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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곡성 동악산

 

동악산은 전라남도 곡성군 북쪽에 자리잡은 높이 735m의 산이다. 북쪽 아래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형제봉과 최악산으로 이어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신라 무열왕 7년(660),원효가 길상암과 도림사를 세울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을 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불린다. 산 남쪽 성류구곡에 위치한 도림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이 절의 처음 이름은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의 신덕사였으나

 현재는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도림사로 불리고 있다.

[Daum백과] 동악산 (곡성)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카라반 캠핑장도 있고

이동식 주택형 캠핑장도 있고 생각보다 넓은 휴식공간입니다

"산은 곧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 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법정스님의 말씀중에서

 

형제봉으로 오르는 곳곳에 이러한 돌탑들이 형성되어 있다

 

 

 

 

끝없는 오르막길 소나무에도 힘들어요라는 팻말이 붙어 있어 실소를 해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봄 산행은 나른한 일상의 강약을 전해주는 '삶의 악센트'다.

 갖가지 꽃이 피어나 눈이 즐겁고, 온갖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 귀가 즐겁다.

또한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쐬며 겨우내 거칠어졌던 피부가 촉촉하게 깨어나고 솔숲의

 맑은 공기를 맡으면 코가 뻥 뚫린다. 오감 만족의 산행이 가능한 시기가 바로 요즘과 같은 봄철이다.

 근교산 &그너머 봄산행 묘미중에서

 

시야는 흐리지만 줌으로 곡성 읍내도 주위 평야지도 담으며 내방식대로 쉬엄쉬엄 한발 한발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 신영복

 

돌탑 꼭대기에는 행복 축복 무슨의미일까 부처님을 선기면 그렇다는 것일까?

우리가 오를 첫 봉우리 형제봉이다 아직도 까마득 4.1km중 반이나 올랐을까?

오른쪽에 동악산도 담아본다

원래 나는 B코스 동학산 올랐다가 배넘이재로 해서 하산 예정이었는데 역코스를

선택한 집행부를 따르다가 그만 A코스 타는 일행과 합류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종주를 할 수 밖에 없다 처음 오는 곳이라서 착각 일단 오르는데 까지 올라보자

 

계단의 나무는 썩어서 날아간 것도 있고 군데군데 파여 있는데 아직 손을 쓰지 않고

있는데 모르는걸까 준비중일까?

무슨산인지 알길은 없지만 높은 산들이 줄지어 있으니 담아놓으면 언젠가는 알아지겠지

이제 셀프촬영도 많이 늘었다 효빈님께 배운 솜씨 데크위에도 올려놓고 나무위에도 올려놓고

아니면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바위에도 올려놓고 별별스런 꾀를 부리게된다

아~~

동악산 저봉우리를 언제 쯤 도달할까 그래 가기는 가질까 내체력으로

동악산의 공룡능선을 줌으로 담으며 선두대장의 무전기음성 형제봉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우리가 올리온 능선도 돌아보며 오늘하루는 동악산에 내몸을 맡낀다

북사면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잔설이 남아있다

해운님은 뚜벅뚜벅 잘도 오르신다

아 형제봉에 다 올랏나 했는데 저 앞에 또 하나 봉우리가 형제봉 아직도 400m남았습니다

 '성출봉', 또는 북봉(동악산 정상) 서봉(대장봉) 등과 구별해 '동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형제봉 정상에서는 부채바위에서 이어지는 공룡능선과 청류동계곡 길상골 동악산 정상과

 신선바위 등이 조망된다. 멀리 곡성읍과 섬진강 지리산 능선까지 모두 바라볼 수 있다.
근교산&저너머

일명 '동악산 공룡능선'이라 불리는 이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에 빗대어 명명된 곳.

규모와 높이 면에서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작지만 날카로운 암릉이 늘어서 있어 '작은 공룡능선'이라 할만하다.

순간적으로 영남알프스의 '간월공룡' '신불공룡' '천태공룡'이 떠오른다.

 악천후 때는 절대로 접근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저앞에 곡성 농공단지라는데 큰 건물은 요즘 말도 많은 금호타이어가

아닐까 상상을해본다

미세먼지로 섬진강의 물줄기는 흐미해 분간이 어렵다

동학산을 오르기전에 바라본 도림사

어찌어찌 걷다보니 앞에 동악산도 보이고 이제는 조금 안도가 된다

4시간쯤 산을 탄것 같다

남원의 고리봉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솟아오른 곡성의 동악산은 깊지 않게 느껴지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겹산이자 장산으로서의 산세를 지니고 있는 산이다. 산줄기 곳곳에 기암괴봉을 얹고 골짜기는

 빼어난 기암절벽과 암반으로 이루어져 육산과 골산의 산수미를 겸비한 곡성의 진산으로 곡성의 지리산 조망대로 손꼽힌다. 

성인이 탄생할 때마다 진동하거나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서 움직일 동(動), 풍류 악(樂)을 쓰는 동악산은

 최고봉인 성출봉(聖出峰, 일명 형제봉) 아래에 원효대사가 길상암을 짓고 원효골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열여섯 아라한들이

 그를 굽어보는 꿈을 꾸고 성출봉에 올랐더니 아라한 석상들이 솟아있어 길상암에 모시자 육시만 되면 하늘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고 전한다. 특히,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로 추앙받는 청계계곡은 곡성의 금강산이라 불릴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고함

 

돌아가면 이런 신선바위도 있다는데 그냥패스

우리가 지나온 형제봉과 대장봉도 또한 일행중 몇명이 내려온 공룡능선도 거기에 있네

뒤따라오고있는 우리 산악회 일원들

저기 뒤에 보이는 산이 최악산 일까?

드디어 정상을 찍었습니다 처음 올라본 동악산 반갑다

 

곡성의 진산이기도 한 동악산은 천년고찰 도림사(道林寺)와 청류동계곡, 형제봉 공룡능선,

청계동계곡 등의 명소를 품고 있어 당일 산행지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산이다.

 동악산은 신라 무열왕 7년(660년) 원효대사가 도림사를 창건할 때 아침저녁으로 산에서

 음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동악산 정상보다 높은, 사실상의

최고봉인 형제봉은 노고단 반야봉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부능선과 남서쪽의

 무등산 조계산 등 큰 산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어 멋진 전망대 역할도 한다.

내가 오를 때는 힘이들게 꼴찌지만 내려 올 때만은 뒤처지지 않는다

도림사를 돌아보려니 하산 약속시간이 임박해 혼자서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날이 많이 가물었는데도 계곡에는 물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여름에는 계곡에

피서인파가 몰리는이유를 알겠다 일단 물이 풍부한 걸로 파악해두자

 

어디서 떠내려 왔을까 이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도림사라는 현판은 허백련 화백이 썼다고합니다

 

 

 

사람모형나무와 연리지연리지(連理枝)'는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된 것으로

흔치 '사랑나무'로 불리기도 하는데, 시인 백거이

(白居易)의 장한가에 인용되면서부터 남녀 간의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서기 736년 총애하던 후궁 무혜비(武惠妃, 측천무후의 친정 조카)를 잃고 시름에 빠진 당 현종은

 무혜비 소생의 황자 수왕(壽王) 이모(李瑁)의아내​ 양옥환(楊玉環, 훗날의 양귀비) 즉, 며느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무치(帝王無恥, 제왕에게는 부끄러워할 일이 없다.)의

황제였지만 22세 며느리와의 사랑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현종이 여색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 하다 안록산의 난(755∼763)으로 위기에 처하자

조정대신들은 양귀비를 처형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결국 양귀비는 목매어 자살하였고

(38세)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사랑이야기는 양귀비 사후 50여년이 지난 서기 806년 시인

백거이(백난천)에 의해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태어나게 된다.

당 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에 누워 별을 쳐다보면서 밀어를 나누는 장면을 백거이가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칠월칠일 장생전(長生殿)에서 깊은 밤 두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다시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다시

땅에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세. 하늘과 땅은 차라리 끝이 있을지라도

 님을 사모하는 이 마음은 끝이 없으리..."

도림사는 보제루, 오도문을 지나 앞 마당에 들어서면 예불공간인 보광전, 응진전, 명부전과 칠성각, 궁현당, 정현당,

설선당, 범종각 등 부속건물이있다. 특히 보광전에 모셔진 '괘불탱(보물 제1341호)'

'목조아미타불삼존불상(유형문화재 제271호)'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눈여겨

볼 것은 절 앞을 흐르는 계곡의 아름다움이다. 기암괴석이 많고, 넓고 평평한 반석 위로 맑은 물줄기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흐른다. '수석의 풍경이삼남(三南)에서 으뜸'이라 할 정도로 절경이다.

넓은 암반에는 조선시대 이래 근세에까지 여러 시인묵객들의 다녀간 흔적이 새겨져 있다.

 

 

 

 

종무소 궁현당

계단을 오르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정말 미안해서 신발을 벗고 싶은 심정이다

'보광전(普光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이 있다.

 보광전 목조삼존불은 문화재자료 제271호로 지정되어 있고, 삼존불 중 본존불인 아미여래좌상은

 조선시대 17세기에 조성한 목조불로 1664년 봉안되었다.

 

칠성각의 오른쪽 앞으로는 '응진당(應眞堂)'이 자리잡고 있는데, 보통 응진전(應眞殿)'이라

불리우며 부처의 제자 16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전(羅漢殿)'이라 부를 때는 500나한 즉, 부처의 500 제자를 모시고 있다. '나한(羅漢)'

아라한(阿羅漢, Arahan)'의 약칭으로​성자(聖者)를 의미한다. '응진(應眞)'은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서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보광전 왼쪽으로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는 '명부전(冥府殿)'이 위치하고 있는데,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유명계의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범종의 한쪽에는 다음과 같은 법문이 새겨져 있다.

원비종성편법계(願比鐘聲遍法界)   이 종소리 온 법계에 두루 미치어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  철갑에 굳게 닫힌 어둠도 모두 밝힐지어다

삼도이고파도산(三途離苦破刀山)   삼악도(三惡道)의 고통도 떠나고 칼산 지옥도 부수고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정각(正覺)을 이루어 성불할지어다.

 

요사채 정와당

요사채 반야실

 

 

오래된 사찰이지만 부도전은 초라하다

아직 후미는 오지않고 있다 대충 땀을닦고 옷을 갈아 입는다

 

동악산 남쪽 골짜기에서 시작된 도림계곡 계곡 물이 연중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송, 계곡, 폭포들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커다란 반석들이 있어 옛부터 풍류객들의

 발길이 잦았으며, 한여름 반석 위로 흐르는 계곡 물에 몸을 담그면 참 좋겠다

장장 6시간 하산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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