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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조문국 사적지


사촌 가로숲을 보고 안동 고등어백반 만원으로 점심식사후 여기 조문국 유적지로왔다(5/16)

조문국 유적지 (금성산 고분군)

주소 : 경북 의성군 금성면 동부로 2524 (대리리 351번지.)

이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200여기에 이르는데 출토된 유물은

 5~6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탑리리. 학미리 일원 이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 조문국(召文國) 경덕왕릉을 비롯한 약 20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인 조문국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소국으로 성립되었으며, 신라 벌휴왕 2(185)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문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196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경희대, 경북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앞트기식 내지

굴식돌방무덤과 변형 돌무지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신라토기 가운데 지역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의성양식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금동관, 금동관 장식품, 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있다. 현재 이 유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로 알려져 왔으며, 이 곳에 소재하고 있는 고분들을

 통해 의성지역 지방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지역과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내문, 의성군청, 2017).

조문정

아직 다피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한 작약단지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작약꽃 닮은 어머니
 
 구경애


검붉은 다홍치마
헐떡이는 뜨거운 햇살 안고
숨가쁘게 피는 꽃

유월의 작약
하늘같이 맑은 영혼
그 꽃 이파리
입 맞추시던 어머니

붉은 꽃잎으로 피운
불굴의 사랑
유월의 태양을 딛고
유유히 떠나셨네



작 약 - 노천명

그 굳은 흙을 떠받으며
뜰 한구석에서
작약이 붉은 순을 뿜는다

늬도 좀 저 모양 늬를 뿜어보렴
그야말로 즐거운 삶이 아니겠느냐

육십을 살아도 헛사는 친구들
세상눈치 안 보며
맘대로 산 날 좀 장기(帳記)에서 뽑아보라

젊은 나이에 치미는 힘들이 없느냐
어찌할 수 없이 터지는 정열이 없느냐
남이 뭐란다는 것은
오로지 못생긴 친구만이 문제삼는 것

남의 자(尺)는 남들 재라 하고
너는 늬 자로 너를 재일 일이다

작약이 제 순을 뿜는다
무서운 힘으로 제 순을 뿜는다



글재주가 없으니 이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답다 예쁘다 외에는 떠오는게 없어

유명 시인들의 시로 대신 한다 ㅎㅎ

이렇게 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두분 도촬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분군들

같한 일행들은 사진 찍기에 정신이 팔려 있어 나는 나대로의 길을 간다



조문국 경덕왕릉(景德王陵)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8번 국도를 따라 약 8.5㎞지점 금성면(金城面) 대리동(大里洞) 산 38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옛 조문국(召文國)

경덕왕릉(景德王陵)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古墳)으로서 봉 아래 화강석 비석(碑石)과 상석(床石)이 있다.

능(陵)의 둘레가 74m이며 능의 전면(前面)에는 가로42㎝, 세로 22㎝, 높이 1.6m의 비석이 서있다.


그런데 이 왕릉이 발견되기에는 신기한 전설이 있으니 조선 숙종(朝鮮 肅宗)때 허미수 문집에 실려 있다.

먼 옛날에 한 농부가 외밭(瓜田)을 마련하기 위하여 작은 언덕을 갈던 도중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큼직한 구멍이 나타났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들어가 보니 돌로 쌓은 석실(石室)이 나타났다.


석실의 둘레에는 금칠을 하였고 가운데는 금소상(金塑像)이 있는데 그 머리에 쓴 금관(金冠)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농부는 욕심이 나서 금관을 벗기려 하였더니 그만 농부의 손이 금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날 밤에 의성군수(義城郡守)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는 경덕왕(景德王)이다.

아무 곳 아무 데 와서 살펴보고 이 무덤을 개수 봉안토록 하여라” 고 현몽하였으므로 이튿날 곧 이곳을 발견하여 봉을

쌓고 관리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지방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도 전해 온다. 현재의 능지(陵地)는 약 500년 전에 오극겸(吳克謙)의

외밭(瓜田)이었는데, 외를 지키던 어느 날 밤 꿈에 금관(金冠)을 쓰고 조복(朝服)을 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내가 신라시대(新羅時代) 조문국(召文國)의 경덕왕(景德王)인데 너의 원두막이 나의 능(陵) 위이니 속히 철거를 하라”

고 이르고는 외직이의 등에다 한 줄의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놀란 외밭 주인은 일어나 보니 꿈속에 노인이 써준 글이 그대로 자기 등에 씌어 있어 현령(縣令)께 고(告)하고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하여 봉분(封墳)을 만들고 매년 춘계 향사를 올렸으며 지금도 제례(祭禮) 행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외 200여 기의 고분이 부근에 산재하고



















햇볕은 따갑고 무척 더운 날씨 넓은 고분군을 다 돌아보기도 그렇고 박물관을나와

조문정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이팝나무도 담으며 문익점 목화 시배지 기념비를 보러 간다








금성산 소재지 :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금성산은 의성의 명산으로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해발 531m의 국내최초 사화산으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이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시대에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 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이 있으며 해발 671m의 비봉산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달 동안 이 지역에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산으로서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약속장소에 도착 산딸나무도 담고 차에 올라 산운 생태공원으로 이동을 한다


자연학습의 산교육장, 산운생태공원

구 산운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이곳은 자연생태관찰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산교육장으로 의성의 명산인 금성산과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보유수종은 관목류 및 초화류 53종이며, 주요시설로는 생태관 1동, 연못 2개소,

분수, 목교, 관찰데크, 솟대, 쉼터, 산책로 등이 있다. 생태관 내부에는 홍보관(의성군 유래와 특산품, 관광코스

및 지역행사), 전시실Ⅰ(지진과 화산활동, 생명의 기원과 지구의 탄생), 전시실Ⅱ(인류의 진화과정, 동ㆍ식물의 분류별 종류),

 전시실Ⅲ(공룡화석,공룡의 연대기), 마을자료관(산운마을의 유레, 지방문화재)등이 있다.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꽃들이 자라며, 연못·분수·나무다리·관찰데크·솟대·장승·쉼터·산책로 등을 조성하였다.


의성 산운생태공원은 야외에는 생태학습과 공룡체험을 할 수 있으며 홍보관에는 경상북도 의성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덕분에 제공되는 넓은 운동장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산운마을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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