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각자의 땅, "박사마을" 가내마을에 서재필 생가가 있다.
가내마을은 해 뜨는 망일봉과 청정한 가내가 선경을 이루는 역사문화 인물의 성지이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송재 서재필 선생 생가가 있고 한말의병장 일봉 이교문 선생의 구국 혼이 깃든 마을이다.
문열공 이조년 후손들이 마을에 정착 11대를 이어 오면서 3 학당을 개설해 선비들의 충심과 효심이 담긴
4대가 문집을 남겼으며 근현대에는 27명의 박사가 탄생하여 "박사마을"로 이름이 높다.
마을에는 성주이씨 보성 참의공 종가, 셋방그룹 창업주 월봉 이의순 생가 등이 있고, 3백여 년 전통의
학당 천상재가 복원되었다.
마을주민이 설립한 농업회사법인 청정가내(주)는 더불어 살아온 우리 민족의 두레정신을 오늘에 계승하고 있다.
한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박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다정가(多情歌)
이조년(李兆年, 1268~1342)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이 시조비를 봐서도 이곳이 성주이 씨의 집성촌임을 알 수가 있다
문패에는 이정섭 변원자 님 부부의 명패가 붙어 있다
지금 이곳에서는 시화전이 열리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는데 시화전 모습은 담지 않았다
서재필의 외가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서재필은 개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1884년 갑신정변에 적극 가담하였으나 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다 1895년에 귀국하여 이듬해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
설립을 주도하며 민권신장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ㅈ게되어 1898냐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미국동포들과 함께 한국독림운동을 기원하였다
1921년 워싱턴군축회의 1925년 범 태평양회의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였다
서재필이 태어난 집은 6.25 때 소실되었는데 2003년 복원하여 그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건물에는 많은 시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래가 초당인데 복원하면서 기와집으로 변해있다
서재필은 1864년 1월 7일 외가인 전남 동복 군 문전면 가천리(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
에서 대구 서 씨 가문의 서광효와 성주 이 씨 이기대의 다섯째 딸 이조이 사이의 5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곳 문덕의 기념관 앞을 흐르는 작은 내를 거슬러 1.3km쯤 서재필의 외가 마을이 있다.
외가는 외고조부가 처음 터를 잡았고, 외증조부 이유원이 이조참판, 외종조부 이기두가
동지중추부사, 외삼촌 이지용이 충청도 석성현감을 지낸 문벌이자, 대지주 가문이었다.
서재필이 태어난 외갓집 마루에서 바라보는 앞산의 두 봉우리는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다. 성주 이 씨는 아들을 낳기 전 큰 용이 집 뒤뜰 뽕나무를 감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
또 그의 외삼촌 이지용도 마을 어귀 고목을 감고 있는 큰 뱀의 태몽을 꾸었다.
서재필의 어릴 적 이름이 쌍경이다. 아버지 서광효가 자신이 진사시에 급제한 해에 태어나서
두 가지 경사가 겹쳤다 하여지어 준 이름이다. 서광효는 또 처가가 있는 이곳 동복현감을 지냈다.
하지만 서재필의 일생은 영광과 고통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함이었다. 7살 때 아버지의 6촌 형제인
서광하의 양자가 되어 충남 은진 군으로, 관직에 오른 양부를 따라 한성부에서 살게 되었다.
서재필은 1879년 15살의 나이에 임금이 친히 주관하는 전강에서 1등을 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한
수재였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갑신정변 삼일천하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정변 실패 뒤, 친가, 처가, 양부 집안까지 연좌제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아내인 광산 김 씨가
독약을 먹고 죽자, 2살 난 외아들은 굶어 죽었다고도 하고, 배고픔에 죽은 어미의 젖을 먹다가
독약 성분에 죽었다고도 한다. 그런 사연을 안고 서재필은 미국인이 되어야 했으니, 모국인
조선이 좋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서재필은 모국의 독립을 위해 할 바를 다한 대인이었다.
윤당님 글에서
커다란 황룡이 초당과 바위사이에 있는 뽕나무를 휘감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는
그 바위와 뽕나무이다
가은당
조선의 철학자이자 외조부인 가은 이기대의 서재다.
외조부는 서재필 선생의 절대적인 정신적 지주였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한다
서재필박사 생가를 둘러보고 입구에 있는 조각공원에 왔다
보성군 관광지도
조각공원은 서재필기념공원 옆에 있으며 구름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다
호수가 있는 정자 부근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어 잠시 쉼도 좋을 것 같다
온고지신
연못이 있는 정자
구원
개쑥부쟁이
상(이미지)
대지
불심
불로문
사랑
두 여인
조화의 순간
소리
푸른 바다 울타리 내 고향
이렇게 둘러보고 출발하며 화순에 살고 있는 옛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금 화순파크골프장에 있다고 한다 아직 보성 친척집에 약속시간이 좀 남아 있어
옆지기와 36홀을 돌고 가자 하고 달려간다 거대한 구장 81홀이라 한다
조성한 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한 바퀴 도는 것도 벅찰 것 같다
시간 관계상 직장동료와 36홀만 돌고 또 보성 회천면 군학마을로 간다
이이정석 /첫눈이 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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