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부부의 정
<도미전>에서 보듯, 삶의 동반자로서 다져진 부부간의 믿음은 개루왕의 살해 위협으로도 결국 빼앗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부부에게도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위기와 이별의 순간이 수시로 찾아온다.
그건 <도미전>에서처럼 타인의 방해로 닥칠 수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방해에 의해 들이닥칠 수도 있다.
죽음에 의한 부부의 이별이 그것이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법이고, 그리하여 떠난 자와 남은 자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때, 홀로 남겨진 배우자의 슬픔은 그 무슨 말로도 위로하기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래된 무덤에서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아내가 죽은 남편을 향한 서러운 마음을 담아 적은 한글 편지였다.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붉게 하는 사연은 이러하다.
<원이 아버님께>라고 이름 붙여진 그 편지의 전문을 보자.
원이 엄마의 편지 무덤에서는 이 편지와 함께 머리카락으로 짠 미투리와 배냇저고리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원이 엄마는 남편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아 쾌유를 기원했건만, 남편은 아들 원이와 유복자를 남겨둔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배냇저고리는 뱃속에 든 아이를 위해 만들어 둔 것으로 보인다.
원이 아버님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이 늘 나에게 이르되,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셨나요?
나와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셨나요?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매번 함께 누워 당신에게 내가 이르되,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남들도 우리 같을까요?"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셨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살 수 없어요.
어서 당신 계신 곳에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은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생각 끝이 없어요.
이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따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내 꿈에 편지 보시고 하시는 말씀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거랍니다.
그러니 자세히 보시고 내게 일러주세요.
당신은 내가 밴 자식 낳거든 보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리 훌쩍 가셨으니,
자식이 태어나면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나요?
아무래도 내 마음 같을까요?
천지가 아득한 이런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있을 뿐이니,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안타깝고 끝이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보여 주시고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다만 당신 볼 것을 믿고 있으니 이따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그지없어서 이만 적습니다.
위에 인용한 글은 경북 안동에 살았던 고성이씨 이응태(李應台, 1556〜1586)라는 사람의 묘에서
발견된 한글 편지이다.
편지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이응태의 부인, 곧 원이 엄마이다.
그녀는 먼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아픈 마음을 편지에 적어 죽은 남편의
품에 고이 넣어 묻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런 편지를 읽으며 감동받는 것은 그 사연도 애틋하기 그지없거니와, 편지가 쓰인 시대가 참으로
뜻밖이기 때문이다. 흔히 유교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 아래에서 살다간 부부간에는 다정다감한 인간적
정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위의 편지글은 우리의 통념을 단박에 깨뜨려 버리고 만다.
그때의 부부도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허물없는 애정 표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죽음을 넘어 영원히 함께하고픈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가득 쓰고도 모자라 위 여백까지 빽빽이…남편 호칭은 ‘자내’
한지 오른쪽 끝에서부터 써내려간 편지는, 왼쪽 끝까지 가득 채우고 모자라 위 여백으로 이어진다. 그러고도 모자라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다시 글 첫머리 쪽 여백에 거꾸로 씌어 있다. 뭉클해져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조규복 학예연구사가 냉정하게 설명했다.
“여백을 활용해 쓰는 이런 편지 양식은 당시로선 일반적인 것이죠. 첫째 종이가 귀하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둘째 쓴 이의 마음, 즉 할 말이 이토록 많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백까지 활용해 글을
꽉 채웠으면서도, 읽는 이에게 풍성한 느낌을 주면서 지루하지 않게 읽히도록 한 방식이기도 하다.”
더 감동적인 건 함께 출토된 미투리다. 미투리란 삼껍질 등을 꼬아 삼은 신발이다. 여기서 나온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삼은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원이 엄마의 것으로 추정된다.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
한지엔 한글 편지가 적혀 있으나 훼손돼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등 일부 글귀만 확인된다.
조 학예사는 “남편이 병석에 누운 뒤 쾌유를 빌면서 삼기 시작한 미투리”라며 “끝내 세상을 뜨자 함께 무덤에
넣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응태가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
무덤에선 아들 원이가 입던 옷(저고리)과 원이 엄마의 치마도 나왔다. 형(이몽태)이 동생에게 쓴 한시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와 형이 쓰던 부채에 적은 ‘만시(輓時)’도 있었고, 이응태가 부친과 주고받은 편지도 여러 통 발견됐다.
발굴된 의복은 40여벌에 이른다.
부친과 나눈 편지엔 전염병 관련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당시 전염병을 앓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건 이응태가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고 조 학예사는 말했다.
“당시(임진왜란 전)엔 결혼하면 시댁살이와 함께 처가에 가서 사는 것도 일반적이었습니다. 남녀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걸 뜻하죠. 임란 전엔 재산 분할도 아들·딸 차별이 없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편지에도 드러나 있다.”
원이 엄마의 편지에 나오는 남편에 대한 호칭이 ‘자내’다. 지금은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자네)으로 바뀌었지만,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허리띠외두발
유품들
이응태의 무덤은 1998년 우연한 계기로 발굴됐다.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지정으로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안동대 박물관쪽의 지표조사가 계획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동 어느 문중에서 입향조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덤들을 파다가 명정(무덤에 덮는 천)에 ‘철성 이씨’라 적힌 무덤을 발견하고 고성 이씨 문중에 알렸다고 한다
(고성 이씨는 본디 철성 이씨로 썼다). 발굴은 고성 이씨 문중 입회 아래 진행됐고, 무수한 부장물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발굴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조규복 학예사가 말했다. “자료 정리중 이응태란 이름이 나와 고성 이씨 족보를 찾았죠
. 그러나 이응태란 이름엔 생몰미상, 묘 미상으로 적혀 있었어요. 결국 한글편지와 한시 등을 통해 생몰연대 등을
비롯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쓴 한글편지의 “병술 유월” 그리고 형이 쓴 시의 “아우와 함께
부모를 봉양한 지 31년”이란 대목으로, 이응태가 1556년 태어나 서른 한살의 나이에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원이 엄마상
월영교
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 간직되어 있는 곳입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지은
지어미의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기 위하여 미투리 모양를 담아 건설한 인도교입니다.
이응태 할머니 일선문씨의 미라
이응태의 형몽태씨가 눈물로 쓴 시
원이엄마의 저고리와 이응태의 할머니 일선문씨가 입었던 주름치마
이응태가 살던 귀래정
귀래정은 이굉(1414∼1516)이 조선 중종 8년(1513)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온 후 지은 정자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글의 뜻과 너무나 닮아 그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이굉은 25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권력 다툼에 걸려들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귀래정은 앞면 2칸·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는 이현보·이우·이식·윤훤 등 30여명의 시를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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