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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해남부해안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다

그렇지만 부산은 언제나 예외이어서 기대도 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이틀 동안 치과에 다녀온 이외에는 집에서 조용히 지냈다 

오늘은 옆지기 종합병원 검진이 있는 날이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동해남부

기장 쪽에 매화가 피었으려나 찾아가 본다 

현재시간 9시 30분 겨울이라서 이곳 송정에는 거의 아침이나 같다

해수욕장에는 걷는 사람도 서핑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중앙에 보이는 곳이 죽도다 대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죽도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매립을 하여 육지와 연결이 됐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섬이었다

죽도에 있는 송일정 정자다

매년 해맞이 명소로 정초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이곳은 구덕포 대형카페인지 아직 가보지 않았는데 스카이 워크도 설치하고 있는 것 같다 

앞에 높은 기둥은 등대를 건설하고 있는지 공사 중에 있고 이른 아침부터 양식장에서

작업하는 작은 배의 이동하는 모습을 담아본다 

4명이서 걷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분들이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있다

많은 갈매기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부산에서 최고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부산의 해안선과 눈부신 해운대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지금은 고리형 스카이 워크인데  현재 오랫동안 공사가 진행중에 있는데

U자형 스카이워크를 금년말까지 완공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늘은 무척 흐리지만 바다위의 윤슬은 어느 때 보다도 더 반짝이는 것 같다

 

오늘의 목적은 이 매화가 얼마나 피었을까 인데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려면 일주일 정도는 더 있어야 될 것 같다

작년에는 1월 10일경에 피어서 빠른 것은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금년에는 아직이다

작년 12월은 추운 날들이 많았고 금년 들어서도 영하 1~5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갔는데 그 영향인지

아직 이정도다

매화는 이 정도이니 바닷가 드라이브나 하며 임랑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묘관음사의 동백은 

어떤가 한 번 가보기로 한다 

신호대기 중에 담아본 롯데몰이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이곳도 주말이면 많은 차량들이 몰려 북새통이다 

오랑대 옆에 있는 용왕단 

앞에 보이는 등대들은 아래에 소개를 하려고 한다

용왕단 내부 

용왕단의 연혁 

태권 V를 닮은 지하여장군등대

태권V와 마징가Z가 대변항을 지킨다
대변항에 들어서면 마징가Z를 닮은 노란색 등대가 보인다.
그 뒤로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것 같은 태권V등대가 등을 맞대고 섰다.
육안으로는 가까워 보이지만 대변항으로 들어오는 먼바다의 파도를 막기 위해
인공섬 형태의 '뜬 방파제'에 설치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
원래 두 등대는 장승을 본떠 만들었으나 천하대장군은 마징가Z를,
지하여장군은 태권V를 더 닮았다.
장승등대의 정식명칭은 '대변외항 남방파제등대'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

마징거 Z를 닮은 천하대장군등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와 4강 신화를 기념하는 등대다.

미사일 발사대를 닮은 빨간색 등대에 세 개의 다리가 축구공을 감싸고 있다.

이 축구공은 2002년 월드컵 공인구였던 '피버노바'다.

아랫부분에 출전국가의 국기와 경기 성적이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고요한 바다를 지키고 있는 젖병등대 

젖병등대는 2009년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이 출산장려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젖병등대 벽면에는 부산에 사는 영유아 144명의 발도장과 손도장이 양각으로 제작되어 붙어 있다.

그 옆에 큰 병보다 더 작은 젖병모양이 있는데 등대기능은 없는 조형물일 뿐이다. 

젖병등대에서 눈을 돌려 왼쪽을 보면 북쪽을 향한 뱃머리 모양의 붉은 등대가 보인다.

차전놀이등대 또는 닭 볏처럼 보인다고 해서 닭 볏등대라고 부른다.

정식명칭은 '서암항 북방파제등대'다.

가까이 가서 보면 등대라기보다는 전망대처럼 보이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난간에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이라도 한 듯 자물쇠가 여러 개 걸려있다.

개중에는 오래전에 맹세를 했는지 녹슨 것도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

닭벼슬등대

오랑대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깃들어 있다.

기장 바닷가에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연오랑은 미역을 건져 올리러 바다에 갔는데, 움직이는 바위에 실려 일본에 가게 된다.

기다리던 남편 연오랑이 오지 않자 세오녀는 남편을 찾아 바닷가로 오고, 그녀 역시 움직이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가게 된다. 부부가 일본으로 가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고, 신라에서는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를 데려오려 했지만, 세오녀가 건네준 비단만을 갖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다시 해와 달이 빛을 되찾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에 연오랑의 이름을 따 연오랑대라 불리다 지금은 오랑대가 되었다.

                      대변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에 선정된 곳이다.

        부두 앞에 자연 방파제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죽도가 있어 파도가 거센 동해바다를 잠재운다.

                        부둣가에는 기장 특산품인 미역을 말리는 건조대가 널브러져 있다.

                                      기장멸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특산품이다.

                        항구 안으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부와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특히 3, 4월에는 멸치잡이가 제철이다.

           국물다시용이나 마른반찬으로 먹는 멸치가 이곳에서는 훌륭한 횟감으로 대접받는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대변항에는 겨울이면 미역 말리는 건조대가 곳곳에 늘어서 있는데 기장미역이 유명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3~5월까지는 멸치잡이를 다녀와 멸치 털이 작업이 볼거리 중에 하나이다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추어

멸치털이를 하는데 이 것도 얼마나 이어갈지 모르겠다

대변항을 떠나 임랑의 묘관음사에 왔는데 그 많은 동백나무 중에 몇 그루만 꽃이 피다 말았는데 

겨울의 차가운 기온으로 모두 얼어 이렇게 말라버렸다

토종동백꽃을 찾아 조용히 걷고 있는데 멀리서 작은 새끼고양이들이 장난질을 하다가

발소리에 귀를 쫑긋 나를 주시하고 있다 너무 멀어 최대한 줌인했는데 이 정도로 보인다

묘관음사에서 나와 임랑 해변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고리원자력발전소 돔이 보이고 좌측에는 월내 마을이다 

이곳은 정훈희와 김태화 부부의 꽃밭에 서라는 라이브카페다 

정훈희는 1951년 5월 11일 경상남도 부산시 아미동(現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에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 김태화의 부인이고 가수 J.ae의 고모이다.

당대 최고 작곡가 이봉조와 인연으로 곡 <안개>를 받아 1967년 17세의 나이로 1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고교 1학년이었던 67년 당시 방학을 맞은 정훈희는 서울 그랜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이트클럽 밴드 마스터였던 삼촌을 따라와 연습삼아 몇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이봉조가 들어왔다. 나이트 클럽 옆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그는 정훈희의 목소리를 듣고

‘필이 꽂혀’ 단숨에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다. “쪼그마한(조그마한) 가시나가 건방지게 노래 잘하네.”

당시 이봉조는 ‘안개’를 만들어놓고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취입한 상태였는데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정훈희-이봉조 콤비는 이렇게 이뤄졌다고 한다.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받았고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는 곡 〈너〉로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5년 칠레 가요제에서는 곡 〈무인도〉로서 3위 상과 최고 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었다. 곧 훈방되었지만, 방송 출연을 정지당한다.

정훈희의 주장에 따르면 그냥 담배를 피웠던 것인데, 명백한 증거도 없이 대마초 혐의가 씌워졌다고 한다.

 지금처럼 모발 검사 같은 조사를 했던 시절이 아니라서 의혹만으로 혐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시대 분위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마초는 대한민국에서 금기가

아니었으며, 시골에서는 약으로 쓰이기도 했었다.

당연히 상당수의 가수들이 담배처럼 대마초를 피워 왔으나, 1973년에 갑자기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던 것이고,

그런 분위기로 인해 애연가인 정훈희까지 대마를 피운다는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1979년 제20회 칠레가요제에 다시 출전한 정훈희/이봉조 콤비는 이종택이 작사한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안한 <Un Día Hermoso Como Hoy>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를 불러서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다. 당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대마초 연예인에 대해서는 선처를 베풀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고, 정훈희의 칠레가요제 실황 필름은 전국에 방송되었다. 자신은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유일하게 훈방으로 나왔지만 ‘대마초 가수’라는 낙인으로 인해 더 이상 활동하기가 어려웠다.

81년 규제가 풀리고, 그녀는 재기 무대가 순탄하지 못했으나 이후 88년 발표된 곡 꽃밭에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가수 김태화와 결혼한다. 임신한 상태로 앨범 《우리는 하나》를 남편과 녹음하기도 했다.

그것을 빼고는 정규음반은 내지 않았다

임랑해수욕장 전경 

이곳은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박태준 선생이 생각나서 자료를 찾아보니 부근에 기념관이 있다는데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다음에 오면 꼭 한번 들려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임랑해수욕장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선 가까이에 있다.

해수욕장 근처로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월내가 있으며 [1] 부산 해안선 북쪽 끝에 있기 때문에,

부산의 해수욕장이면서도 북적북적한 해변가의 느낌이 아닌 한적한 동해안 시골 해수욕장 분위기가

나는 근교의 조용한 해수욕장이다.

물론 완전한 오지가 아니라 부산 대부분의 지역에서 차로 1시간 내로 접근 가능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여름 성수기에는 적어도 수백 명 이상은 있지만 그래도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이는 해운대, 광안리와

비교하면 상당히 한산한 편. 실제로 외곽이라도 해변 근처에 어느 정도 동네가 있는 송정, 일광과 달리

임랑은 장안읍 시가지와도 꽤나 떨어져 있고 근처에 민박촌들만 여럿 늘어서 있다

저 앞에 보이는 곳은 칠암항이다

왼쪽부터 야구등대 갈매기등대 붕장어등대가 보인

임랑항 물고기 등대(방파제 등대)

어민들의 소망을 표현한 물고기 형상의 등대다

산의 조각가 박종만 작가의 작품으로

황금 낚싯대로 대어를 낚는 기쁨을 표현하면서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곳은 펜션인 줄 알았는데 고스락이라는 식당가라고 한다

다음에 갈 때는 이곳을 꼭 가봐야겠다

Michael Hoppe -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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