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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카르낙신전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였던 테베 이곳이 현재 룩소르 지역이다.
이집트 제국이라 불린 만큼 강력했던 신왕국 시대 그만큼 유명한 파라오들이 많은데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전쟁왕 투트모스 3세, 소년왕 투탕카멘, 이집트 최고의 군주 람세스 2세 등,
강력했던 왕권을 자랑한다.
 
룩소르도 나일강을 기준으로 서쪽은 죽은 자들의 땅 네크로폴리스 동쪽은 산 자들의 땅 아크로폴리스로

나뉘어 있다. 우리는 나일강을 넘나들면 서쪽에서는 파라오의 무덤인 왕가의 계곡과 멤논이 거상
하트셉투스의 장제전을 관람했고 동쪽에서는 카르낙 신전 룩소르신전을 관람할 차례다

가장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듯 고대 이집트 유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중왕국부터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까지 무려 2000년에 걸쳐 세워진 신전 중왕국 시대에는 테베의 지역신인 아문으로 모시는 신전이었다가
신왕국 시기에 아몬이 주신이 되면서 그 규모가 확장되었다. 하트셉투스, 투트모스 3세, 람세스 2세.

이후 투탕카멘까지 역대 파라오들이 가장 공들였던 건축 사업이자 대대적으로 증축한 카르낙 신전이다.

태양선 오페트 축제 때 아문신을 모시고 간 배라고 한다

카르낙 신전의 모형도

결명자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집 근처에 심어 기르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1-2m, 전체에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며 깃꼴겹잎이고 작은 잎은 2-3쌍이다.

작은잎은 도란형으로 길이 3-4cm이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1-2개씩 달리고 6-8월에 노란색으로 핀다.

열매는 협과, 9-10월에 익고 길이 10-15cm, 활처럼 굽는다.

아시아 전역에서 재배하며, 씨를 결명자(決明子)라고 하고 차로 마시거나 약용한다.

애기노랑토끼풀

유럽과 서아시아 원산의 귀화식물로 하천이나 둑에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길이 20-40cm, 땅에 비스듬히 누워 자라며 전체에 거의 털이 없다.

턱잎은 난상 피침형,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은 줄기를 감싼다.

꽃은 5-6월에 노란색으로 피며, 5-15개가 느슨하게 모여 달린다.

 1992년 서울 한강 고수부지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토끼풀과 비교하여 꽃이 노란색이므로 구분된다.

카르나크 신전의 위치는 룩소르 시내에서 2.5km. 성벽처럼 굳건해 보이는 높이 10층 규모의 탑문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동서 540m, 남북 600m의 규모. 건축은 11 왕조부터 무려 1000년 이상 계속됐는데 지구상의 신전건축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신전의 주인은 아문(Amun) 신. 신왕국시대가 숭앙한 최고신으로

테베의 조물주다.

파라오들의 카르투스가 새겨진 비석

아문신의 상징인 숫양과 세트 1세의 오벨리스크 

거대한 장벽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마치 높은 성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제30 왕조 넥타네보 1세(기원전 380~362년) 때 세웠다고 하는데, 폭이 113m, 높이가 43m나

되는 거대한 성문이다. 이집트 신전의 탑문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탑문을 통해 들어선 신전. 주 회랑을 향해 양편에 숫양 머리의 스핑크스 10여 기가 도열했다.

흙벽돌로 쌓은 탑문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이 탑문은 인간과 신의 세상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제1 안마당의 파피루스 기둥, 석상

제1 탑문을 지나면 제1 안마당이 나온다. 제22, 25 왕조 시대에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벽돌로 쌓은 높은 파피루스 기둥과 석상이 남아 있다. 파피루스 기둥의 머리는 파피루스 꽃이 활짝 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원래는 10개가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1개만 온전하게 남아있다.

파피루스 기둥 앞쪽에 보이는 석상은 제21 왕조 시대 아멘 신의 사제였던 '피네젬(Pinedjem)'의 것인데, 주변 기둥들이 너무 웅장하여 작게 보이지만 사실은 큰 규모다. 석상에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어 피네젬 석상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는 람세스 2세의 석상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 왕국 역사에서 '아멘 대사제'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시절이었다. 권력은 석상의 이름표도 바꾸나 보다.

이 거대한 석상은 람세스 2세의 석상이고,
석상의 다리 사이에 있는 작은 석상은 람세스 2세의 왕녀로
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했던 딸이라고 한다.

보바스타이트열주

앞마당의 북쪽과 남쪽의 담을 장식한 열주의 모습으로 제3중 간기 루비아 인들이 통치했던 22대 왕조 때

건설되었다고 하며 이들을 부바스타이트 왕조라 칭하기에 이 기둥을 부바스타이트 열주라고 한다

이곳은 테베의 삼신인 아문 과 아문의 처 그리고 아들 콜수를 모신 신전으로

오페트 축제 때 이들 신을 태울 신성한 배를 보관하는 창고라고 한다

제2 탑문을 들어서면 람세스 3세의 입상이 양쪽으로 서 있다. 그 안쪽이 람세스 3세의 신전인 듯하다.

19세기에 유럽 탐험가들이 카르나크라는 거대한 유적지를 발견했다.

오늘날 카르나크는 이집트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이며 고고학자들은 계속해서 분석 및 심도 있는

해석을 진행 중이다.
위대한 하이포스타일 홀 (대열주실),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 그리고 기념비적인 조각상들은

고대 이집트의 웅장함을 상징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카르낙은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들의 야망, 권력, 믿음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유산이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통치자들이 이를 확장하고 수정하여 건축적 경이로움의 흔적을 남겼다.

오늘날 카르나크 사원은 고대 이집트의 영원한 위엄을 증명하는 장소로, 방문객들에게 역사를 형성한 문명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람세스 2세의 석상 뒤로 보이는 특별한 풍경. 수많은 돌기둥의 숲이다.

이 열주(列柱)가 카르나크 신전의 건축 주제다. 높이는 15.13m, 그 수는 134개. 모양도 특이하다.

나일강 하구에서 자라는 갈대 파피루스 모양이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인이 종이 대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나일 강에 서식하는 갈대 파피루스 만든다.

134개의 기둥에도 빈틈없이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모습이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투탕카멘 부부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만?

 

위대한 확장의 시대: 신전을 키운 파라오들

 투트모스 1세 (Thutmose I, 기원전 1506~1493년경)

거대한 오벨리스크(Obelisk)를 세웠다.

이후 파라오들이 신전 확장을 계속할 기반을 마련했다. 

 

  하트셉수트(기원전 1479~1458년)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서 그녀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원을 크게 확장했다.

아문의 축제를 위해 "레드 채플(샤펠 루주 : 붉은 예배당)"을 지었다.

 

  투트모스 3세(기원전 1479~1425년

군사 작전으로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나폴레옹"으로 알려져 있다.

사원의 중심부를 확장하고 축제 홀을 지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카르낙 내에 "암브레시아 금고"로 알려진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멘호테프 3세(기원전 1388~1351년)

거대한 열 주실(Hypostyle Hall) 건설을 시작했다.

134개의 기둥이 세워졌으며, 이곳은 현재도 카르낙 신전의 가장 웅장한 부분 중 하나다.

 

  아멘호테프 4세(아케나톤, 기원전 1351~1334년)

태양신 아톤에 대한 숭배를 도입하고 아문의 영향력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아텐을 위해 별도의 사원을 지었지만 나중에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투탕카멘(기원전 1332~1323년)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아몬라 숭배를 복원하고 아케나텐이 변경한 카르낙의 일부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세티 1세(기원전 1294~1279년)

그레이트 하이포스타일 홀(대열주실)을 완공하여 사원을 더욱 웅장하게 만들었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3년

카르낙 신전의 황금기를 이끈 파라오로, 신전 앞에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조각상을 세웠다.

룩소르 신전과 연결된 길(스핑크스 거리)을 조성했다.

 

람세스 3세(기원전 1186~1155년)

신전의 남쪽을 확장하며, 작은 예배당과 추가적인 부속 건물을 지었다

이 많은 열주들이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수리한 것들이다

중앙 통로에는 2열로 6개씩 12개의 기둥이 서 있는데, 높이 21m, 지름이 3.6m나 된다.

기둥머리는 파피루스 꽃이 활짝 핀 모습으로 원형으로 빙 두른 형상인데 그 둘레가 무려 15m나

된다고 한다. 대열주실로 들어오는 순간 이 어마어마한 기둥들에 압도당하고 만다.

나머지 122개의 기둥들은 람세스 2세 때 세운 것으로 높이가 13m, 지름이 2m로 기둥머리는

파피루스의 꽃봉오리다

대열주실의 거대한 기둥의 기둥면에는 파라오가 아멘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 투트메스 3세의

연대기, 왕명표(카르투슈) 등이 돋을새김 되어 있어 역사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기록이라 한다.

그런데 이 거대한 기둥들은 하나의 통으로 된 것이 아니고 원통형으로 된 기둥 몇 개를 이어 올려서 만든 것이다.

중앙에 앙크가 있고 양옆에 파라오의 징표 카르투슈가 있는 것을 보니 파라오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의 부조로 보인다

대열주실에서 제3 탑문을 통과하면 제4 탑문과의 사이에 투트메스 1세가 세운 높이 19.5m, 무게 130여

톤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투트메스 1세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아버지다. 그런데 제4 탑문과 제5 탑문

사이에 더 높은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높이 30m, 무게 323톤의 화강암으로 만든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의 것보다 더 높게, 더 크게 만들었다. 오벨리스크는 끝부분이 피라미드 형태의

사각뿔 형태로 되어있는데 이는 태양신앙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오벨리스크의 크기는 곧 파라오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오벨리스크에는 파라오의 치적이 새겨져 있는데,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에는 여왕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고 한다.

왼쪽은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 오른쪽은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다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투트모스1세 오벨리스크

 

투트모세 3세가 정복한 지역의 도시 이름이 새겨진 부조

6 탑문 부근에 투트모세 3세의 아시아 도시의 목록이 벽화로 새겨져 있다.

투트모세 3세가 아시아 원정을 나가서 정복했던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의 도시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놓았다. 성벽을 본뜬 틀에 도시 이름을 기록한 것인데, 투트모세 3세는 치세 20년 동안 17 차례나

원정을 떠나 이집트 왕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파라오이다.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6번째 파라오하트셉수트 여왕의 공동 통치자이자 후계자로,

할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와 함께 고대 이집트의 강역을 최대로 넓힌 정복왕으로 꼽힌다.
투트모세 3세는 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5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54년 넘게

이집트를 다스렸다. 다만 즉위한 후 22년까지는 고모 겸 계모 그리고 투트모세 2세의 왕비였던

 하트셉수트와 공동 통치를 하면서 여왕의 그림자에 가려 살았다

투탕카멘과 그의 부인 아마네트 조각상이라 한다

투트모스 3세의 축제 전

원래 투트모스 3세를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으나 나중에 오페트 축제를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제3 탑문의 흔적들 

제3 탑문은 아멘호프 3세가 건설했고 이탑문을 건설할 때 자기 통치 이전에 지어졌던 수많은 

기념물을 해체하고 여기서 나온 자재를 이용하고 20세 게초 이것들은 카르나크신전 야외박물관

백색사당 적색사당 보수에 사용했다고 한다

카르나크신전 지성소(캡처한 사진)

태양숭배의 건물 타하르카

멘투(테베의 신) 신과 파라오

이집트에서 신전, 장제전, 왕 묘 등을 여러 곳 살펴보다 보니, 이제 신전의 구조나 벽화의 내용이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 대강은 짐작이 된다. 파라오가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신들로부터

권위를 부여받거나 보살핌을 받는 장면, 전투에서 용감하게 앞장서 싸우는 장면, 오페트 축제

같은 큰 행사 장면, 왕으로서의 치적을 과시하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룬다.

이 그림들도 파라오의 치적과 파라오에게 경배하고 공물을 바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오페트 축제의 신여(신상을 태운 가마) 행렬

오페트 축제는 제18왕조 하트셉수트 여왕의 대표적인 브랜드 행사이다.

테베(룩소르)의 중요 제례이자 축제였다. 아멘 신과 무트 여신의 결혼을 재현한 대규모 행사로 아멘, 무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콘서 신의 조각상을 가마에 태우고 이곳 카르나크 지성소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3km 떨어진 룩소르 신전으로 이동했다.

이 가마를 신여(神輿)라고 하는데, 신전의 사제들이 가마를 메고 룩소르 신전까지 갔다고 한다.

그런데 위 벽화에는 사제도 있고 아누비스 형상의 신들도 보인다. 이 시대의 주신이 아멘, 무트, 콘스 3 신다.

룩소르 신전으로 이동하는 행렬을 보려고 많은 테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멘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꽃과 향수 등을 바치고 뿌렸다. 이 축제는 열흘 이상 지속되었고 룩소르 신전으로 옮겨간 신상은 3주 정도

머물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유럽의 사육제가 여기서 기원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청랑만리님 글에서

이 그림도 오페트 축제의 장면들이다

파라오 석상들

살아있는 모습의 파라오 석상(왼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민 것)과 죽은 자의 모습

(양손에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쥐고 두 팔을 가슴에 얹은 오시리스 상)의 석상이

한 쌍으로 나란히 서 있다.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 표정과 동작도 살아

있어 저대로 멋진 예술 작품이다.

신성한 연못

제5 탑문 앞에서 우측으로 나오면 4 각형의 연못이 하나 나온다.

신성한 연못'이라고 부르는데, 신전의 사제들이 심신을 정화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윗부분)

쇠똥구리를 형상화한 아문신 (스카라브)

스카라브(Scarab)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시되던 쇠똥구리를 일컫는 말이다. 황금 풍뎅이를 뜻하기도

하는데, 만물의 상징과 재생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다산과 풍작을 상징하는 부적으로도 쓰이고

인장으로도 사용했는데, 바닥 부분을 평평하게 하여 그곳에 왕의 치적을 새겨서 널리 외국에까지

퍼뜨렸다고 한다.

쇠똥구리, 소똥 모두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이름이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쇠똥구리가 만들어 굴리는 둥그런 공 모양의 소똥환은 태양을 닮았고, 우주를 닮은 완전체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소똥환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니 그것은 곧 부활을 의미한다.

스카라브 주위 돌기

많은 사람들이 화강암 기둥 위에 올려 있는 스카라브 주위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속설에 의하면 3바퀴를 돌면 행운이 오고, 다섯 바퀴를 돌면 결혼한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 일행이 돌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When A Child Is Born(영화 나자리노 OST주제곡) - Michael H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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