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람들이 덜 모이는 곳으로 가덕도를 찾았다
물론 연대봉이 주 목적이지만 차를 가지고 왔으니 가덕도 일주를 한 번 해보고 싶어
여기 천성항으로 먼저 왔다
예전에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배타고 천성항이나 대항항으로 와서 연대봉에 올랐다(3/4)
천성항에서 관광지도를 보고 한 바퀴 돌기 위해 탐색전을 해본다
시계방향으로 거가대교 전망대.천성항.거가대교
위 아래는 천성항의 거리
잠시 천성항을 둘러보고 가덕도 등대를 찾아 보기로한다
대항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거제도 쪽 풍경
대항항
대항 끝 바위군들
외양포 마을은 원래 양천 허씨 집성촌이었다. 외양포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6세기 무렵이었고,
당시 약 80호 정도가 거주하였다 한다. 지금은 외양포가 대항동 대항 마을 아래의 자연 마을이지만,
애초는 대항 마을보다 더 큰 마을이었다.
외양포 마을의 비극은 러일 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8월 3일 일본이 진해만을 탈취하여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설치하고, 부산·진해·마산·가덕도·지심도·저도·거제도 등 진해만과 그 이웃의 육지와 섬에 진해만 요새 중포병 대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04년 11월 27일 가덕도 외양포에 막사와 함께 포대 6문, 경포대 2문을 갖춘 포대 진지가 설치되었고,
1904년 12월 12일 진해만 요새 포병 대대 제2중대가 주둔하고, 12월 20일 중포병 대대가 이동해 왔다
사령부 발상지지
사령부의 발상지지는 비의 제목이다
1905년 (명치38년) 4월21일에 부대편성 명령이 내려지고 같은해 5월7일에
편성된 부대가 외양포에 상륙했다
후면
1936년(소화 11년) 6월에 비를 세우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에 대한 강제 이주가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불법적 토지 점령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총칼을 앞세워 위협하는 일본군을 당할 수 없어 누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비워 주고 고개 너머 대항 마을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살던 집을 뜯어다 대항 마을에 재건하기도 하였다.
일본군이 들어와서 포진지를 만든다고 강제로 쫓아냈다 . 한 3년간 여유를 두고 1차, 2차 2번에 걸쳐서 철거를 했는데,
그래서 완전히 대항으로 철수가 되었다. 그때 한 집인가 두 집이 안 나가고 버티고 있으니까, 왜놈들이 불을 놓아 버렸다
사람은 그대로 놔두고. 이주 보상 같은 것도 그때는 없었다
이듬해인 1905년 4월 21일에는 진해만요새사령부가 편성되어, 5월 7일 외양포에 상륙하였다.
그리고 진해만 요새를 일본 연합 함대의 근거지로 하여 1905년 5월 27일~28일의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은
러시아 발틱 함대를 물리치고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즉, 진해만 요새 덕분에 승기를 잡았으며,
그 한가운데 외양포의 사령부와 포병 대대가 있었던 것이다.
외양포 포진지 엄폐막사 방은 온돌로 되어있다
외양포 포진지 탄약고
포진지와 탄약고와 병사들의 막사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 후 진해만 요새 포병 대대는 포병대로 격하되고, 병력도 3분의 1로 축소되는 등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어서 1909년 8월 요새 사령부와 포병대가 가덕도에서 마산의 월영리로 이전하게 되면서, 외양포에는
포병 1개 중대만 배치되었다. 그리고 졸지에 마을을 뺏긴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 내내 마을 주위에 얼씬거리지도 못하였다.
외양포 마을 풍경
당시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의 위치는 마을 뒤편 대나무 숲 속이다.
그 입구에는 1936년 건립한 ‘사령부 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는 비가 있어, 일본군 진해만요새사령부가
이곳 가덕도 외양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외부에서 쉽게 보이지 않도록 설계·구축된 포대 진지에는 포좌·탄약고·방음벽·창고·포측탄고(砲側彈庫)·대피소 등이
해방 후 70년이 흐른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외양포에 주둔하였던 포병대의 규모와
일제의 침략상을 실감케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외양포 마을에서 가덕도 등대로 가려니 군부대가 막고 있어서 못 들어가고 새바지 마을로 이동을 한다
새바지등대
새바지 마을 풍경
해변가 북쪽으로는 도로가 없어 더이상 진입할 수가 없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조선 내 일본군은 일본이나 태평양 지역으로 배치되었다.
1944년 중반 이후 일본군의 전력이 급강하하자 조선의 일본군들은 본토 결전을 준비하면서 한반도 남해안의
경비를 강화하였다. 원래 진해만요새사령부의 관할은 마산 권역과 부산 권역이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부산 요새가 중요해지자, 진해만요새사령부의 중요 시설들이 1941년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부산 요새는 일본의 시모노세키, 이키, 쓰시마와 함께 대한 해협을 방비할 임무를 부여받고, 부산 인근에
독립 고사포 1개 중대가 편성되기도 하였다.
부산과 인근의 부대시설은 대한 해협의 보존에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터널을 지나면 이러한 자갈마당 해변이 있다
한편 미군은 조선을 일본 본토 공격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을 논의 중이었다.
1945년 대한 해협 상공에 미군기가 출몰하고, 대한 해협에 미군이 설치한 어뢰가 조선 내 일본군의
일본 본토 이전을 제어하였다. 이즈음 미군이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상륙하여 거꾸로 일본을 공격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이에 일본은 부산과 주변 해안에 미군 상륙 작전을 대비하기 위한 방어 시설을 구축하였다.
가덕도 대항 마을의 인공 동굴도 이와 같은 정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공 동굴은 현재 10여 개 정도 발견된다. 마을의 노인들에 따르면 가덕도 북쪽의 탄광 노동자들을 데려와
인공 동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여기서부터 연대봉 등산은 시작된다
오르는길 초입으느 비교적 걷기 좋고 경사도 완만하다
이제 막탄생 한 것 같은 할미꽃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밟혀 누어 있는 것을
이르켜 세워놨는데 다음에 누가 또 밟지 않을까 ?
초등교와 유치원들이 쉬고 있으니 학부형들과 같이 여기에 올라와 봄을 즐기고 있는 듯
산거울
지난번에 몰운대에서 본 꽃은 괭장히 커서 쉽게 알아보는데 여기의 산거울은
너무작아서 처음에는 무슨꽃인가 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됨비알이 시작된다 걷옷도 벗어서 허리에 묵고 오른다
이정표에 이제 200,m 그런데 여기서는 정말 나로서는 힘든 코스다
낙엽에 눌려 겨우 꽃만 빼곰히 내놓고 있어서 털 송송한 꽃대는 담지못했다
지난번에 몰운대에서 보지 못했는데 겨우 여기서 몇송이 보게 된다
숲을 이리저리 헤메고 다녔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겨우 이정도라도 감사
노루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중국, 러시아 우수리 지역에도 자란다.
식물체는 높이 8-20cm, 전체에 희고 긴 털이 많이 난다. 잎은 뿌리에서 나며 3-6장이다.
잎몸은 3갈래로 갈라진 삼각형이며, 밑은 심장형, 끝은 둔하다.
잎 앞면에 보통 얼룩무늬가 없지만 있는 경우도 있다.
꽃은 3-5월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뿌리에서 난 1-6개의 꽃줄기에 위를 향해 피고, 흰색, 분홍색, 보라색이다.
꽃받침잎은 꽃잎처럼 보이며, 6-11장이다. 수술은 많으며 노란색이다.
열매는 수과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줄기나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졌다.
청노루귀
이제 올라오고 있는 가녀린 한송이 청노루귀
이러한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
연대봉 봉수대여
천성항과 거가대교 전망대 그리고 침매터널 입구
침매터널을 지나 거가대교 주탑으로 연결된다
거가대교
거가대교는 가덕도~대죽도~중죽도~저도~거제 유호리를 연결하는 8.2㎞의 교량으로 폭은 21~35m이며 왕복 4차선이다.
8.2㎞ 중 가덕도~대죽도 간의 3.7㎞는 해저 침매 터널 구간이며, 대죽도에서 거제 유호리까지의 4.5㎞ 구간에는
섬을 연결하는 2개의 교량과 접속교가 건설되어 있다. 총 사업비는 1조 4469억 원[민자 유치 9,996억 원,
중앙 정부와 지자체 재정 지원 4,473억 원]이 들었다.
부산광역시와 거제시를 잇는 다리. 2004년 착공하여 2010년 개통되었다.
3.5㎞의 사장교 구간과 3.7㎞의 침매터널, 육상터널 1㎞로 구성된다. 국내 최초의 침매터널이자 세계 최대의 수심,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개통 이후 부산과 거제는 40분만에 연결되는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게 되었으며,
물류비용 또한 크게 절감되는 효과를 낳았다.
산이 높다하여 귀한 것이 나니라 나무가 있기 때문에 귀한 것이다
사람이 살쩠다고 귀한 것이 아니라 지(知)가 있어 귀한 것이다
연도
앞에 보이는 섬이 이수도 작년에 1박2일 묵었던섬 뒤에 높은 산이
진달래로 유명한 대금산이다
앞에 모래톱은 진우도 신자도 대마등 백합등이 있으며
저멀리 구덕산 기상레이다도 보이고 장림동과 무지개 공단
녹산 공단과 신호지구 신도시
타임샷으로 인증도 하고
대항 새바지와 인공동굴 자갈마당 해변
좌측은 다대지구 신도시와 낙조전망대 중안에는 다대포 해수욕장 우측은 몰운대
앞에는 명지 신도시 뒤쪽은 왼쪽부터 화명동지구 구포지구 사상지구
대항포와 저넘어 외양포
거제 대우조선을 줌인해 보지만 해무가 워낙 심해서 흔적만 ....
내려오며 뒤돌아본 영대봉
솜나물
솜나물은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토양 비옥도에 상관없이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10~20㎝이다.
잎은 길이가 5~15㎝ 정도로 표면은 광채가 많이 나며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작은 섬모들이 나 있는데,
이 섬모들이 솜털 같다고 해서 솜나물이라고 한다.
이른 봄 잎이 올라올 때는 가는 섬모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따뜻해지면 서서히 섬모가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솜나물을 처음 보면 민들레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꽃 색깔과 잎 모양이 약간 다르다. 꽃은 4~5월에 가지
윗부분에서 피며, 색깔은 흰색이지만 뒷면은 홍자색이다. 또 꽃은 가을에도 피는데, 가을에 피는 꽃은 꽃받침조각·
꽃잎이 열리지 않는 폐쇄화이다. 열매는 7~9월경에 달리고, 종자는 갈색이다.
양지꽃
조금 붐비지 않은 곳을 선택한다고 이곳으로 왔는데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고 온사람들이 많아서
주차장이 만원이라 내차는 주차도 못했는데 내려오면서 본 주차장은 자리기 비어 있네
미니버스를 이용한 간이 매점 여기서 아메리카노 한잔 2500원에 마시고 안내지도에 보니 가덕도에
국군묘지가 있어 묵념이나 하고 가려고 찾아 나선다
Lady In Red / Phil Coulter
'부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강 뚝길 벚꽃 (0) | 2020.03.24 |
---|---|
가덕도 국군묘지와 정거마을 문화 거리 (0) | 2020.03.11 |
낙동강 뚝길과 맥도 (0) | 2020.03.03 |
,부산 증권 박물관 (0) | 2020.02.29 |
몰운대와 다대포 해변 (2) | 2020.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