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염전(蘇萊鹽田)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경기도 시흥 방산, 포동, 월곶동, 장곡동에 있던 염전이다
조선총독부에서 건설한 제4기 염전 중 하나로, 1935년부터 1937년에 걸쳐 준공되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도 상당한 소금을 생산하였으나, 제염업의 사양산업화에 따라
염전 운영의 채산성이 떨어진 끝에 1996년 7월을 마지막으로 폐쇄되었다.
지금은 인천과 시흥 쪽 일부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고, 나머지 부지는 주식회사 성담에서
소유하고 있다.
폐허가된 소금창고
칠면초
옛 염전의 흔적들
염전은 천일염전, 소금못 염전, 소금강 염전, 소금호 염전, 소금벌 염전, 돌소금 염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천일염전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 등으로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데, 생산지에 따라
그 영양성분과 맛이 다르다. 또 천일염전은 동남아시아에서 지중해 연안 및 라틴 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염전방식에는 기후조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입지에 제약을 받는다.
천일염전의 종류는 염전의 축조된 저수지 지반 높이의 차이에 따라 고지식(高地式) 염전과 저지식(低地式)
염전으로 나눈다. 고지식 염전은 염전 증발지 마지막 단의 지반 높이보다 낮게 축조되어 있는 형태를 말하고,
저지식 염전은 증발지 최상단 지반 높이보다 높게 축조된 형태를 말한다. 또 각 증발지의 낙차의 차이에
따라 계속낙차와 역낙차의 흐름에 따라 유하식(流下式) 염전과 급상식(汲上式) 염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소금못 염전은 과거에 바다였던 지역이 육지화 되어 소금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곳에 웅덩이를 파서 물을
부어넣은 다음 흙속의 소금이 녹도록 하여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소금을 채취하는 것을 말한다.
또 소금강 염전은 소금못과 같이 흙속의 소금기가 지하수에 의해 녹아 건조지역의 강바닥에서 소금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소금호는 지각변동으로 바다가 육지화 되어 융설수에 의해 땅속의 소금기가 녹아 산기슭을
흐르면서 소금호를 형성하는데 소금물이 계속 유입되어 점차 농도가 짙어지면 호수의 바닥에
소금결정들이 쌓이게 된다. 이와 같은 소금호 염전은 중국,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의 건조지역,
미국과 남아메리카의 중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금벌 염전은 소금호의 수분이 모두 증발되면 소금호 부근에 소금벌을 형성하는데,
지각변동에 의해 소금이 뒤덮인 산이 되기도 한다. 소금호가 지각변동에 의해 약 2억년 동안 퇴적층을
이루어 소금이 바위처럼 단단해진 돌소금 염전이 형성되는데 이는 유럽과 미국에 주로 분포한다.
소금의 역사는 원시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원시시대에는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채취하거나
해조(海藻)를 태워서 얻기도 하였는데,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염분을 함유한 물이 솟아 나와 대상(隊商)은
그것에서 소금을 얻었다. 유럽에서는 철기시대부터 암염이 이용되었고, 때로는 암염이 있는 곳에 물을
붓고 소금이 녹은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채취하기도 하였다. 또 사해(死海)나 솔트레이크(Salt Lake city)와
같은 염호에서 얻은 조염(粗鹽)을 녹여 증발시키고 정제하여 소금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소금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동이전 고구려조에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1288년(충렬왕 14) 처음으로 염전에서 세금을
거두었고, 1309년충선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도염원(都鹽院)을 두어 염분(鹽盆)을 국가에서 관장하여
직접 소금을 제조․판매하는 전매제도로 재정수입원을 삼았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의 소금 생산량은
150만 톤 이었고 소비량은 210만 톤으로 부족분은 일본, 타이완, 청나라로부터 수입하여 충당하였다.
위성류
대개 온대와 아열대, 스텝, 사막, 염성 사막과 염호(鹽湖), 해안을 따라서 자란다.
이 목의 식물은 방사상칭이고 양성화인 꽃이 특징으로, 열매가 성숙할 때까지 달려 있는 4~7장의
꽃받침잎과 꽃잎으로 되어 있다. 또한 하나의 방으로 된 씨방으로도 이 목 식물을 구별할 수 있는데
나중에 씨로 될 많은 수의 밑씨가 들어 있으며 씨의 한쪽 끝에는 술 모양의 털이 달려 있다.
이 목은 많이 진화되어 있고 버드나무목(Salicales)과 유연관계가 큰 것으로 여겨지는데 둘 모두
제비꽃목(Violales)의 이나무과(Flacourtiaceae)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관 바로 앞 염전 관찰 데크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드넓은 염전을 볼 수 있습니다.
폐 염전을 복구해 지금도 소금을 매일 생각하고 있으며, 6~9월에는 염전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염전 관찰 데크를 지나 우거진 갈대를 따라 흙길을 걸어가면 이곳의 랜드마크 풍차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통감부의 일본인 기사 나카우쿠 오쿠라(中與大藏)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라
주안간석지 약 1만㎡를 택하여 천일제염 시험 염전을 축조하였다. 지형, 지질, 기후 등
채함(採鹹)활동이 유리한 서해안이 천일제염에 적합하여 주안염전에서의 소금 제조가
성공을 거둠에 따라 1911년까지 주안에는 99정보(98.5㏊)의 염전이 조성되었다. 주안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천일염으로 천일제염 선구지가 되었다.
초창기 인천주안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의 양은 연간 720톤 가량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1918년 무렵엔 212정보(210.2㏊)에 이를 정도로 확장되었다. 이어 1921년남동 지역에
300정보(297.5㏊), 1925년군자 지역에 575정보(570.3㏊)를 조성하여 1933년에 이들 세 지역의
염전면적은 1,115정보(1,105.8㏊)에 달하여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 가량인 15만 톤을 생산하였고,
소래에도 염전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주안염전과 그 일대 풍경은 1960년대 후반
경인고속도로가 뚫리고 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1965년 우리나라의 염전 면적은 약 2,000㏊로 이 중에서 85%에 해당하는 1,664㏊가 경기만 연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즉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은 각각 603㏊와 546㏊로서 전국 염전의 58.1%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라남도․경기도․충청남도 등에 주로 분포하였다.
1985년의 염전 면적은 12,000㏊이었고, 이 중에서 전라남도에 35.4%, 경기도에 28.0%, 충청남도에
12.6%가 분포하여 경기도는 도시화로 인해 크게 줄어들었다. 전라남도의 염전은 광복 이후 민영염전으로
크게 개발된 데에서 주목되며, 섬이 많은 신안군에 60% 이상이 집중되어 있었다.
2005년 우리나라 염전 면적은 11,190㏊이었고, 2009년에는 10,502.8㏊로 전라남도가 가장 넓고,
그 다음이 충청남도, 경기도의 순인데, 경상남도에는 지목만 염전으로 되어 있다. 2010년 현재 천일제염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인천광역시, 경기도의 안산시․시흥시․화성시, 충청남도의 서산시․당진군․태안군,
전라북도의 부안군․고창군, 전라남도의 무안군․영광군․보성군․진도군․신안군으로 조합원은
모두 1,268명이고, 이들이 생산한 소금의 양은 22만 2,448톤이다. 전라남북도의 조합원 수는 1,134명이고,
생산량은 전국의 86.6%를, 생산액은 85.2%를 차지하였다.
소래염전은 일제시대 때부터 염전으로 개발되어 소래 갯골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하고
그 소금을 소래포구를 통해 경인선 협궤열차나 배로 인천항으로 옮겨 일본으로 보내졌다.
소래염전에서 생산된 질좋은 소금은 식염 등 생필품만 아니라 일제가 전쟁을 위해 화약 제조를 위한
군수품으로도 쓰여졌다.
소금을 체취하는 기구들
메꽃은 염분이 있는 곳에서도 잘 자라나 보다
오후3시 바닷물이 수로를 타고 들어오고 있다
갈매기들의 휴식을 바라보며 소래포구 어시장으로 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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