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류각
왼쪽에는 능파각
밀양박씨의 시조
신라 54대 경명왕 아들(장남) 밀성대군(박언침)
밀양(密陽) 박씨의 시조는 신라의 시조 왕 박혁거세(朴赫居世 BC 69-AD 4)의 30세 손이며 신라 54대 경명왕(재위 917-924) 승영(昇英)의 여덟 왕자 중 첫 번째 왕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 언침(朴彦忱)으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하여 본관을 밀성으로 밀성 박씨를 이루었으며,
후에 밀성의 지명이 밀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본관을 밀양(또는 밀성)으로 밀양(또는 밀성) 박 씨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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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嶺南樓)
영남루 편액을 보면 7세 아이가 썼다는 기록이 있다.
계묘초하한이현석칠세서(癸卯初夏澣李玄石七歲書)라는 글귀다.
‘1843년 초여름 이현석(李玄石)이 7세 때 쓰다’라는 내용이다.
우측 강좌웅부(江左雄府)
‘낙동강 좌측의 아름다운 고을’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글씨다.
죄측 교남명루(嶠南名樓)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
예전에는 문경새재 이남의 영남지방을 교남이라 불렀다.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글씨다.
이인재 밀양부사의 큰아들 이중석이 11세때(1843년) 쓴글씨다
이인재 밀양부사의 작은 아들로 이현석이며 7세(1843년)에 쓴 글씨임
강과 밀양읍성이 한데 어울러 마치 그림과 같다
영남루에 오르니 높고 넓은세상이 바라다 보인다는 의미
높은 절벽에 우뚝 솟아있는 아름다운 누각
능파는 물위를 가볍게걸어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며 또한 파도를 넘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밀양읍성
사명대사동상
영남루 동편 아동산을 오르면 임진왜란 때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남녀포로 3,000여 명을 송환하여 온
이 고장 출신의 사명당 임유정 성사의 동상이 있다.
강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밀양강과의 조화로 그림같은 풍경을 지닌 사찰 무봉사는 경내에 보물 제493호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어 그 역사에 걸맞는 사격과 운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영남루 후문에서 50m 남짓한 곳에 무봉사의 불이문격인 일주문과 금강역사가 두 문에 채색된 무량문(금강문)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이곳을 지나면 세속을 벗어나 부처님 도량인 피안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일주문은 당당한 민흘림 기둥 네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정통 건축양식으로 각 기둥에 7언절구의 주련 네개가 걸려 있고 화려한 다포계
공포가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어간 상부에는 ‘無鳳寺’ 라고 적힌 편액이 있으며 좌측 입구에 무봉사 일주문 준공비가 위치하고
법당 내부에는 보물 493호 ‘무봉사석조여래좌상’을 주존불로 양옆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좌우협시하고 있고 각 불사의 뒤쪽으로 후불탱, 관음탱, 지장탱이 걸려 있다.
이 중 후불탱은 1927년 조성되었다.
지장단 왼쪽으로 신중탱과 영단이 있는데 영단의 시왕탱은 2001년 조성되었다.
아담한 사찰에 비해 종각이 의외로 크게 자리잡았다
영남루 뒷편에는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의 생가가 있다.
박시춘 선생님은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럭키서울" "신라의 달밤"등
유명한 대중가요를 많이 작곡하셨다고 한다. ㅎ
나도 아는 곡들이다.
몇백년은 된듯한 느티나무
아랑각
아랑의 영정
만덕문 앞의 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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