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을 배로 돌아보고 이곳 외도 보타닉가든에 왔다
바람이 좀 불기는 했지만 파도가 그리 높지 않아 접근하기도 쉬웠다
내가 처음 외도에 왔을 때는 아주 작은 배로 왔으며 부두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접안하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시설을 잘해놔서 위험하지 않고 편안히 내릴 수가 있다
오늘이 벌써 4번째 외도 방문인 것 같다

배에서 내려 올려다본 보타닉가든 모습

향나무를 어찌나 잘 다듬어 키웠는지 자연미는 전연 찾아볼 수가 없다

워싱톤야자 나무라고 한다

워싱턴야자(Washingtonia filifera) 또는 사막부채야자, 캘리포니아부채야자, 또는 캘리포니아야자는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주 원산의 종료과 속씨식물이다.
15~20m, 너비 3~6m까지 자라며, 나무와 같은 성장 습성을 가진 상록수 외떡잎식물이다.
튼튼하고 기둥 모양의 줄기와 밀랍 모양의 부채꼴 모양 잎이 있다.

털머위

남자의 강인한 힘을 표현한 조각품

워싱톤 야자 같기도 하고 종려나무 같기도 하나다


가든 안내도

부티아야자나무

유카

선인장가든


부부의 땀과 노력, 눈물이 배지 않은 곳이 없지만, 최 회장이 특히 애정을 갖는 공간은 사택으로
사용하는 리하우스(Lee House) 앞으로 넓게 펼쳐진 비너스가든이다.
오래전 초등학교 분교였던 이곳은 버킹엄궁 후정을 모티브로 꾸민 공간으로, 최 회장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외도 보타니아의 대표 정원이다. 외도의 정원사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이곳은 그리스식 야외
음악당이 연상되는 건축물과 곳곳에 놓은 우아한 비너스 조각상이 일품. 지난해 성큰가든 형식으로 다시
꾸미면서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비너스가든 (중앙가든)
처음의 모형을 많이 변형을 시켰다

운명처럼 이끌리다
1995년 외도해상농원으로 지정, 2005년 외도 보타니아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2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지만, 사람들은 이곳이 최호숙 회장 개인 소유의 섬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최호숙 회장은 1969년 남편인 고 이창호 회장과 함께 외도에 낚시하러 왔다가 하룻밤 묵으면서 이곳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남편이 평안남도 순천 사람이었어요. 대동강가에서 자라 워낙 수영을 잘하고 낚시를 좋아했죠.
낚시를 왔다가 하룻밤 자게 됐는데, 여기가 그렇게 좋았나 봐요. 그 인연으로 여기에 작은 집을 하나 샀어요.
늙으면 낚시질이나 하며 살겠다는 요량이었죠.”

하지만 외도 원주민은 대부분 도시로 나가고 싶어 했다. 부부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집을 한 채 한 채 구입했고,
외도 땅과 산도 조금씩 매입하다 보니 3년 만에 4만 8000평(약 15만 8700m²)에 달하는 외도 전체가 부부의 소유가
되었다. “그 정도로 무모했어요. 특히 남편은 한번 결정하면 앞만 보고 직진하는 스타일이었죠.”
본래 초등학교 교사인 최호숙 회장과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의 월급으로 섬을 산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부부는 최 회장의 언니에게 동대문의 직물상을 인수해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섬마을 전체를 사들이면서 지독한 고생길, 아니 고행길이 시작됐다.
우선 부부는 주민들이 고구마를 심던 밭에 밀감나무 3000그루와 편백나무 8000그루를 심어 농장을 조성했다.
그런데 유례없는 한파가 들이닥치며 부부가 정성스레 피땀 흘려 가꾼 농장이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그렇다고 쉽게 무릎을 꿇을 순 없었다. 폐교된 구조라 분교 터를 이용해 돼지 8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한우 파동과 양돈 파동이 겹치며 더 이상 돼지를 사육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망연자실 주저앉아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꽃을 좋아하던 부부는 꽃과 나무를 재배해 거대한 식물원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뒤 본격적으로 정원을 조성했다.

지금이야 차 한 대 다닐 수 없는 외도에서도 무거운 짐은 전동 카트로 옮기지만, 1970년대는 거제도에서 외도까지
작은 고깃배로 오가던 시절이었다. 자그마한 배에 건축자재와 꽃나무 등을 실어 나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선착장도 마땅치 않아 배에서 내리려면 그때마다 나무다리를 육지에 연결해 하선할 정도였다. 게다가 파도가 성질을
부리기라도 하는 날엔 꼼짝없이 거제도 선착장에 발이 묶여, 눈앞에 외도를 두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서울에서 트럭 가득 꽃을 싣고 거제도에 내려왔는데, 파도가 쳐서 며칠을 외도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2~3일을 기다려도 바다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사이 트럭에 있던 꽃이 모두
시들어 쓸모없게 되었어요.” 얼마나 속상했는지,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다고 했다. “사람이 어떤 일에 미친다고
하잖아요. 지나고 보니,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외도에, 최 회장은 아이 넷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서울과 외도를 오가며 정비에 몰두했다. 발동기를 이용해
우물을 파고 정원에 물을 공급하며 꽃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화훼 단지 조경 계획을 세운 것도, 지금 관광객이 걷는
산책로를 디자인한 것도 모두 부부였다. 그사이 태풍으로 선착장이 파괴되어 일곱 번이나 재건하고 자연재해에 가까운
피해를 입기도 수차례였지만, 그때마다 최 회장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우직하게 한길을 가고자 한 남편 덕분이다.
2003년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져 며칠 만에 하늘나라로 갔을 때, 최 회장은 절망에 휩싸였다.
거제도의 작은 섬에서 남들이 도리질할 정도로 힘들고 외로운 길을 30년간 함께 걸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데,
하루아침에 평생의 반려자가 사라졌을 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외도를 가꾸면서
정말 많이 싸웠어요. 몸은 힘들지, 일은 진척이 안 되지, 섬이다 보니 몇 시간 훌쩍 떠나 바람 쐬고 올 곳도 없지,
둘 다 체력이 바닥날 즈음엔 서로 해서는 안 될 말도 많이 했어요. 상처를 많이 줬죠. 그게 너무 마음 아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 외도를 만든 건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인데, 그 행복을 위해 맞바꾼 시간은 지치고 힘든 과정이었다.
1995년 외도해상농원으로 개장한 뒤 2000년에는 연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하고 2002년에는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인기를 얻으며 외도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바다의 날 대통령상 수상,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그리고 누적 관람 인원 1000만 명에 이어 2000만 명 돌파라는 창대한 봄을 보지 못하고 고인이 된 남편이 최 회장은
지금도 안타깝다. “살아 있을 때 제가 남편에게 ‘우리 이런 걸 좀 해볼까요?’ 하면 우리 영감은 늘 ‘이것만 끝내고
봅시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봅시다’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영감이 ‘봅시다’로 마무리한 인생인 것 같아 너무 아쉬워요.”노블레스에서

비너스상과 소철

정면에서 바라본 비너스가든

청화쑥부쟁이

담팔수나무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 자생한다. 높이가 20m이고, 잎은 어긋나고 거꾸로 선 달걀 모양이며 표면에 광택이 있고
가죽처럼 두꺼우며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잔 톱니가 있다. 나뭇잎 중 한두 개가 항상 빨갛게 단풍이 든 채로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유리홉스

숙근안개초

멕시칸세이지

피라칸타

하와이무궁화(히비스커스)

자트로파 인테게리마

결명자

관목나팔꽃(이 포모에 아 카르네 아)

티보치나 우빌레 아나

갯국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카페와 전망대

조각공원

거제도 가리산과 케이블카

마치 백두산에서 바라보는 천지 같은 모습이다

이창호 (외도가든 설립자)
외도를 만들고 사랑한 사람, 고 이창호 회장, 그리고 그 영혼을 이어받은 아내인 최호숙 씨.
아름다운 여인 최호숙 씨가 고 이 회장 타계 3주기를 맞아 남편을 추모하며 쓴 글이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외도 한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그리워하는 우리를 여기에 남겨 두시고 그리움의 저편으로 가신 당신이지만 우리는 당신을
임이라 부르렵니다.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지만 나와 함께 가자는 말씀도 없이 왜 그리도 급히 떠나셨습니까.
임께서는 가파른 외도에 땀을 쏟아 거름이 되게 하시었고 애정을 심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지게 하시었으며 거친
숨결을 바람에 섞으시며 풀잎에도 꽃잎에도 기도하셨습니다. 더 하고픈 말씀은 침묵 속에 남겨두시고 주님의 품으로
가시었으니임은 울지 않는데도 우리는 울고 있고임은 아파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아파하며임의 뒷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임이시여. 이창호 씨여 임께서 못 다하신 일들은 우리들이 할 것으로 믿으시고 주님의 품에 고이 잠드소서. 이제 모든
걱정을 뒤로하신 임이시여. 임은 내 곁에 오실 수 없어도 내가 그대 곁으로 가는 일이 남아 있으니 나와 함께 쉬게
될 그날까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주안에서 편히 쉬세요. 2003년 3월 1일. 하늘나라에 가시다. 부인 최호숙 드림

작은 교회 에덴교회



에인절트럼펫(천사의 나팔)

천국의 계단


나도 샤프란

콜치쿰(개샤프란)

등대

윤슬이 빛나는 바다
좌측 끝은 우제봉 중앙은 도장포(바람의 언덕 쪽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갯고들빼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의 긴 벤치를 연상케 하는 모자이크 의자

선착장에 노닐고 있는 도미들

돌아가는 배는 4시 15분에 정확하게 선착장에 들어온다
이렇게 오늘은 거제도에서 보내고 이제 통영으로 가서 1박을 한다
Giovanni Marradi - Bells Of San Sebastian'경남.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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