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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선운사 꽃무릇

여기저기서 꽃무릇을 몇 송이씩 보기는 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아 영광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는 

작년에 다녀왔기에 금년에는 고창 선운사로 가보자 일요일 선운사 가는 산악회 차가 있어

예약을 했는데 거의 만차였지만 비가 온다고 많은 인원이 포기를 해서 달랑 9명이서 출발을 

했다 갈 때 비가 한방울씩 내리기는 했으나 현지에 도착하니 흐리기는 했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돌아올 때는 광주에서부터 순천까지 전남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다(9/22)

송악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가의 절벽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데 길이가 15m

정도로 퍼졌으며, 가슴높이둘레가 80cm 정도인 노거수이다. 송악은 상춘등(常春藤) · 토고 등(土鼓藤) 또는

용린(龍鱗)이라고도 하는 상록덩굴식물이다.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늘 푸른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암석 또는 다른 나무 위에 붙어 자란다.

잎은 광택이 있는 진한 녹색이고 꽃은 10월에 녹색으로 피며, 열매는 다음 해 5월에 둥글고 검게 익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남해안 및 섬지방의 숲속에서 주로 자라고 있다.

 

고창 삼인리 송악은 선운사 입구 개울 건너편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자라고 있으며,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크기로 보아 적어도 수 백 년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고창 삼인리 송악은 그 크기가 보기 드물 정도로 크고, 고창 삼인리는 송악이 내륙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에 가까우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가장먼져 송악을 만나고 선운사로 가는데 휴일이라서인지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길을 가득매우고 있다

원래의 노랫말도 한역된 가사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사〉 권 71 속악조와 〈증보문헌 비고〉 권 106 알고 17에 각각 〈선운산〉·〈선운산곡〉이라는 제목과

해설이 기록되어 있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은 고창군에 편입된 고을의 한 사람이 부역을 나갔다가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산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노래라고 한다.

부역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수난은 천한 백성이라면 으레 겪어야만 했고, 그래서 남편과 이별한 아내의

노래는 거듭 되풀이되었다. 백제 가요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長沙人 征役 過期不至 登禪雲山 望而歌之)

도솔산선운사 일주문 

도솔천은 물이 맑고 곳곳에 피어 있는 꽃무릇이 아름다운 모델로 사랑을 받는 곳인데

오늘은 꽃도 몇 송이만 보일 뿐이고 하루 전에 내린 비로 물이 탁하여 반영도 볼 수 없고 

몇 사람 진사라는 분들이 좋은자리 진을 치고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담는지 도무지 비켜줄 

생각을 않는데 진사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지 않는 진상들이다

도솔천변에 피어 있는 꽃무릇 

오늘이 추분인데 대웅전에서 불교 행사가 있는 것 같다 

선운사 동백나무 숲은 조선 성종 때인 15세기에 행보선사가 산불에서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한다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대웅전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군락의 규모는 16,500평방 m이다

동백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 추백 동백으로 부르는데 이곳 동백은 3월 말부터 4월 중순에 절정을 이룬다

차나무과 동백나무속 상록교목이다. 겨울에 꽃을 피워 동백(冬柏)이라 불린다.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

동북아시아 등지에 자생한다. 꽃은 붉은색이지만, 흰색이나 분홍색 꽃도 있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 동백나무, 일 년생 가지와 잎 뒷면의 맥상 및 씨방에 털이 있는 것은 애기동백나무라 한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도솔천의 극락교

도솔천에 핀 꽃무릇 

금년에는 초가을이 여름처럼 더워서 꽃무릇이 늦게 피는 것 같다

9월 15일이면 만개를 할 때인데 이제 피기 시작을 하였다

꽃며느리밥풀꽃

높이가 30~50센티미터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어긋맞게 나며, 7~8월에 붉은 꽃이 가지 끝에 곡식의 이삭과 같은 모양으로 핀다.

삭과(蒴果)는 10월에 익는다. 긴 통 모양으로 생긴 꽃부리는 끝이 입술처럼 두 갈래로

갈라졌으며, 아랫입술 꽃잎 가운데에 마치 밥알처럼 생긴 흰색 무늬가 두 개 있다.

서식지는 산지의 숲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분포는 아시아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다.

옛날에 아주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배가 몹시 고파 몰래 밥풀을 훔쳐먹었다.

이를 알게 된 시어머니가 음식을 훔쳐먹었다고 나무라면서 모진 매를 때렸다.

며느리는 매를 맞으면서, “음식이 아니라 요거예요.”라고 하면서 밥풀을 혀끝에 내밀면서 죽었다.

 

그 혼이 며느리밥풀꽃이 되었는데, 낮은 산에서는 부끄러워 있지 못하고 깊은 산에만 나 있다고 한다.

며느리밥풀꽃은 붉은 입술 모양의 꽃 위에 흰색 무늬가 있는데 밥풀알처럼 보인다.

며느리밥풀꽃 설화는 꽃 모양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것으로, 고부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시집살이의

고충과 약자인 며느리의 한을 담고 있다

도솔폭포가 300m라고 해서 올라가는데 멀기만 하다 

도상거리인지 눈짐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정표에는 300m다

천연바위 위에서 50m의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인공폭포다 

도솔제 저수지다 

아직도 목수국이 남아 있네 

산박하 (오리방풀 같기도 한데 오리방풀은 잎끝이 거북꼬리 같이 생겼다)

아무리 둘러봐도 무리 지어 핀 꽃은 보이지 않는다

도솔천 위로 올라가면서 만난 싱싱한 꽃 몇 개를 담아봤다 

선운사에 온 것은 만개를 한 꽃무릇을 보기 위함인데 완전히 빗나갔다

숲 속에는 이 정도가 최고의 개화상황이다

선운산에 있는 소나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상서로운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부부의 금슬, 남녀의 사랑, 자녀의 효성, 친구의 우정을 

상징한다. 연리목 앞에서 손을 꼭 잡고 정성을 들여 소원을 빌면 서로 간의 애정이 두터워지고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는 희귀한 나무다 

진흥굴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뜻을 두었다가 말년,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로 와서

승려가 되었는데, 진흥왕이 맨 먼저 찾아온 곳은 지금 선운산의 사자암 앞에 있는 석굴로서 좌변굴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후세에 이 굴의 명칭을 진흥굴이라 고친 것은 진흥왕이 친히 거처하며 수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흥왕은 승려가 된 후 이름을 법운자라 칭하고 사랑하는 공주 중애를 위하여

중애암, 왕비의 별호인 도솔의 이름을 따서 도솔암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도솔암 장사송

진흥굴 바로 앞에는 삼인리의 장사송이 있다. 나무의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는 23m이다.

고창 사람들은 이 나무를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고 하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장사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며 보기 드물게 오래된 소나무로써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외관으로는 소나무같이 생겼으나, 지상 40㎝ 정도에서 갈라져서 자라는 동안 높이 2.2m쯤에서 다시 합쳐진

것으로 반송(盤松)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창 주민들이 장사송(長沙松)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하게 됨으로써 장사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찻집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앞에 정돈된 차기들이 신기해 담아보았다

오늘 오르려고 하는 곳은 용문굴인데 용문굴에서도 낙조대까지는 500m다 

청룡산까지는 못 가도 낙조대까지는 가야 되는데 오랜동안 산행을 안 해서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가다 못 가면 내려오고 일단 용문굴까지만 가자 

칠자화 

 일반적으로 "황후의 꽃"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합니다. 인동덩굴과의 7~8m까지 크는 작은 낙엽활엽관목으로

 잎에 3 맥이 아주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고 안으로 조금 말린 듯한 모습이다. 

9월경 7개의 작은 흰색 꽃송이가 피는 것이 특징이고, 꽃이 지면 짧은 꽃받침이 10월경에는 자홍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여 1년에 두 번 꽃이 핀다고 생각을 한다

추위에 강하여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고 향기가 좋아 가을 라일락이라고도 한다

윤장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는 성보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경전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여래좌상이다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신체 높이가 약 15.7m, 무릎 너비는

약 8.5m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마애불의 양식으로 보면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성 시기는 신라 말기,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으로 의견이 다양하고 백제 위덕왕 때 검단 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있다.

 

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다

. 이것들은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법당의 부처를 모신 자리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 있었던

흔적이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불상(佛像)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ㆍ은ㆍ칠보(七寶)와 같은 보화(寶貨)나 서책(書冊)

따위를 넣음)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복장 안에 보관된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은 망한다는 것이다. 18세기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기록을 꺼내 보려다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대목만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한다.

 

100여 년 후 동학농민혁명이 움트던 1892년에 동학 접주 손화중이 그 기록을 무사히 꺼내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천인암(千仞岩)이라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년)까지

몇 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쪽 암벽 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내원궁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좌상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 좌상은 청동 표면에 금칠을 한 지장보살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를 말한다.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이 사라지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부처이다.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불상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 넓적하고 편평한 얼굴, 형식적이고 수평적인 옷 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하게 되는데, 불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다시 선운사에 모셔지게 되었다.

일본으로 도난당한 지장보살상은 불상 주인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 “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라고 하였으나 불상의 주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점차 가세가 기울고 병이 들게 되자 불상 주인은 불상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기에 이른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마지막으로 불상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고창 경찰서에

신고하고 반환함으로써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도난당한 지 2년 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용문굴로 올라가는 협곡 바위지대 

내원궁에서 바라본 천마봉

바위 생김새가 묘하게 생겼다 

호랑이 같기도 하고 기차바위 같기도 하고 시각에 따라 다르니 각자의 상상에.....

쥐꼬리망초

들에 흔하게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전체에 짧은 털이 난다.

줄기는 네모지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10-40cm, 마디가 굵다. 

꽃은 7-9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이삭꽃차례로 빽빽하게 달리며, 연한 보라색이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흔하게 자생한다. 아시아 온대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용문굴

선운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굴로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의 도솔암을 지나 자리하고 있다.

이 굴에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와서 보니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이미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 용은 검단선사에 의해 쫓겨났고,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용문굴이다.

 

용문골에 도착 낙조대가 500여 m 무릎 때문에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생긴다 

내려가면 차 출발시간이 아직도 3시간 정도 남았는데 올라가자 마음이 기울어진다 

땀은 비 오듯 상의는 벌써 다 젖어있다 

그래도 7~8년 전 올랐던 기억을 하며 조심스럽게 접근 드디어 낙조대에 올랐다

앞에 보이는 바다는 곰소만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변산반도가 한눈에 보이는데 비만 내리지 않을 뿐이지 날씨가 무척 흐리다

앞에는 심원면이다

이쪽은 해리면 쪽 풍경이다

지금 시간 낙조는 볼 수 없지만  주위를 살펴보고 하산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잡는다

천마봉 쪽으로 하산을 한다

저곳은 배맨바위다 

예전에 해리 쪽에서 청룡산을 거쳐 저 배맨바위를 거쳐 낙조대로 온 기억이 있다

낙조대와 천마봉 중간에서 바라본 도솔암

천마봉이 200m라는데 들리지 않고 하산하면서 담아본다

 

천마봉

8만 년 전에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선운산의 천마봉은 담회색에서 담홍색을 띠는 

화산재로 만들어진 응회암과 용암으로 만들어진 유문암들로 구성되어 있다

암석이 만들어질 때 수축하며 잘 쪼개지기 때문에 절벽이 만들어졌고 천마봉과 같은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도솔암 마애좌상 뒤의 용암과 응회암지대 푸른 지붕 위로 마애여래좌상 상채가 보인다

내려어며 바라본 꽃무릇은 어제의 많은 비로 어지럽게 꺾여져 있는 모습이다

오래전에 왔을 때는 꽃무릇이 만개를 했었는데 적기에 잘 왔다고 생각했으나 

금년의 이상기온으로 아직 피지 않아 남는 시간을 산행으로 대체를 했다

오늘의 걸음수는 몇 보 모자라는 2만 5천보다 

내려오며 계단 경사가 심하고 계단 간격이 너무 높아 다리에 무리가 와서 

걷는데 많은 제약을 받았다 

 

가가을아침/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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