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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터키 쉬린제 마을과 에페소스


오전부터 가죽제품 매장에서 우리일행과 훼숀쇼로 시작 매장을 둘러보는데 제품이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은데

가격은 엄청 비싸다  가격을 한번 물어봤을 뿐인데 끈질기게 따라붙어 곤욕을 치뤘다

다음에 여행 가시는 분들 절대로 이런 곳에서는 물건을 사지 마시라고 권합니다 바가지 씁니다

특히 가이드가 대리고 가는 집

매장에서 1시간여 시간을 보내고 쉬린제 마을로 이동을한다

정말 꾸불꾸불 좁은길을 올라가는데 주위에는 온통 올리브나무고 차한대 비키기도

어려운데 기사들은 잘 도 달린다

쉬린제마을은 터키 이즈미르(Izmir) 주(州) 셀추크(Selçuk)시에서 동쪽으로 8km 거리에 있는 그리스인

마을인데 에페소스(Ephesos)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이 15세기 무렵에 이주해와 형성한 마을이라고 한다.

터키는 그리스와 전쟁을 하면서 서로 추방정책과 주민교환정책을 하였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계지만

그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본래 지명은 그리스어로 ‘못생긴’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체르킨제(Çirkince)였으나 1926년에 이즈미르

주정부에서 터키어로 ‘즐거움’을 의미하는 현재의 지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 주민은 약 600명이며,

 대부분이 그리스계이고 셀추크의 '와인마을'로 알려져 있으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마을의 모든 건물이 흰 회벽에 붉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리스풍이라고 한다. 특산물로는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올리브 제품, 포도주, 포도, 사과,

복숭아를 이용한 과실주, 수공예 레이스 등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 판다고 한다. 


각종 포도주 시음장 조금씩이지만 여러종류의 술을 계속주는데 술 못 마시는 분들은 취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잠시 시음하려 들렸던 레스토랑

쉬린제 마을의 이모저모 시간이 촉박해 휘리릭 에페소로 향한다

차창으로본 올리브나무를 보면서 에페소로 달려간다

 바리우스 욕장(Varius Baths)

1926년 발굴해 복원한 로마시대의 욕장. 지금은 그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탈의실, 냉탕, 온탕,

화장실 등를 갖춘 전형적인 목욕탕이었다고 다른 로마시대 욕장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통해 가열하는 방식이었다.


에페소의 역사

고대도시 에페소는 현재 이즈마라주의 셀축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전 6000년경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래의 연구조사와 발굴작업을 통하여 에페소와 현재 성이있는 마이슬록 언덕 주변의 고분지역과 청동기시대의 하데이트

거주지였음이 밝혀졌으며 하데이트 시대에 이도시는 아피시스로 불렀다


B.C1500년경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고대항구도시 에페소에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B.C560년경 에페소의 중심지는

아르메스 신전 주위로 옮겨졌다 현재의 위치 에페소는 B.C300년경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장군인 리시마코스에의해 최초로

 건립되었다

헬레니즘시대와 로마시대에 최대의 황금기를 누린 에페소는 소아시아주의 수도이자 최대의 항구도시로서 당시 20만명이

거주하였다 비잔틴시대에 에페소의 중심지는 최초의 위치인 아야슬록언덕으로 다시한번 옮겨졌다

1,400명이 수용 가능한 야외 원형극장 공회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사도바울과 사도 요한이 예수님 말씀을 전했으며

후일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씌여진 편지가 에페소에 남게됨


오데이온

오데이온 2세기에 세워진 오데온은 에페소 대극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지만,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로

반원형이고 23개의 단이 있다. 도시의 행정관들인 상원의원들의 집회 장소이자 콘서트나 강연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소극장이다.



오데온 소극장
2세기에 건설된 지붕까지 있었던 실내음악당으로 오디오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단다

좌석 뒷쪽으로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보인다

원형극장을 지나서 다른 신전으로 연결되는 신전문 

시 공회당(프리타네이온 신전:Prytaneion):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봉헌된 시 공회당이다. 

에페소는 정치적으로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독자적인 행정관이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통치기관으로서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와 기타 민간 기구들이 있는 자치도시로서의 활발함. 위와 아래

 

소형극장 뒷벽은 모두 돌로 석축을 쌓았다

멤비우스 기념비(The Memmius Monument) 미트리다테스6세가 로마인 8만명을 무차별학살후 슐라가

 전쟁에서 승리후 로마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슐라의 공정을 칭송하는 기념비


엠마우스 기념비


도미티안신전(Donitian Tenple)-로마제국 때 폭군이었다는 도미티안 황제에게 바쳤다는 신전


최초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 병원이 있었던 자리의 병원표시 문양 .아스클레피온 신전: 에베소의 병원이

있었던 자리 .의학의 상징으로 뱀들이 서로 꼬아져 있는지팡이를 들고 있다.

헤라클레스 문 크레티아 거리에 있고, 평민과 귀족의 경계가 되는 문이다


도미티안신전 황제가된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신이라 부르게하고 신전을 세움 기독교를 핍박하고

황세숭배를 반대하던 사도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시키기도함




많은 문자가 새겨저있는 유물들이 건물안과 밖에 어마어마하게 많이 쌓여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재위 BC 27∼AD 14)의 치세에 멤미우스(Memmius)에 의해 세워진 멤비우스 기념비와 열주 기둥


 형체가 불분명한 돌무더기 사이에서 발견한  승리의 여신 니케를 새겨놓은 부조

왼손에 월계관을 들고 있는 모습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인 나이키의 로고는 이 니케여신의 날렵한 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쿠레테스 거리(Curetes Street)

헤라클레스 문에서 셀수스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대리석 거리. 쿠레티란 시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던 사제들로 매년

에페소스에서는 성스로운 불을 지키는 사제들의 행렬이 있었다. 당시 길 양쪽으로 늘어선 열주들은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기둥 사이에는 에페소스 주요 인물들의 석상들이 기둥 뒤쪽으로는 상점과 신전등이 세워져 있었다.





에페소 메인 거리


트라얀 분수(Trajan Fountain): 트라얀 황제 신전으로 황제에게 바쳐진 샘으로 중앙 받침대 위 12m 높이의

 황제 동상 발목에서 물이 흘러 나와 귀족계층 가정과 목욕탕 공급 중앙의 일부만 남은 오른발쪽의

동그란것은 지구을 의미 한다함



귀족들의 상점 명품관이 있는 명품거리 주랑의 바닥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바닥 장식 부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바리우스 스콜라스티키아 목욕탕(Baths of Skolastikia)
4세기에 부유한 여성 자선가인 스콜라스티키아의 기부한 것을 3층 건물로 확장. 직접 불을 때지 않고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켜 난방  탈의실, 냉탕, 온탕, 증기탕까지 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자들이살던 마을

여인 메티스와 메두사의 부조가 새겨진 하드리아누스 황제 신전.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전성기 시절의 5현제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우스티우스- 중의 하나로 훌륭한 통치자였다한다

아드리아누스 신전(시리아풍으로 조각된 신들의 부조 정면의 현관 장식은 화려하고 아치의 중앙에는 행운의 여신

 니케 부조  문 안쪽에는 메두사 가 조각되어있다. 그 주위로 신들과 아마존 동물 조각된 셈세하고 아름다운 신전이다)

공중화장실 용변을 보면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이 내려와 씻겨나간다고 하니 수세식 화장실

남녀 구분이 없고 칸막이도 없는데 그 시대의 문화상을 이해한다면 이상한 일도 아닌듯




셀수스 도서관(Library of Celsus)

에페소스 유적중에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 학문을 사랑하던 로마의 아시아 총독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 줄리어스 아킬라가 아버지 묘 위에 건설한 도서관이다. 3세기 고트 족의 침입과 지진으로 모두 불타버렸지만

1970년 복원했다. 코린트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이 혼합된 기둥으로 세운 정면 구조물은 대단한 볼거리. 지헤와 지식,

지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네 여인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다만 유적에 있는 것은 모두 복제품으로, 진품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밖에서는 2층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있는 구조이다.

1만 2000여권의 두루마리 형태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다는데 서적이 손상되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한다.

 

앞에 보이는 문은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인데 두사람이 노에였다가

풀려난후 감사의 표시로 문을지어 바쳤다고함 이문을 지나면 아고라 광장

이라는데 우리 가이드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원형극장으로만 데리고간다

 4개의 정문위에는 각각 여인의 석상이 있다고 지혜,덕성,학문,지식을 상징한다고 함.
원본은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유곽: 셀수스 도서관 건너편 지역은 브로델(Brothel)이란 창녀촌 유곽은 정원이 있는 2층 건물에 거실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침실이고, 목욕탕,수영장,회의실,대형도서관에  냉,온방 시설까지 갖추고 지하실에는 포도주저장고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 매춘 광고 ~ 세계 최초의 그림 광고중 하나라고 함
왕관을 쓴 여자 얼굴'은 왕비만큼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하트모양)을 나누기 원하시면, 돈(하트위 동그란모양)을

 가지고 오세요! , '왼발'은 발의 방향으로 가시면 저의 집은 왼 쪽에 있고, 또 이 발보다 작은 발 소유자는

출입금지(미성년자 출입금지)를 의미 한답니다


 아고라의 야외시장 ~ B.C 1세기에 세워진 야외시장이 있던 자리의 동굴처럼 생긴 둥그런 집터는 당시 상점이 있었던 자리이다

터키 최대의 고대 유적지로 25천명이 수용할 수 있는 고대 로마의 원형 대극장

여기는 앞 무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에페소 원형 대극장(Efes Great Theater): 헬레니즘 시대에 지었다가 로마 시대에 각 부분이 확장됨 극장은 연극 공연이나

 시민의회를 열었던 장소로 약 2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은 직경 154m, 높이 34m의 반원형이다. 초기에는 객석과

오케스트라 무대 사이에 난간만 있었지만 후에 지금처럼 벽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4세기경에는 맹수와 투사의 싸움이 열렸으며 사도 바울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일어난 곳도 이곳이라고 하며

지금도 매년 봄이면 이곳에서 에페스 페스티발이 열려 민속춤 등이 공연된다. 

원형 대극장은 객석 위에서도 소리가 크고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음향시설을 점토관과 청동관으로

완벽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던 대도시 에페소는 서기 17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고

1970년경 시작된 발굴작업으로  옛날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에페소스는 신약 성서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도시로

항구가 인접해 있어 B.C. 620년경부터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곳이다.
인구 20만 이상이 살았던 도시인 만큼 남겨진 유적들도 장대했다


상업의 요충지였던 에페소스는 기원전 550년부터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강력한 제국 중의 하나로

 부상한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기원전 560~546년 재위)에 의해 점령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에페소스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새로운 신전의 건축을 명령했는데 이것이 아르테미스신전이다.

아르테미스신전은 그리스 시대에 가장 큰 신전이었음은 물론 대리석으로 만든 최초의 신전이다.

높이 18미터의 기둥 127개를 사용한 길이 120미터, 폭 60미터의 대형 건축물이다. 현대인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의 길이가 69.50미터, 폭 30.80미터, 높이 10미터 정도이며 대리석 기둥을

 58개사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신전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전의 자재는 아름답고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로는 네 방향으로 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 : 고대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 이다
 현재 저지대 분지에 당시의 찬란했던 신전은 볼 수 없고 열주 하나만 서 있고 터만 남아 있음


 정복왕으로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알렉산드로스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을 보고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막강한 도시 바빌론에서 마차들이 달리던 성벽도 보았고 제우스 신상 · 공중정원 · 피라미드 ·

마우솔로스왕의 무덤도 보았다. 그러나 내가 아르테미스신전을 보았을 때는 해가 구름 속으로

거의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내게 말했다. ‘올림피아를 제외하고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출처:세게불가사의 여행중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상 : 대지의 여신으로 수많은 가슴을 가지고 있어 풍요와 다산을 강조하고 있다.

아카디안 거리~ 원형 대극장에서 항구까지 거리
헬레니즘 시대에 지었고 아케디우스 황제(AD 395-408) 시대에 복구됨250미터의 길이로 유적지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찼던 것으로 전해지며 그리스나 페니키아의 상인들로 북적거렸던 이곳은 값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과 회랑들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상가를 뜻하는 아케이드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에페소

에페소는 기원전 1500-1000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로스(Androklos)의

 지휘하에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아나톨리아에(터키반도, 흑해와 지중해 사이 ) 처음 정착하게 되었는데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서쪽으로 1200미터 떨어진 고대 에페소가 있던 곳에 그들의 새도시를 세웠다. 기원전 7세기, 에페소는 키메르(Cimmerian)인에

 의해 아르테미스 신전을 포함하여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후 이곳은 그리스의 참주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기원전 6세기경 에페소는 리디아왕국의 군주 크로이소스(Croesus)의 지배를 잠시 받긴 하였으나

곧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가던 알렉산더 대왕은 크로이소스에 의해 재건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 곳을 정복, 에페소는 평온을 되찾고 융성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리시마쿠스(Lysimachos)는

피온산(Mt.Pion)과 코레쏘스산(Mt.Koressos) 중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 곳을 높이 10미터, 총 길이 9Km의 성벽으로

요새화시켰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원형극장, 경기장과 체육관 등의 유적은 이 당시 지어진 것이다.

기원전 88년, 에페소인들은 폰터스(Pontus)와 연합하여 로마인들에게 대항하였으나 로마의 세력 팽창이 엄청날 것을

 알아차린 에페소인들은 곧 로마편으로 돌아섰다. 이로써 에페소는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제국

 아시아속주의 수도로 부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곳은 거대 항구가 있는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영도 서기 17년에 일어났던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폐허로 변하였다.


오늘일정 끝내고 이제 2~3시간 달려서 아이발릭 호텔로 이동을한다


에게해의 휴양도시 아이발릭(Ayvalik) 에페스를 떠나 아이발릭(Ayvalik)에 도착했다.

아이발릭은 소나무와 올리브 나무 숲 가운데 있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이자 에게해의

인기있는 휴양도시다.

 나무와 돌들로 장식되어 있는 집들은 도시의 외관을 아름답게 한다.
아이발릭 해변의 물은 한여름에도 맑고 시원하며 해변의 모래는 금빛으로 빛난다.

아이발릭 근교에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Cunda섬은 가장 유명하다.

쿤다섬은 아이발릭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일몰이 유명하다



                                                                                      I Need To Know / Marc Anth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