미고 각 실에 태조의 4대 조인 목조(穆祖)·익조(翼祖)·

도조(度祖)·환조(桓祖)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셨으며, 서쪽 제5실에서부터는 정종(定宗)과 왕비, 문종(文宗)과

왕비, 단종(端宗)과 왕비, 덕종(德宗)과 왕비, 예종(睿宗)과 왕비, 인종(仁宗)과 왕비, 명종(明宗)과 왕비,

원종(元宗)과 왕비, 경종(景宗)과 왕비, 진종(眞宗)과 왕비, 장조(莊祖)와 왕비,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영친왕)와

태자비 등 32위의 신주가 제16실에 이르기까지 모셔져 있다

소화 8년 3월 개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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