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오정
1992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자희 옹(自喜翁) 최치덕(崔致德)이 만년에 정자를
짓고 많은 학자를 배출했던 곳으로, 앞뜰에 석조·석등 대좌 등이 있고 풍광이 수려한 연못이 마련되어 있다.
전체는 3개 건물군과 앞쪽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왼쪽에 본채, 오른쪽에 사당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는 앞뒤로 맞배지붕을 씌우고, 여기에 잇대어 좌우
측면에 다시 맞배지붕을 이은 독특한 팔작집을 이루고 있다. 사당의 정문은 솟을삼문으로 문짝에 태극무늬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충청남도 이남에서만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상록활엽수로서,높이 5m까지
크며 줄기는 굴곡이 심한 편이어서 여러 그루를 가까이 심으면 비스듬히 눕기 쉽지만, 혼자 자랄 때는
비교적 곧게 자라 전체적인 나무 모양은 마치 세워 놓은 우산 같이 보인다.
나무껍질은 옅은 갈색이나 껍질이 얇게 벗겨져서 하얀 얼룩이 생기고 매끄럽게 보인다.
맥문동
우단동자꽃
일성재는 제자들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원래 동서(동재와 서재)로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건물을 헐고,
10여 년 전 남쪽에 지금의 일성재를 다시 지었다고 한다
율수문(내삼문)을 들어서면 귀산서사(龜山書社)가 있다 오른쪽 건물
1746년에 건립한 귀산서사(龜山書社)는 원래는 모고암(慕古菴) 또는 손곡서당이라 했으나,
1928년 귀산서사로 개칭했다고 하며 최치덕(崔致德)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강당으로 쓰였던 곳
왼쪽 건물은 종오정이다
귀산서사의 옛명칭 모고헌
귀산서사기
진덕묘 사당
종오정(從吾亭)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자희 옹(自喜翁) 최치덕(崔致德,1699∼1770)이,
만년에 정자를 짓고 많은 학자를 배출했던 곳으로,최치덕이 영조 21년(1745)에 돌아가신 부모를
제사지내려고 일성재(日省齋)를 짓고 머무르자, 그에게 학문을 배우고자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기 위해 찾아들어 종오정과 귀산서사를 지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종오정 일원
(從吾亭一圓)이며, 종오정(從吾亭)은 귀산서사보다 1년 뒤인 1747년에 건립되었다.
무송 와
소나무를 어루만진다는 뜻
지간 헌
낚싯대를 들고 다니는 집이라는 뜻
종오정기
종오정(從吾亭)의 현판은
스스로를 쫓고(從吾) 관조의 세계로 몰입하는 선비의 정신세계 추구하는 의미로 여겨지는데,
공자의 종오소호(從吾所好)에서 "子曰 富而可究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로,
"공자께서 이르기를, 부를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내 비록 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도 하겠지만,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닐지니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바를 좇으리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함
최치덕은 정자이름을 '종오정'으로 한 연유를 밝히기를, '오직 좋아하는 것을 따름일세.
물에 닿으면 낚시질하고 산에 오르면 고사리 캐며 버들에 물어보고 꽃 찾아 음풍농월한다네.'라고 하였다.
정자에는 3개의 현판이 있다. 정면 처마 아래에는 종오정, 안쪽의 동쪽 방에는 무송 와(撫松窩), 서쪽방에는
지간 헌(持竿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무송 와는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무송와명'에서 '칠순 몇인가. 남은 날이 많지 않네. 말하려니 할 말이 없어 모두 찬양하고 감탄하노라'라고
적고 있다. '지간 헌'은 '낚싯대 들고 다니는 집'이란 뜻인데, 그는 '지간헌명'에서 '낚시대 드리운다고 반드시
고기 낚는 것은 아니니, 부지런히 때마다 먼 조상 추모함이라! 아! 아이들아 내 오묘한 뜻 체험했으니
황천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무 부끄러울 것 없으리라'라고 그 뜻을 밝히고 있다.
300년 된 향나무
노란 플라스틱 사슬로 차 놓고 의자에 붙은 안내문에 민박객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고 해놨는데 굳이 싫은 소리 들어가며 안에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겠는가
서원과 종오정 사당은 가까이에서 볼 수가 없었다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연꽃을 심기 전에는 여기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를 했다고 한다
연꽃도 진즉 피고 젔는지 여기저기 한 두 송이가 보인다
줄기를 만지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 혹은 '간질밥나무'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그래서인지 손으로 쓰다듬어 보면 미세하게 나무가 흔들린다는 속설도 있을 정도다.
또 수피가 상처딱지 떨어지듯 하는데 그 속의 새 수피가 부드러워 자꾸 만져보고 싶을 정도라 해서 '희롱나무'
라는 얘기도 있다.
7~9월에 약 100일 동안 진한 분홍색의 꽃을 피우는 데, 꽃은 가지 끝에 원뿔모양의 꽃차례로 달리며
꽃잎은 모두 오글쪼글 주름이 잡혀 있다.
수술은 30~40개로 그중 가장자리의 6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고 암술대가 수술 밖으로 나와 있다.
암수한꽃이다.
개화기간이 긴 편이다. 눈에 확 띌만한 크기와 색감의 꽃이 여름과 가을에 걸쳐서 오래 피기 때문에
충청 이남의 관상수로써 좋다. 다만 꽃이 질 땐 좀 볼썽사납게 진다.
과거에는 선비들이나 유학자들이 서원이나 향교에 많이 심었고 스님들도 절에 많이 심었다.
최근에는 공원, 아파트 단지 내에 관상용으로 가끔 심는다.
배롱나무의 꽃말은 '부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흰 배롱나무의 꽃말은 '수다스러움', '웅변', '꿈', '행복'.
하얀색 배롱꽃도 보이고
연분홍색깔도 보이는데 토질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도 모르겠다
300년 된 향나무 밑동
종오정 뒤에는 소나무숲에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 양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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