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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삼천포 노산공원 용궁 수산시장

며칠전 티비에서 사천 바다 케블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을 봤기에 멋진 삼천포 앞바다를

보기위해 주말에 떠나는여행 케블카탑승장에가니 강풍 때문에 12시까지 운행이 않된다기에

일단 노산공원부터 둘러보기로 한다(2/16)

노산공원에 오르면서 바라보이는 삼천포 수산시장 .지금은 용궁수산시장으로 개명을 했다



오르면서 빨간 동백도 담아보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삼천포대교도 가까이 보인다

노산공원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 같은 정자


삼천포 화력발전소



남해쪽 풍경







무속인 부부인듯 용왕님께 소원을 비는 궂을하고 있는 것일까?






1946년 박재삼은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제때 못 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의 사환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 때 마침 삼천포여중의 교사로 있던 시조 시인 김상옥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그를 시의 세계로 이끄는 운명적 계기가 된다.

박재삼은 이듬해 삼천포중학교 병설 야간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2년 뒤 주간 중학교로 옮긴 그는 제1회 영남 예술제(개천 예술제)

 ‘한글시 백일장’에서 시조 「촉석루」로 차상을 받는다. 이 때부터 그는 같은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이형기와 교유하게 된다.

 4년제 중학 과정을 마치고 1951년 삼천포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한 그는 1953년 같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같은 해 그의 시조 「강(江)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으로 『문예』 11월호에 발표된다. 박재삼은 곧 김상옥이 다리를 놓아줘

 잡지 창간을 준비하고 있던 ‘현대문학사’에 취직한다. 그는 현대문학사에 다니게 되면서 시를 쓰는 일에 더욱 열의를 쏟는다.

그의 시는 날로 기량과 빛을 더해 1955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섭리」 · 「정적」 등이 실린다.

이로써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 박재삼은 1956년 「춘향이 마음」을 발표하고, 1957년 ‘현대 문학 신인상’을 받기에 이른다.

한국문학 탐험에




그의 시는 당시 서정주와 유치환이 서로 반해 추천을 다툴 만큼 출중했다. 시 작품의 탁월함은 무엇보다도 가락에서 두드러졌다.

 우리말을 의미·개념에만 맞추어 쓰는 것이 아니라 운율에 맞추어 리드미컬하게 구사하는, 리듬의 중요성을 태생적으로

 알아차린 시인이었다.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실은 시세계를 구축했으며,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 '슬픔의 연금술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때로 그의 시들은 '퇴영적인 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절창 〈울음이 타는 가을강〉 등에서 드러나듯 '생활과 직결된 눈물을 재료로 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다음백과









풍차의 언덕을 네비로 입력하니 여기로 대려다 주는데 이거는 관광지가 아니고 차집이었다

가끔 이렇게 네비에 의존하면 낭패를 볼때가 있다

아직 케블카 운행시간은 12시라 했으니 아직 이르고 일단 용궁수산시장에가서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한다

삼천포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과 중소기업청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을 통한'용궁'을 테마로 한 통합브랜드와

 체험결합형 시장,다채로운 문화공연행사 운영 등으로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을 대한민국 대표 수산시장으로

변화시켜 남해권 대표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은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50여 년의 역사가 쌓인 어시장으로,
7,333㎡ 부지에 건축면적 4,282㎡ 규모 268개의 상인매장과 주차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점포들이 230여 개나 되는 대형 회센터이다

주차를 못해서 이리저리 돌다가 겨우 유료주차장에 주차를하고 회를 사가지고 유진 식당으로 간다

들어가보니 몇 전에도 들렸던 곳이다

오늘 우리가 갔던 유진식당 매운탕 맛도 괜찮았다

광어와 도미를 많이 먹는 편인데 오늘은 도다리와 게르치 그리고 가리비 조개를 샀다






이런 풍경들을 보려고 오늘 여기에 왔는데 강풍 때문에 12시 이후에도 운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제1의 목표가 무너지는 순간이지만 어쩌랴 날자를 잘 못택한게 잘못이지 이제 남해로 넘어가보자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죽방렴(竹防簾)은 고정식 어업방식 중 하나다. 물목(물이 드나드는 어귀)이나 바닷가에는 고정식 그물이라 할 수 있는

 죽방렴이나 독살을 설치했다. 독살은 길게 돌을 쌓아 밀물 때 잠겼던 돌 그물 안에 갇힌 고기를 물이 빠진 후에 잡는

방식이다. 죽방렴은 물목에 V자형으로 참나무 말목을 박고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 세워 물이 빠진 후 갇힌 고기를 잡는

 방식을 말한다. 죽방렴은 간만의 차가 큰 해역에서 예전부터 사용되었는데 만에 따라 그 규모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남해군은 한반도 남쪽 연안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섬은 남해도, 그다음으로는 창선도인데

두 섬 사이의 매우 좁은 물목의 이 바다가 바로 지족해협이다. 바다가 좁아서 간만의 차이에 의해 물살이 매우 빠르다.

 지족해협에는 현재 남해도와 창선도를 연결하는 창선대교가 놓여 있는데 이곳에서 매우 특별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창선대교의 중간쯤에서 동쪽 해협을 바라보면 여러 개의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는 바다의 풍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우 특이하고 신비한 풍경으로 이 죽방렴들은 마치 거대한 V자형의 꺽쇠를 바다에 박아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죽방렴 전경

창선도와 남해도 사이, 빠른 물살이 흐르고 있는 지족해협에 설치된 죽방렴의 전경이다.

죽방렴은 우리 선조들이 고안해낸 전통적인 어업문화 경관이다. ‘대나무 어사리(어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방전’으로도 불렸다.

1469년(예종 1)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의 남해현에 관한 내용에는 오래된 전통어업으로 지족해협에서

 행해진 죽방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죽방렴이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원시적인 어업방식임을 알 수 있다.


죽방렴 멸치는 고가여서 한포대에 1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미조항전경

남해군 본섬인 남해도 최남단의 미조항 앞 바다이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조도, 호도 등 2개의 유인도와 16개의 무인도가

 떠 있다. 삼동면 물건리에서부터 미조항까지의 해안도로(일명 물미도로)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철 따라

색다른 느낌을 주는 바다와 섬, 기암괴석 등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을 뿐만 아니라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19번 국도의 종점에 있는 미조항은 남해의 어업전진기지로, 우뚝 솟은 금산과 푸른 바다의 어울러짐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항이다.



미조항 상록수림

남해섬의 19번 국도의 끝자락, 미조면 미조마을에 들어서서 미조항으로 가기 전 오른쪽 언덕에는 울창한 상록수림이 있습니다.
낮에도 숲속에서는 햇빛을 보기 어렵다는 미조 상록수림이 조성된 동기는 마을의 해풍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조성된 어부림입니다.
낙엽수 밑으로 후박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볼레나무, 메밀 잣밤나무가 자라고 있고 바닥에는 자금우가 많다.

낙엽 활엽수로는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소사나무, 돌백나무, 쉬나무, 이팝나무, 쇠물푸레, 때죽굴피나무, 팥배나무, 참느릅과

 졸참나무가 자라고 사이사이에 조룩싸리, 생강나무, 찔레나무, 보리수나무, 예덕나무, 천선과 작살나무, 쥐똥나무, 붉나무,

검양 옻나무, 윤노리나무, 화살나무, 누리장나무, 초피나무 등이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댕댕이덩굴, 칡, 개머루 등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서로 엉키어 있습니다.
초목 식물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맥문아재비와 도깨비고비입니다.
식물학자들의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지는 식물 백과사전 같은 곳입니다.
수림면적 - 1,732㎡(524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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