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옥헌은 여러 번 와봤지만 배롱나무가 만개했을 때는 딱 한 번이었고 이렇게 딴일로
지나다가 들렸을 때는 이렇게 여러 번 피고 소강상태일 때 오게 된다
이번에도 시기가 그렇게 돼서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조 조금 피어 있어 위안이 된다(9/11)
만개 시기가 거의 한 달이 지난 모습 일부만 꽃이 남아 있고 거의 진상태다
2017년도 8월 15일의 만개한 모습
꽃이 가장 많이 보이는 곳
이곳에도 석산이 딱 두 송이만 보인다
정자 안쪽에는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있다(위사진에 흐미하게 보인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다음백과에서)
명옥헌원림
명옥헌 원림은 조선 중엽에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오이정은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명옥헌(鳴玉軒)이란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다음백과에서)
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흘러 이못에 물을 채우고 다시 그물이 아래 큰 연못으로 흘러가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 소리 같다 하여 명옥헌이라 했다고 한다
정자를 오른쪽으로 하고 돌아 계류를 거슬러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썼다는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거의 방문객들이 이런 곳은 모르고 꽃만 보고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인 광풍각과 동일한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이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명옥헌은 이와 같이 은일자의 거처나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녔다.
오희도는 1602년(선조 35)에 사마시와 1614년(광해군 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
이는 당시 광해군 재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후산마을에 정착해 산기슭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공부에 매진했으며, 때때로 고개 너머에 있는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 정철의 아들 정흥명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는 명옥헌을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다음백과에서)
홍련도 피어 있는데 이제 끝물인 것 같다
명옥헌 원림의 지형은 안온하다.
전면은 후산마을의 고개가 낙타의 등처럼 드러나 있어 시야를 가리고 왼편은 들판, 오른편은 목맥산에서
후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있어 북풍을 막아준다. 자연스러운 기단과 지형적인 입지적 특성으로 산의
위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크게 자라는 느티나무를 심어 낮의 햇볕을
차단해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다. 경역 또한 명료하다. 연못 아래로는 정원의 경계부에 소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어 담장 역할을 대신하며, 배롱나무, 느티나무 등이 잘 배식되어 호남 지방 별서정원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붉게 무리 지어 꽃이 핀 원림의 모습은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비유되기도 한다.(다음백과에서)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 모양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이는 천 원 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하지이며 상지는 위에서 소개를 했다
남방제비나비
나팔꽃
맥문동
분홍 낮달맞이꽃
호박꽃
붉게 익어가는 감
애기나팔꽃
하눌타리
인동덩굴
전라남도 기념물 제45호. 이 은행나무(후산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목이다.
이 나무는 일명 인조대왕(仁祖大王)의 계마행(繫馬杏)이라고도 한다.
고전천(高傳川)의 기록에 따르면 인조대왕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호남지방을 돌아오던 중 고전천의 소개로 인조는
후산에 살고 있는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를 찾은 일이 있었다. 이때 명곡의 북쪽 뜰에는 은행나무가 있었고
명옥헌(鳴玉軒) 뒤에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이들 나무 밑에 인조가 말고삐를 맨 일이 있다는 후세의 기록이 있다.
그 뒤부터 이들 나무를 각각 인조의 계마행(繫馬杏) 또는 계마동(繫馬桐)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오동나무는 고사해서 없어졌고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석류가 익어가는 것을 보니 가을은 가을인데 가을 같지 않은 여름 날씨의 연속이다
오늘도 역시나 오전인데도 30도를 웃도는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다
Promenade Dans Les Bois (숲속 오솔길) / Various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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