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랴 비지니스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에 안탈랴 해변 유람선 투어가 있는데 우리조는
전에 오셨던 분의 말씀이 별로라해서 생략하고 한시간동안 해안을 구경하며 아침 해맞이를 한다
일출을 배경으로 인증도하고
13시26분은 우리나라와 6시간 차이가 나는데 같이 가신분이
터키 시간으로 변환을 안해서 ....
요트정박장을 한바퀴 돌아보며 시간 보내기를 한다
아침일찍이라서 인지 바닥에는 꽃게도 먹이사냥을 하는지 엉금엉금
유람선투어팀과 합류 오림포스로 향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니 케이블카가 도착한다. 탑승인원은 80명, 너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차체가
크다고 보면 된다. 케이블의 길이는 4.3㎞로 스위스 삭도회사에서 2007년에 건설했는데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용한단다.
이번에 여행한 터키 쪽 올림포스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2,365m 까지 올라가 광대한 지중해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비록 이 곳이 신화에 나오는 신의 산은 아닐지라도 케이블카(4,300m를 올라가는 난공사)를 타고 올라다가면
마치 신이 된 느낌도 받을 수 있으며 지중해의 광활한 환경과, 대자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전망대는 해발 2,365m 높이에 있는 케이블카 스테이션에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올림포스산은 (해발2,917m) 그리스에 있을 텐데 터키에 올림푸스?
요런 궁금증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도 그리스의 영향과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식민도시 였기에~~
타우르스산맥은 동서로 800km 뻗은 산맥한쪽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이 발원하고
또 한쪽엔 문명이 있기전부터 살아온 신들의 거처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 타우르스 산맥 중 이곳 안탈리아에 있는 산 또한
신성시되고 아름다운 올림푸스 산이라고
옥상에는 이정표가 하나 세워져 있다. 모두 아홉 개 방향을 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자리를 서울이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다. 터키에서 우리나라는 형제국가라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중국과 일본을 제키고
우리나라를 치켜 주는 터키가 한층 더 좋아지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지중해(地中海)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땅 가운데 있는 바다'라는 단어 그대로 지중해는 남쪽으로
아프리카 대륙 북쪽으로 유럽 대륙 서쪽으로 아시아 대륙과 맞붙어 있는 실로 대륙 한 가운데에서
마치 호수처럼 존재하는 바다이다. 예로부터 이집트문명과 헬레니즘 문명 등 대부분의 문명이
지중해 연안에서 발전된 이유이다. 특히, 2천 년 전의 로마시대 문명은 이 곳 지중해를
마치 자기 집 앞마당처럼 사용했다.
저 해안은 유럽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피서지 가운데 하나이다. 그 많은 해안 중에 하필이면
이곳이냐며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아름다운 경관이다.
일 년에 아홉 달이나 수영이 가능한 기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반대편에는 흡사 백년설이라도 쌓여 있는 것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할 정도로
헐벗은 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신(神)들의 놀이터’라고 하는가보다.
얼음집이라 해야하나 눈집이라 해야하나 들어가 인증도하고
터키는 어느곳에 가나 국기는 기본
올림포스산은 토로스산맥에서 솟아오른 하나의 봉우리이다. 때문에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진 토로스산맥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한다.
'리키아 올림포스'(2,365m, 다른 이름은 Tahtalı Dağı)인데 지하의 가스 때문에 가끔 지표면의 틈새로 불이
솟아오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터키 올림포스산의 비밀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바위틈에서 꺼지지 않고
있는 이 불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자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살았다.
불꽃의 화신인 헤파이스토스는 태어나자마자 불꽃을 휘날리고 빛을 내뿜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형상에 혐오감을
느낀 헤라가 그를 추방해버렸는데, 이때 그가 내려온 곳이 바로 올림포스의 산자락에 있는 ‘야나르타시
(Yanartas, 불타는 돌이라는 뜻)’라는 것이다. 고대 국가에서는 불을 다루는 샤먼을 최고로 여겼다.
그러니 올림포스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 바위산 야나르타시에 헤파이스토스가 살았다는 신화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올림포스라는 지명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올림포스가 단순히 높은 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일 뿐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지중해 주변 각지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이 높은 산에다 올림포스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면서 말이다.출처:가을 하늘님 글에서
어느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치킨 캡밥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파묵카레로 이동을 한다
파묵깔레는 '목화성'이라는 뜻으로 마치 목화 송이로 덮인 성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파묵깔레는 이즈미르에서 동남쪽으로 230여 km떨어진 데니즐리라는 도시에서
다시 북쪽으로 20여km 들어간 곳에 있는 도시이다.
파묵칼레는 성서 골로새서에서 언급되는 고대 도시 히에라 폴리스이다.
이곳은 맨 위에서 흐르는 온천물이 경사진 아래로 내려오면서 크고 작은 층을 만드는데 ,
다량의 석회질을 담고 있는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석회만 침전되어 목화 같은 하얀색의 장관을 연출한다.
하얀 바위가 계단식으로 이어지고 그 바위 위로 흘러 내려가는 물이 오묘한 하늘빛을 띤다.
온천수의 미네랄 성분으로 인해 바닥 표면이 미끄럽고 하얗게 침전된 물질들로 인해 부드럽다.
이곳의 온천물은 35도의 탄산수로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어
로마황제와 귀족들이 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파묵깔레는 자연이 만들어 낸 신기한 경치,
온천장과 함께 고대 도시 유적까지 가지고 있어서 관광객들에겐 기쁨이 세배가 되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기원전 190년경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 유적지이다. 이 도시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가장 번성했으며 주로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 도시로 번영했다. 12세기 셀주크 튀르크 시대에 도시 이름이 히에라폴리스에서
파묵칼레로 바뀌었다.
1354년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사라졌지만,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내부에는 신전이나 원형 극장, 목욕탕 등의 유적을 볼 수 있고,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 수리와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천천히 다 둘러보기 위해선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폴론 신전(Temple of Apollo)
아폴론 신전은 헬레니즘 시대인 2세기에 건축되었다. 지금은 기단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아폴론 신전이 이 도시 자체라고
할 정도로 중요했다. 히에라폴리스의 주신이자 태양신인 아폴론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신전에는 아폴로와 쌍둥이
남매인 아르테미스 여신을 비롯해 지진을 관장하는 포세이돈 등 중요한 신들이 모셔졌다.
신전은 플루토니온(Plutonium)이라고 불리던 유독가스를 분출하는 구멍 위에 세워졌다. 당시 지리학자인 스트라본이 그의
책에서 새를 유독가스에 던져 넣으면 곧 떨어져 죽었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아폴론 신전의 신관은 이 구멍에 몇 분간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였다. 기체를 마시고 난 후 최면 상태에서 아폴론의 말을 전하며 신탁을 행한 것이다. 이를 보며 사람들은 동굴을
지하 세계로 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가스는 일산화가스로 밝혀졌다.
그시정에 만들어 진것인지 후대에 만들어 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노천온천
가는길에 이렇게 대리석으로 길을 조성해놨다
온천 지대의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한 대표적인 도시 유적은 로마 목욕탕이다.
열탕, 온탕, 냉탕, 탈의실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로마식 목욕탕이다.
운동을 위한 부속건물과 황제가 연회를 개최하던 대형 홀이 아직도 남아 있어 풍요로 왔던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히에라폴리스의 모든 유물을 한 자리에 모은 현장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파묵칼레는 지구상 유일무이한 풍경을 지닌 석회층 온천 지대다. 소금산, 빙산, 설산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와 로마 황제들이 다녀갔다고 전해질 만큼 유구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한다.
마을 뒤편에 자리한 넓은
석회층이 파묵칼레를 대표하는 볼거리 일직선으로 오며 히에라폴리스 볼루를 살펴보고 여기서 인증을하고
석회온천지구로 내려간다
그냥 찍어도 그림이다. 신기하다. 파묵칼레의 석회봉은 석회를 함유한 물이 솟아 넘쳐 암석 표면으로
흐르게 되면서 오랜 세월동안 침전되고 응고되어 암석화 된 것이다.
저위에서 일행이 찍어준사진
마을 뒤편의 언덕을 뒤덮고 있는 새하얀 석회층으로 파묵칼레를 상징한다. 석회 성분을 품은 33℃ ~ 36℃ 정도의
물이 지하에서 솟아나와 언덕을 흐르며 석회가 남고 그 위에 계속해서 침전이 진행되어 대규모의 석회 언덕이 형성 되었다.
파묵칼레 마을을 지나 석회층의 남쪽 끝부터오르기 시작하는데 매표소를 지나면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수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보이는 흰색 석회층은 눈 같기도 하고 목화 솜덩어리 같기도 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곳의 온천수는 밖으로 흘러 파묵칼레의 기묘한 옥외 석회암 온천장을 형성하였다.
섭씨 35도 정도의 온천수는 특히 피부병에 좋아, 얼굴 못생긴 처녀가 공주가 되는 여러 종류의
토착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피부가 거칠고, 무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필수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지금도 결혼을 앞둔 처녀는 자신을 정화하고 새로운 남자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파묵칼레의
온천수에 몸을담구는 현대적 풍속도가 남아 있다.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파묵칼레가 빚어 놓은 하얗고 파란 호수들을 바라보며 화려했던 옛 시대를
상상해 본다.
1840m 높이의 리코스 산 중턱 단애 위에 위치해 있는데 단애의 높이가 무려 376m에 이르러 산 아래쪽 멀리서 보면
석회가 굳은 모습이 마치 하얀 목화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영어의 코튼 캐슬(Cotton Castle)로 번역되는 터키어
파묵칼레(PAMUKKALE)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한다.
파묵칼레 최고의 절경은 림스톤(rimstone)!
림스톤이란 석회 동굴의 2차 생성물인데, 석회암 동굴벽면에 물이 흐르면서 논두렁과 같은 모양으로
연속한 몇 개의 층이 나타나게 된 곳을 일컫는다.
파묵칼레는 바로 이러한 림스톤이 동굴 안이 아닌 동굴 밖에 돌출된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대자연의 비경 중 하나이다.파묵칼레 림스톤이 특이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온천수!
섭씨 36도의 온천수가 자연적으로 온천탕을 형성하였고, 그 온천의 효과도 뛰어나서 로마 황제도
이곳으로 온천욕을 하러 왔다고 한다.
터키인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사진부탁하니 혼쾌히 응해준다
같이 찍자고해도 스스럼 없이 응해준다
석양에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일정 때문에 기다릴 수도 없고
노천온천을보고 다시 히에라 폴리스로 가는중 레스토랑 연못에 수영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있어 담아봤다 연못에는 파손된 유적들이 깔려있다
성 필립보 순교 기념 교회(St. Philippe Martyrion)
성 필립보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원형 극장의 건너편 산중턱에 지어진 교회이다. 필립보는 그리스도교의 12사도 중
한 사람으로, 서기 80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곳에서 자신의 딸과 포교를 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5세기 무렵 그의 묘 위에 순교를 기념하는 교회가 지어졌다.
중앙부는 2개의 십자가를 어긋나게 겹친 8각형 건물을 중심으로, 9개의 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필립보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다가 2011년 7월 말 고고학팀이 교회 건물 잔해에서 필립보의 무덤을 찾았다. 무덤 내부의
구조와 글 등을 통해 사도 필립보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원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곳에서
40m가량 떨어져 있다고 한다.
여러형태의 무덤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터키에 있는 공동 묘지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무덤의 수가 대략 1,200기인데, 당시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환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오면서 그만큼 사망자의 수도 늘었다고 한다. 무덤은 시대에 따라 아치, 2층 건물, 원형 분묘 등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페르가몬 왕국이 세운 고대 도시의 유적. 기원전 130년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로 불렀다. 완만한 경사의 산자락 중턱 평원에 아폴론 신전과 주거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군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1988년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묶어
세계복합유산에 등재했다
원형극장의 출입문
원형 극장(Theatre)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건설된 원형 극장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관객석은 언덕의 경사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이 멋지다. 원형 극장에는 대리석 기둥으로 파사드를 만든 귀빈석이 남아 있는데,
각 기둥에는 조각상들이 있었다. 조각상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지진으로 파손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유물들
양귀비 꽃이 곱기도하다
그시절 7~15만이 살고 있었다는 히엘라폴리스 볼루(터키어로 마을이라는 뜻)
이렇게해서 파묵카레에서의 일정을 모두마친다
며칠 여행을 하고 오겠습니다 주말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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