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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륜동 성균관

성균관을 계승한 성균관대학교는 6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이다.

1398년 개성에서 한성부 숭교방으로 성균관이 이전되었고, 기존의 개성 성균관은 향교로 격하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이래 성균관에 경 학과가 설치되었으며 근대적 제도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성균관은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으며 근대적 대학 교육의 기능도 중단되었다.

이후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 회복 움직임[13]의 영향으로 부설된 교육기관인 명륜전문학교마저도마저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1943년 폐교되었으며, 이듬해 명륜연성소로 개편되어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각종 훈련과

근로 등을 수련하게 한 연성소(鍊成所)중 한 곳으로 전락했다.

1945년 광복 후 군정법령에 의해 기관의 명칭이 경학원에서 성균관으로 회복되었고, 명륜연성소는

명륜전문학교로 환원되었다.

이후 전국유림대회를 통해 유림 천여 명은 성균관대학의 설치를 결의하였고, 이어서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이로써 김창숙의 주도 하에 명륜전문학교와 학림사가 통합되어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었다.

성균관대학은 1946년 문교부의 인가를 받았고, 캠퍼스는 전묘후학의 원칙에 따라 옛 성균관의 뒤편에

자리 잡게 되었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81년 자연계열 학과가 새롭게 조성된 수원시의 

자연과학캠퍼스로 이설 되었다. 이는 성공적인 이원화 캠퍼스 체제로 굳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 성균관의 부지 전체는 1964년 사적 제143호로, 건물 5동은 앞선 1963년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과거 이와 성균관대학교를 하나의 법인이 관리하였으나, 1963년 사립학교법이 시행된

이후 재단법인 성균관과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분리되어 각각 종교와 대학 교육의 기능을 전담하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활발한 인적 교류를 이어가며 깊은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작년 11월 13일의 모습이다 

은행나무 앞에서 북쪽을 향해 섰다. 오래된 왕립대학 성균관의 종합 강의실 명륜당(明倫堂)이 웅장하다.

1,000원 권 지폐의 앞면에 있는 바로 그 건물이다. 화폐의 주인공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이곳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정 3품 벼슬)을 세 차례나 지냈다. 대사성은 요즘으로 치면 대학 총장이다.

 

대형 은행나무들은 아직 푸르기만 하다

은행나무가 오래되어 여기저기 땜질식 치료를 받고 있어 얼마나 오래 지탱이 도렸는지 모르겠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은 은행나무 남쪽에 있다.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4성(聖)과 제자 10 철(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賢) 등

모두 39위 패가동서로 봉안돼 있다.

매년 양력 5월 11일과 9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석전제(釋奠祭)를 올린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석전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원형이 보존돼 있다.

‘공자의 나라’인 중국이 잃어버린 원형을 복원할 당시, 한국의 석전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담장아래에는 구절초도 보이고 

단풍나무 한그루 곱게 물들어 있다 

성균관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었다 

성균관대학으로 가는 길은 곱게 물들어 있는 나무들 

성균관대학교의 설립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최고학부였던 성균관은 서울 인사캠 정문 바로 안쪽

우측에 붙어있다. 성균관대의 로고에서는 Sungkyunkwan의 첫 글자인 S를 찾아볼 수 있다.

성균관대 학생은 입학식과 졸업식 행사의 일부로써 문묘의 대성전 앞에서 고유례(告由禮)를 올리며,

성균관과 문묘 부지에서 연중 자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통학 시 명륜당 앞뜰을 지름길

삼아 다닐 수도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상징물은 은행이다. 은행나무는 교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은행잎은 학교 로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자가 행단(杏壇)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은행은 유교적인 상징성을

띠게 되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학교 이곳저곳에서 은행을 접할 수 있다. 성균관 명륜당 앞은 물론이고

학교 정문에서 올라가는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를 줄지어 심어놓았다. 또한 성균관대의 구호는

'킹고 킹고 에스카라 킹고'인데, '킹고(Kingo)'는 은행[25]에서 유래한다. 이 밖에도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킹고포털, 모바일 포털앱 KINGO-M, 법학전문대학원/일반 여학생 대상 기숙사인

K-하우스(킹고하우스) 등 이름에 킹고가 붙은 것이 많다. 또한 인사캠 600주년 기념관 학생식당의 이름은

은행골이며 자과캠 학생회관 학생식당의 이름은 행단골이다. 여러모로 은행과 관련이 깊은 네이밍을

이곳저곳에서 접할 수 있다.

이사진과 아래 두 사진은 작년에 왔을 때의 모습이다 

11월 중순이 돼야 이 정도가 될 것 같다(작년 11월 13일 사진이다)

기본적으로 성균관대학교는 유교를 하나의 동아시아 학문으로 바라보기에 미션스쿨이 아니고 종교, 이념,

철학, 사상으로 강요하거나 그러한 분위기가 아니며 학내도 유교적 분위기에 잠식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또한 유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성 있게 구성원이 바라보는 것을 오히려 권장한다.

그러므로 종교로서의 유교나 봉건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며 오히려 학내에서는 서양철학 연구도

지원하는 등 균형 잡힌 입장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개신교와 천주교 동아리가 수도권에서 가장

활발하며 외국인 학생들의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몰몬교 등의 활동도 관심을 가지는 등 학문으로서의

유교는 관심이 깊지만 종교로서 유교 학교로 보이는 것은 배격하며 학교의 재개교 과정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고등 교육의 맞서 민족의 자주를 지키고 개혁적이면서 범 국민이 함께 민립적으로 근대적 학교로 개편한 다고 함

오래 된 은행나무는 단풍도 늦게 물들기에 아직도 푸른 빛 그대로다

옛날에는 성균관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엄숙하게 예를 올리며 걸어갔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꾼들은 너 죽고 나살자식으로 서로 싸우고 헐뜯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까지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언제나 이 고질병이 고쳐지려는지 요원하기만 하다 정말 탕평은 없는 것일까?

 

 

 

Will My Love Be You / Petula C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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