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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사촌 가로 숲

후산정사를 나와 점곡초등학교를 거처 사촌 가로 숲으로 향한다

점곡초등학교

1920년 3월 31일 점곡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21년 4월 16일 점곡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25년 3월 31일 6년제로 승격하였고, 1938년 4월 1일 점곡 공립 심상 소학교로 개칭되었다.

1940년 4월 1일 점곡 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1981년 3월 2일 병설 유치원 개원했으며,

 1995년 9월 1일 동원 국민학교 폐교로 통합하였다. 1996년 3월 1일 점곡 초등학교로 개칭되었고,

 1999년 3월 1일 구암 분교장을 통폐합하였다. 2013년 3월 1일 제31대 류해우 교장이 부임하였고,

 2016년 2월 19일 제92회 졸업생까지 총 4,93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2015년 4월 1일 기준 총 3학급에 총 22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 중 2학년은 1학급에 7명, 4학년은 1학급에 10명, 6학년은 1학급에 5명이 재학하고 있다.

교직원은 교장 1명, 교사 4명, 행정 담당 및 일반직 7명 등이 근무하고 있다.

 유치원, 과학실, 컴퓨터실, 영어실, 보건실, 체육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사촌마을은 풍수상 명당으로서 딱 하나가 부족했다고 하는데, 마을 뒷산으로 문필봉이 떡 버티고 서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서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오른쪽 지형은 광활한 들판이어서 우백호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풍수를 위해 방풍림을

 심었는데 지금 이 숲이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돼 있는 '사촌리 가로숲"이다. 마을에서는 서쪽에 있는 숲이라 하여 '서림'이라

부른다. 방풍림은 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류가 대부분으로, 마을을 이룰때 심은 나무들이 이제 수령이 600년에

 이르는 나무들로 자라, 길이 1km에 폭은 45m 정도의 숲길을 이루며 제방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은 숲길이 만들어 졌다.



멀리서 안동 하회마을을 관광오는 관광객들 그리고 안동에 살고있는 사람들까지도 대부분이 서애 류성룡 대감은 하회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다.하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 서애 류성룡 대감은 외가인 의성 사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의성 사촌마을은 (김방경을 중시조로하는)선안동김씨의 집성촌이다. 서애대감의 어머니는 송은 김광수라는 선비의 자녀인데

 어릴적부터 워낙에 총명하고 고집이 남다른 아이였다. 사촌마을에는 이런 전설이 옛부터 전해져 왔다.
사촌마을은 삼정승이 나는 명당터였다. 신라시대 나정승이 나셨고 아직 두분이 더 날 수 있는 명당터였다.


서애의 어머니인 사촌김씨부인이 서애대감을 배었을때 태몽으로 용꿈을 꾸었다. 그래서 크게 될 아이라고 생각해 정승이 나는

 터인 친정에서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으로 갔다. 
하지만 친정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기운을 출가외인인 너와 외손에게 줄 수 없다!"며 딸을 내쳐버렸다.
친정에서 쫓겨나 다시 시댁으로 가던 도중에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405호)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때 사방의 나무잎들이 모두 시들어버렸다고 한다.




1986년에 사촌 가로숲에「서림 사적비」를 세우고, 울타리를 조성하여 염소 등 짐승들로부터 숲을 보호하였고,

1992년에 「안동 김씨 사촌 입향 6백주년 추원비」를 건립하였다. 이 숲은 1999년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사촌 서림비」를 세웠다.




사촌 마을은 풍수상의 명당으로 마을 뒷산으로는 문필봉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우측은 광활하여 우백호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비어 있는 우측을 보하기 위하여 사촌의 서편 매봉산 기슭을 따라

길이 약 1,040m, 폭 40m의 방풍림을 조성하여 비보하였는데 이것이 의성 사촌리 가로숲이다. 수종(樹種)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10여 종이며, 수령(樹齡) 300~600년 사이의 노거수가 많고 수고(樹高) 15~20m로 장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주민들의 쉼터 정자가 다른곳과 달리 두채가 나란히 붙어있다


비보 사상에 의해 조성된 사촌 가로숲

가로숲이라는 이름은 들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조성한 숲이라서 붙인 명칭이다.

 간혹 길을 의미하는 '가로(街路)'로 잘못 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을 서쪽에 있어 서림(西林)으로도 불린다.

 원래의 이름은 마을 남서편의 바위언덕을 가리고 마을 서편의 긴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어 ‘가리쑤’라고 불렀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세 정승이 나올 수 있는 명당이지만 마을의 서쪽이 허했다고 한다.

마을 왼쪽으로는 좌산이 있는데 오른쪽 지형, 서쪽만은 광활한 들판이어서 옆구리가 비는 형국이었다.


좌청룡이 발달된 데 비해 우백호가 없었다. 풍수지리 사상에 의하면 사람들은 땅의 모양, 바람[風]의

방향, 물(水)의 흐름 등 지리(地理)의 조건이 사람살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굳게 믿었다.


 풍수지리 사상에서 비보 사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산천의 역처(逆處)나 기운이 허한 곳을 보충하기

위해 사찰이나 나무를 심는 것을 말한다.


김자첨은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의 비보 사상에 따라 마을의 서쪽 허한 곳을

 비보하여 건마산 쪽 절벽을 시각적으로 가리고,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방풍림인 가로숲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물길이 짧고 모래가 많아 비가 오면 물이 한꺼번에 흐르고 금방 땅속으로스며들기 마련이어서 물길도

 보호하고 바람도 막기 위해 마을 터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숲을 만들었다.


큰 비가 오면 수시로 하천 둑이 유실되곤 해서 수해 방지용으로도 숲이 필요했다. 이 숲이 조성되자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과 홍수를 막아주어 사촌 마을은 살기 좋은 터전이 되었다.

사촌 마을의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편인데, 미천의 물의 흐름이 급하여 넓은 하천 부지를 형성하고, 토질은

 사질 양토로 배수가 잘 되어 과수 재배의 적지이다. 과수원뿐 만 아니라 골짜기 아래를 따라 논도 발달해 있다.

또한 이곳은 해발 160m로, 생산과 생활에 가장 적당한 지대이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비교적 심하여 여름에는 모기가

 없어 무덥고 짧은 밤을 쾌적하게 숙면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비온 후 쑤(숲)의 시냇물이 3일 이상 흐르고 모기가 들끓으면 마을의 기가 다하였으니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선조들이 일러준 숲에는 지금까지 큰비가 온 후에도 몇 날씩 물이 흘러내린 적이 없다.

   경북 의성군 사촌에 있는 ‘가로숲’ 이야기 이다.

사과 밭

이렇게 민들래가 많은 곳은 처음보는 듯하다


애기똥

미나리 냉이

사촌 서림을 관리하는 ‘서림계(西林契)’

사촌 가로숲[서림의 소유는 마을을 일군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이며, 숲의 관리는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의성군으로 넘어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문중에 ‘서림계’라는 서림을 관리하는

계가 있었다. 서림계는 마을 사람들이 일명 ‘쑤거렁계’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다. 서림계에서는 서림에서의 땔감용 벌채와

서림의 사사로운 출입을 금하였으며, 유사를 정하여 거렁[제방]의 유지 보수와 정비를 전담하였다. 마을에 서림계

문서인 「서림 계문부(西林契文簿) 병인년(1926) 5월 일」과 「임원록(1987)」이 남아 있다.



가막살나무


마을 앞에 의병 기념관이 있어 들어가본다
















아렇듯 오랜세월을 이어오며 3성씨가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을 거치면서 의병과

독립운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굴하지 않고 선비정신을 굳건히 지킨 마을인데

이제 후손들은 모두들 객지로 떠나고 명맥만 이어오는 마을로 낙후돼가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다 산운마을처럼 정부에서 관리를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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