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

금강대 옥불과 병풍암 석불사

오늘의 트레킹은 달랑 8명 많은 인원이 불참 단촐하게 출발을 한다

동래역 -금정마을-금강대-만덕고개-석불사-만덕전철역(5/9)


동래역에서 3번 마을버스를 타고 금정마을에 도착 굴다리를 통해 금강대로

여기에 온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만덕고개까지 데크시설이 잘돼

오르는데 불편함은 없다

금강대 옥불사에 도착 험상궂은 달마와 의자에 앉아있는 부처가 어서 오라는듯 반기고

지금까지 사찰에 다녀보았지만 이런 좌상의 부처는 처음으로 본다



가지런히 잘 정돈된 옥불사의 장독대에서 장맛이 읶어가고 있습니다,

옥이라고 하는데 내가 외국을 다니며 본 것은 분명 대리석 같은데 옥이라고하니 믿을 수 밖에

금강대 십일면 관세음보살 마애불(金剛臺十一面觀世音菩薩磨崖佛)은 11면의 얼굴을 가진 불상으로서, 금정산 금강대(金剛臺)에

 자리하고 있다. 1980년에 승려 법혜가 주도하여 이관용과 김선기가 조각하였다.

대웅전 옥상에 옥석으로 조성된 석가모니 대불좌상

장산과 해운대 신도시 금련산과 황령산 배산 사직동과 연산동 한눈에 보이는데

날씨가 스모크로 흐리니 언제 또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을지

불두화

금강대 십일면 관세음보살 마애불의 높이는 약 6m로, 돋을새김 기법으로 조성되었다. 연꽃 대좌 위에 서 있는 형상으로

왼손에는 정병을, 오른손에는 영락(瓔珞)을 쥐고 있다. 천의는 바람에 날리듯 표현되었고, 두광(頭光)은 다른 불상과

달리 원형에 연꽃잎이 달려 있는 모양이다. 보살의 머리에 11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관음보살은 대승 불교를 상징하는

 보살 가운데 가장 자비스러운 보살로서, 금강대 십일면 관세음보살 마애불은 특히 열한 가지의 얼굴 모습을 나타내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정면에 세 얼굴[三面], 왼쪽에 세 얼굴, 오른쪽에

 세 얼굴, 뒷면에 한 얼굴, 정상에 한 얼굴 등 모두 11면을 가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예불소리가 은은하게 퍼저나온다 여성 신도들이 하나둘씩 올라오는데

경사가 심해 힘겹게 오르는데 이분들 자기와 자기 남편 잘되라고 기도를 할까

여러사람에게 질문을 해보는데 다들 답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사람

하나도 없고 모두가 자식 잘되라고 기도를 할 것 같다 블친님들 생각은 어떤가요 ㅎㅎ


불두화

둥근형태의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 하였다

정원수로 쓰이며 열매를 맺지 않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사찰에 많이 심겨져 있다


계단아래 모셔진 약사여래좌불

옥석으로 조성된 코끼리를 탄 아기부처님

거북이를 닮은 돌



이제 아카시아도 피기시작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운대구와 연제구


오복누리 굴다리에서 여기 만덕고개까지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걷기에 참으로 좋은 길이됐다

이길은 60년대에 김현옥 부산시장이 구포와 동래를 잊는 도로를개설 했다

그 이전에는 동래에서 구포장을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문을 통과해 동굴처럼 생긴 길을 따라 오르면 바로 대웅전 밑으로 통했는데....


만덕 고갯길을 따라 오르다가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쪽으로  바위들이 솟아있는 봉우리가 있다. 이곳에는 큰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자연적으로 둘러서 있는 거대한 바위들에는
마애불상(磨崖佛像)이 새겨져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60여년 전 한 스님의 원력으로 건립한 석불사는 자연적으로 둘러 앉은 거대한 바위들에 16나한(羅漢)과 29개의

 불상(佛像)이 새겨져 그 위용을 드러 내놓고 있는데 국내 최대의 마애불(磨崖佛)군을 이루고 있다.



석불사는 싸이의 말춤과함께소문을 탔다고한다 보광전과 대웅전 사이에 있는 삼층석탑에

싸이의 원조 말춤이 있다고 신문방송에 알려저 있기 때문이다

석탑 1층4면에는 각면에 2구씩 8구의 인왕상이 있는데 조각이 희화화되어 흡사 싸이의 말춤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

 지상(아래에서본 굳게 닫힌문)과 연결된 지하통로출구 바로 위에는 대웅전이다


금정산 고당봉(801.5m)에서 뻗어 온 산줄기가 남단에서 구포동, 만덕동, 성지곡의 세곳으로 갈라지면서
갑자기 급경사를 이루며 직벽의 암석군을 빚어놓았다.이 곳에는100m가 넘는 암벽이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그 모양이 병풍처럼 이루어졌다 해서 바위 이름을 병풍암이라 부르고, 그 바위 아래에는 바위와 바위사이에

 조각으로 이어 붙인듯한 모습으로 메달리듯이 석불사가 자리잡고 있다.행정구역적으로는 부산시 북구 만덕동

 산2번지이다.

거대한 자연 암석들사이에 세운 당우의 모습이나 지하와 지상으로 연결된 그 출입구도 여느사찰에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무엇보다 그 높이가 무려 40m와20m 가량되는 직벽의 암석을 깎아 여러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모두마애불(磨崖佛)이란것이 특색이다.

마애불과 석공 배판수 이야기


배판수라는 석공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웃집에서 꼴머슴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한 석공을 만나 돌 쪼는 일을 배웠다.
처음에 그는 망두석(望頭石=望柱石)처럼 쉬운 것을 쪼았지만 차츰 실력이 늘면서 마침내 불상 조각에서 꽤 알아주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배판수는 처음 석공 일을 가르쳐주던 스승의 딸을 사랑했다. 스승의 딸 역시 성실한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스승은 고아에

 빈털터리인 그를 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그는 사랑하는 이를 향해 타오르는 열정을 불상 새기는 일에 쏟았다.

그사이 스승의 딸은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딴 곳으로 시집을 갔다. 이 절 저 절로 옮겨 다니며 불상을 조각하는 일을 하는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초례청(혼인을 지내는 예식장)으로 걸어가던 처녀의 마지막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던 중 동래에서 큰 불사(佛事)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정산 석불사 병풍암 암벽에 마애불군(磨崖佛群)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부랴부랴 병풍암을 찾았다. 도착해 보니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인 석공들이 각지에서 찾아와 모여 있었고,

석벽에는 거대한 사천왕상이 새겨지고 있었다. 주불인 석가여래도 희미하게 형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초청받지 못한 뜨내기 석공 배판수는 달빛이 쏟아지는 빈 공사장에 홀로 돌을 베고 누워 얼핏 잠이 들었다. 꿈속에선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던 처녀가 나타나 "나를 저 돌에다가 새겨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배판수는 꿈을 깨고 벌떡 일어나 막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부처상을 두 팔로 끌어안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부처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저 석벽에 부처님이 아닌 마음속에 품은 여인을 새기고 싶습니다."

그는 석벽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빈 자리를 하나 찾아내어 뚫어져라 응시하고는 여인을 새겼다. 그러자 감로병을 들고

천의(天衣)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눈을 반쯤 내리뜨고 빙그레 웃는 모습은 끝없는 고뇌와 삼독(三毒),

즉 탐(貪·욕심)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에 물든 중생의 마음을 씻어주는 자비로운 얼굴이었다. 마애불군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빼어난 작품은 배판수의 관세음보살상이었다.

이 보살상은 석벽을 떠나 걸아갈 듯한 생동감과 여체가 지닌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고루 갖춘

보기 드문 걸작품이었다.모든 일이 끝나는 날 배판수는 관세음보살상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

면서 자신의 사랑이 비로소 완성되었음을 깨달았다.


1950년에 조성된 석불사 만다라 마애불군에는 한 석공과 여인의 사랑을 승화시킨 진수로 관세음보살상을 새긴 석공의

 간절한 마음이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석불사의불상들은 모두 마애불이다. 평소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다녀간다.
이들 마애불(磨崖佛)들은규모도 크지만, 정교하게 새긴 그 예술성 또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병풍암에다 많은 석불을 새겨두었다고 하여 일명'병풍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병풍암의 장관 때문인지'병풍암 석불사'로 부르고 있다.

사천왕상
석불사는 수십길 절벽을 이룬 병풍암에 정교하게 새긴 불상의 아름다움이 돋보여 현대의불상 조각기법이 신라나

고려의 조각술에 크게 뒤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준다.석불 가운데는 미륵불의 정교함이 단연 으뜸으로,
이들 석불들은 사찰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있는 암석에 그대로 새긴 것이므로 더 큰 가치를가진다.
이것이 곧 화강암을 보석처럼 풍부하게 지닌 금정산의 한 특징을 웅변해 준다.


미륵불의 아름다운 자태병풍암 석불사는 불과 65년의 짧은 연륜을 지닌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석불사의 마애석불(磨崖石佛)들은 자연적으로 둘러앉은 거대한 바위들에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미륵존불, 십일면 관세음보살불, 십육라한불, 사천왕상 등 29개의 불상이
새겨져 그 위용을 드러 내놓고 있는데 국내 최대의 마애불(磨崖佛)군을 이루고 있다.명선님 글에서

석불사에서 유일한 금동불상. 깊은 바위속에 앉아 있다


석불들은 종교를 떠나 예술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이 석불사는 금정산의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창건 역사가 아주 짧다.일제시대인 불기 二四六六년(서기1930년)에 조용선(曺容善) 선사가 창건했는데,
그가 주지로 있는 동안 계속 암벽에 석불을 조성해온 것이다. 석불사는 사찰 명칭 그대로 병풍암에 조각한

 석불의 위용이 대단하다

산령각 입구의 매애불 군병풍암 석불사의 석불들은 그 자체만으로 현대 불교 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곳의 석불들은 세월이 흐르면 문화재적인 가치를 지닐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증도 하고



오늘도 만보이상 걸었다 이제 화명동으로 내려 가자는데 일부는 만덕으로 그냥 내려가잔다

화명동과 만덕으로 내려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라 탄탄대로다

날씨가 몹시 더워서일까 산딸나무 꽃은 시들시들 멀리서보니 가막살 나무 같아서

가까이가서 보니 산딸나무다

.

                                                                 

 사랑의 기쁨


'부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중앙동.동광동 40계단  (0) 2019.08.24
태종사 수국  (0) 2019.06.28
조선 통신사 행렬2  (0) 2019.05.12
조선통신사 행렬1  (0) 2019.05.12
황령산 둘레길 물만골역에서 못골역까지  (0) 2019.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