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스콜라를 뒤로하고 이제 바로셀로나로 왔다 몬주익 경기장과 구엘공원 순으로
돌아볼 것이다
아직 서부 쪽으로는 안가봤지만 동부지방은 계속산맥이 이어지며 지형도 보편적으로
높은 곳에 도시가 자리하고 땅도 척박한 것 같다
서양 소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와 약간 다릅니다
바로셀로나
인구는 31만 1475 명(2000)이다. 카라카스에서 동쪽으로 333km 떨어진 곳에 있다. 카리브 해안에서
지금까지 오면서 주위에는 올리브와 아몬드 나무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여기서부터는
포도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피라 바로셀로나 타워 바로셀로나의 상징탑이라고 한다
몬주익 경기장으로 가는 주위풍경들
몬주익은 `유대인의 산`이라는 뜻으로 한 때 유대인들이 모여서 살았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랍니다
이제 몬주익 경기장에 접어드나봅니다
한국 올림픽 사상 최고의 올림픽으로 손꼽을 만하다. 황영조가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하였으며, 금메달 12개로 세계 톱10 스포츠 강국으로 확실하게 올라선 대회이다. 여자 핸드볼은
사상 최초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였으며, 양궁 김수녕은 서울 올림픽 2관왕에 이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추가하여 세계 최고의 궁사에 올랐다. 레슬링과 배드민턴, 사격, 역도 등 여러 종목에서
골고루 메달을 수확한 것도 큰 발전이었다. 출처 다음백과
바로셀로나 까딸루냐 미술관
정면에서본 까딸루냐 미술관과 분수대
산 호르디 스포츠관
올림픽 상징탑
올림픽 성화대
주경기장
황영조 공원
몬주익의 황영조의 흔적들
1992년 8월,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25회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던 순간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래 56년만에 맛본 그야말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카탈루냐 미술관 앞 분수거리를 달려 힘겹게 몬주익 언덕으로 들어선 황영조 선수가 이제까지 줄곧
경쟁하며 달리던 일본선수를 따돌리고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 순간 이미 우승은 예견되었지만
수만 명의 관중들이 가득 찬 메인 스타디움에 들어와 세계를 향해 승리의 키스를 보내던
그 순간 세계는 환호했다.
구엘공원에 갈때까지 비가내린다
시냐를 가로질러 구엘공원에 왔다
우리나라의 노린재 나무와 비슷
구엘공원 안에 있는가우디가 생전 아버지와 살던 집이다
지금은 가우디 박물관으로 많은이들의 발길이 닿는곳이기도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르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 주택 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다 구엘가족들이 시에 기부해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마치 미로속을 헤매이게 하는구엘공원
독특한 기둥을 돌아가며 잠시 동심의 세계로
가우디의 생애(1852~1926)
1852년 6월, 스페인 남부 카탈루냐의 레우스에서 태어난 가우디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는 항상 자연을 벗 삼아 지냈다고 하는데, 자연을 테마로 한 아름다운 그의 건축물은 아마도 이 시절의 영향인 듯하다. 17세부터 건축을 공부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건축학교를 졸업한 뒤 이곳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 어렸을 때무터 류마티즘 때문에 거동이 불편했던 가우디는 그의 학창시절 동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그를 두고 가우디의 스승은 “나는 정신병자 아니면 천재를 발굴한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선천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수시로 들판과 숲으로 뛰어나갔던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론에 영향을 받아 현대의 건축가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파격적인 건물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
화려하고 신비한 모자이크 장식의 타일, 땅을 고르는 것도 반대한 만큼
자연스럽게 터진 길과 인공 석굴 등 어느 것 하나 가우디답지 않은 것이 없다.
마치 은밀한 언덕 위에 만들어진 초현실 영화의 세트장처럼 멋지고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우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해 질 녘에 더 빛을 발한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미를 추구하는 가우디의 철학은 이 공원에도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길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자연 그대로를 설계에 담기 위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었으며, 마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신기하게
이어져 있다. 출처 다음백과
원래는 무료였는데 2013년부터 유료화 했다고한다
여기서부터 유료다
구엘공원의 꽃인 시장의 지붕 타일벤치다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의 벤치는
이곳을 찾는 많은이들을 동화속으로 이끌고 가는듯 하다
처마에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사지상이라고한다
놀라운 것은 이 광장을 거대한 돌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소 그리스, 로마 신전에 관심을 가졌던 구엘의 요청으로 가우디는
신전 모양의 건물을 지었는데 86개의 견고한 도리아식 기둥들이 광장을 받치는
디자인으로 설계한 것이다. 천장에도 깨진 타일 조각과 버려진
술병 등을 재활용하여 장식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한 사장건물
시장건물 찬정에는 모자이크 타일로 정교하게 꾸며 놓았다
구엘박물관과 경비실건물
이구아나라해야 할까 도마뱀이라 했야할까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아니 스페인을 먹여 살린다고 하면 지나칠까? 근대 건축사에 가우디만
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었던가? 성가족 대성당에서 길거리 보도블록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산호초, 동물 뼈, 나무뿌리, 솔방울, 옥수수, 조롱박, 벌집, 거북
등, 조개껍질, 해초 등등에서 착상한 그의 건축설계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천재성을 드러내
보인다.
도마뱀 분수
구엘공원의 마스코트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수의 수호신 퓨톤을 지나칠 수 없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 같은 퓨톤분수 앞에는
사진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기자기 동화속 집같이 생긴 이곳은 관리실과 경비실과 경비원의 침실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가우디 박물관
군자란은 우리와 똑 같다
까사밀라 Casa Mila"
그라시아 거리에 접한이 건축물은 가우디 가 1,905년경에 설게한 집이라는 데,
직선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곳선을 이용하여 설계한 고품격 맨션이다.
몬주익 채석장에서 가져온 석회암을 사용하였고 내부는 유선형으로 설게되었으며
굴뚝과 환기구가 환상적으로 배치되었다고
까사밀라(Casa Mila) 공동주택
까사밀라는 가우디의 1906년부터 10년간 건축했는데, 마지막 민간 건축물이다.
이건축물은 바뜨요저택을 완성한 직후 1905년 가우디에게 주워진 행운이다.
이계획은 1.000평방미터가 넘는 공간이라는 점에 굉장히 관심을 끌었다.
가우디가 건설한 민간건축물중에 가장중요한 공사이기도 했다.
이계획에사 가우디는 나름대로 해석한 디자인적방법에 의해.
지하에 창고를 두었고.지상5층의 건물에 2개의 오픈 스페이스를 두었다.
이주위에서는 빛이 들어오는 방들을 배치했다.
또한 지하에 주차장을 만든것은 세게최초가 아닐가
이 건축을 주문한 사람은 페레 밀라(Pere Milà)라는 사업가였는데, 자신의 가족이 거주할 공간,
세를 줄 공간 등을 만들기를 원했다. 당시 이곳은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와 그라시아 지구를
연결해 주는 곳이면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건축주의 이름 때문에 이 집을
카사 밀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건물의 외부 모습이 커다란 바위산에서 돌을 캐내는 채석장
같다고 하여 ‘라 페드레라’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이곳 역시 카사 바트요처럼 외벽이
구불구불하며 환기를 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탑들이 옥상에 솟아 있다.
관광객에게 개방된 옥상에 올라가면 병사들의 얼굴 같은 모습을 한 굴뚝들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바르셀로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훗날 가우디는 이 병사
얼굴의 모티프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도 이용했다.
까사밀라 옥상의 조형물
전면발코니..용의 눈으로 이루어졌으며.용의 다리와 용의 비늘이기도 하다.
카사바트요
카사 바트요는 바르셀로나의 사업가였던 바트요가 의뢰해 설계한 것으로 1905년부터 약 3년간 지어졌다.
카사 바트요의 외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골 모양의 테라스와 뼈를 형상화한 기둥이다.
그래서 ‘인체의 집’이라는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Casa dels ossos)라고도 한다
현재는 글로벌 캔디 브랜드 추파춥스 회사의 소유이며, 가우디 탄생 150년 기념으로
2002년부터 바르셀로나 시와 함께 일반인에게 오픈하기 시작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시계방향으로 카사바트요 외벽.가사바트요 용의비늘형상의 지붕
옥상의 모자이크.카사바트요내부
레이알 광장의 가로등도 가우디의 작품이다
카탈루냐광장 조형물
구엘공원에서 사그라다 성당으로 가면서
주상복합 건물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에(성 가족성당)가우디 성당에 가면서 바라본 바로셀로나 시내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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