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남.울산

남사 예담촌과 단속사지 삼층석탑


                                  남사 예담촌은 전에 두어번 둘러본 곳인데 단속사지 삼층석탑을 보러가는 길초라서

                                  대강둘러보고 식당에서 식사도하고 단속사지로 출발했다




사예담촌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옛 담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리산 초입에 자리잡은 남사예담촌은 안동하회마을과

 더불어 경상도의 대표적인 전통한옥마을이다. 경남하면 산청남사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던 이 마을은 양반마을로 또한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하다.
전통가옥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요즘 평범하게 살아 가면서 전통가옥을 보존하고,

 일부러 찾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지리산 초입의 이 작은 마을이 유난히 정감 있고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해묵은 담장 너머 엿볼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서와 삶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농촌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남사 예담촌" 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옛 담 마을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옥은 수천 년의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그 시대의 삶의 양식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다. 한 민족의 문화가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를 딛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그 변화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할 것 이다. 농촌 전통테마 마을 남사 예담촌은

 변화하는 현재속에서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는 배움의 휴식 터로 자리 하고자 한다.


남사마을의 옛담장은

마을 주민들이 남사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강돌을 사용하여 쌓았다고 한다.

담장 하부엔 길이 50~60cm 정도의 큰 막돌로 2~3층을 쌓은 다음

그 위에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담쟁이와 어우러진 돌담길







                                영모제





                                                    300년이 넘은 이끼 낀 회화나무 한 쌍이 말을 걸어온다. 우리처럼 서로 기대며 돕고 살라고,

                                                    사람이면 더욱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자형 회화나무는 부부가 나무아래로 지나가면

                                                    백년해로 한다고 전해지는 나무라고 하네요


                                        산청 단속사지(斷俗寺址)는 지리산 웅석봉(熊石峰)의 남쪽기슭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

                                        사찰터이다. 현재 사역(寺域)으로 추정되는 주변은 민가와 전답이 자리하고 있으며,

                                        보물 제72ㆍ73호로 지정된 동ㆍ서 삼층석탑과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단속사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742~765)때에 이순(李純)이 창건하고 신충(信忠)이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현존하는 삼층석탑은 9세기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9년

                                        석탑 북편의 정비구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민가 건물지 2동을 확인하였고, 자기류,

                                        기와류, 소불상편(小佛像片) 등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서탑

                                                                                                          동탑


                    '삼국사기 新羅本紀 경덕왕 22' 기사에는 '대직장(大奈麻) 이순(李純)이 세상을 피해 산 속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세우고 살았다'고 적혀있다

                     한편 '삼국유사 신충계관 조(信忠掛冠 條)'에는 신충(信忠)이 벗과 함께 벼슬을 사퇴하고 남악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왕을 위해 단속사를 세우고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간지주는 석탑에서 남쪽으로 110m 가량 떨어진 송림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당간지주

                     주변에는 보호책이 둘러져 있으며, 뒷쪽에는 민간인의 묘역이 있다.

                     현재 높이 310이며, 2개의 지주가 약 65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는데 사지 주변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45월에 부재들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이들중 서쪽의 당간지주는 완전하게 복둰되었으나 동쪽의 당간지주는 지주 윗부분을 칮지

                     못한채 결실되어 있었는데,  결실된 부재가 3층석탑 북편에 있는 강회백(姜淮白)의 정당매각(政堂梅閣)

                     건물 문설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 재차 복원을 하였다

 

                              지주를 받친 기단부는 현재 완전히 파괴되었는지, 매몰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지주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

                              지주의 내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바깥면에는 중앙 가장자리에 세로로 1줄의 굵은 반원형을 음각하였으며

                              측면은 외연선을 따라 세로선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꼭대기 부분은 바깥면으로 둥근선을 그리며 흘러

                              내리다가 1단의 굴곡을 이루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각 지주에는 3개씩의 간공이 관통되어 있는데, 가운데의 간공은 원형, , 아래의 간공는 네모모양이다.

                              당간지주는 외연의 윤곽대, 상부의 2단 호형 장식 등의 치석 수법, 3개의 간구를 지니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석탑과 동일한 시기인 9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당간지주 앞 계단의 가장 위 계단석으로는 석탑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사용되고 있다.




'경남.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추폭포와 용추사  (0) 2016.03.29
남명 조식선생 유적지와 대원사  (0) 2016.03.25
문익점 묘와 목화 시배지  (0) 2016.03.21
원동 매화를 보고왔다  (0) 2016.03.19
구형왕릉과 동의보감촌  (0) 201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