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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선교장

선교장은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품위 있는 사대부 가옥이다.

강릉시에 경포 쪽으로 4km쯤 떨어진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을 대표하는 곳으로,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 타고 건넌다"라고 하여 이 동네를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 불렀는데, 선교장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선교장은 조선 영조 때(1703년)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 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총 건평 1,051.24m²(318평)으로, 긴 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문밖에는 수백 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선교장은 건물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선교장의 사랑은 열화당이라 하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글,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월하문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 새는 연못 가 나무에서 잠들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 스님은 월하문의 북을 두드리네(지나가는 나그네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네)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 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이 연목을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활수의 의미다 

물 위에 떠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이 있어서 근대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과 조경미를 갖추고 있다 

활래정은 선교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지어진 정자로, 연지(蓮池)와 함께 못 가운데 만든 섬은

신선세계를 상징하며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지나는 조선의 풍류객과 시인, 묵객들이 머물며 문화와

예술 향기를 피우던 곳이다.

기린초 

선교장 부속건물 

당시 경포호(鏡浦湖)는 현재보다 훨씬 넓어 배를 타고 건너 다니던 배다리마을(船橋里)에 있어

<선교장(船橋莊)>이라 불렸다.

 

선교장 솟을대문

행랑채와 문간채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열학당을 중심으로 한 사랑채 영역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으로 된 문간채 선고유거(仙嵪幽居) 현판이 걸려 있다.

선고유거:세상일과 등지고 은거하며 신선처럼 높고 고요한 곳에서 산다는 의미 같다

동별당(東別堂) 오은고택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오은은 이내번의 손자로 이후의 호이다 한국최고의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 썼다

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서별당(西別堂)

안채와 열화당 사이의 깊숙한 곳에 있는데, 선교장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서고(書庫)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

서고는 누마루 형식으로 문을 열면 통풍이 잘 되고 여름에는 마루에서 겨울에는 방에서 독서를 하였다.

연지당

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들이는 곡식이나 금전을 받을 때 사용하였고

집인 살림을 돕던 여인들의 거처였다

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 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열화당의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는데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

3형제가 늘 열화당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전주 이씨 일가친척들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마루 앞쪽에 나무로 만든 계단을 설치하였다.

중사랑

선교장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된 건물이며 전국의 학자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다 

 

 

선교장을 찾는 과객은 면접을 보아서 묵을 방을 정해준다.

인품이나 시문(時文)이 뛰어난 사람은 집주인과 함께 열화당으로 모시고, 그다음은 중 사랑채로 안내하고

그저 지나가는 과객은 행랑채 방에 묵고 가도록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묵객들이 그 지역의 부호집에서 머물고 떠나갈 때에는 숙박료 대신 시(詩)나 글(文)을 써

주고 떠나다.그러나 간혹 눈치 없는 장기 유숙자가 생기면 밥상을 들일 때 반찬의 위치를 바꾸어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그러면 그 선비는 행장(行裝)을 꾸려서 행랑문을 통해 '줄행랑'을 친다고 한다.

행랑채

선교장을 찾는 손님과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안채로 가는 안대문

사랑채로 가는 큰 대문이 따로 있어서 남녀유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당에는 능소화나무가 있는데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섬초롱 

 

이렇게 선교장 내부를 돌아보고 뒤뜰을 한 바퀴 걸어본다 

보호수

수종 :소나무.수령 :520년. 수고:23m. 지름:1m. 나무둘레:3m. 지정일:1982년 11월 13일

엉겅퀴 

거대한 상수리나무 

밖에서 본행랑채와 솟을대문

선교장 행랑채는 모두 23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행랑채입니다.

행랑채는 집안일을 하는 하인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하고, 관동팔경과 경포대를 유랑하는

선비들의 숙소로 사용된 공간이었다.

선교장전경 

선교장 집터의 유래가 된 소나무 숲

충북 음성에서 살던 이내번이 어릴 때 모친 안동권 씨를 따라 외가인 강릉으로 이사하여 경포대가 있는

강릉의 북촌에 자리를 잡아 당시 지방 부호들이 관심을 두지 않던 염전(鹽田) 사업을 어머니와 함께

경영하여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재산이 늘어나면서 이내번은 넓은 집터를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중엔

무리를 이루어 서서히 북서쪽으로 이동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이내번은 그 뒤를 쫓았고, 서북쪽으로 약 2.5리(약 1Km) 가량 떨어진 야산의 울창한

송림(松林) 속에서 족제비 무리가 사라졌다.

신기한 생각에 한동안 망연히 서 있던 그는 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명당이라고 여기고 집터를 정했다고 한다.

 

 

선교장에서 이곳 하조대 전망대에 와서 잠시 바라보고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하조대 해수욕장

백사장의 길이는 1.5㎞이고 폭은 100m에 달한다.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70m까지 나가도 수심이 1.5m 내외이다.

사빈의 침식현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겨울철에 너울성 파랑이 해안도로까지 밀려와 범람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사빈을 유지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는 기암괴석이 곳곳에 산재한다.

하조대해수욕장은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에머럴드빛 바닷물과 부드럽게 펼쳐진 모래사장, 그리고 군데군데

자리한 등대가 눈길을 사로잡는 곳으로, 동해안 바닷가 중에서도 빼어난 풍광과 고즈넉함으로 유명하다.

 

저 넘어가 하조대 같다

하조대 전망대 

 

양양 하조대 전망대 일대에 조성한 둘레길이다.

하조대는 동해안의 기암절벽과 노송이 어우러진 명승지로 강원 영동

지역에서 손꼽히는 해돋이 명소다.

하조대 둘레길은 하조대 전망대에서 하조대 등대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조성된 덱으로

길이 약 202m, 폭 2m 규모다.

현북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추진된 둘레길은 2018년 11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5월에

완공되었다.

이로써 하조대를 찾은 관광객들은 하조대 둘레길을 걸으며 하조대 전망대와 등대, 하조대 정자를 연계 관광

하기가 쉬워졌다.

하조대 둘레길의 또 다른 매력은 평탄한 길을 따라 동해안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쪽의 하조대 전망대를 바라본 채 덱 오른쪽으로는 에메랄드빛 동해와 바다에 뿌리내린 기암을,

왼쪽으로는 사시사철 울창한 송림을 볼 수 있다.

동계 기간(11~3월)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계 기간(4~10월)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한다.

말발도리 

맑은 하늘이 아름다워 한 컷

하조대 표지석 

오늘은 하조대에 가지 않아서 예전에 사진을 캡처했다

하조대의 모습 2022년 5월 27일 고교친구들과 여행 중에서 

 

East Of Eden OST / 에덴의 동쪽 / Mantovani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