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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무의도

무의도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섬이다.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으나, 2019년 무의대교가

개통되면서 차량 접근이 가능해졌다. 다만 다리 개통 이후 교통량이 10배 가까이 늘면서 2019년 7월 29일까지

주말과 공휴일 무의도 입도 차량을 900대로 제한한다. 무의도 주변에는 실미도, 소무의도 등의 섬이 있는데

연륙교가 연결되어 있어(광명항선착장에서 소무의도)도보로 10분~15분이면 소무의도에 갈 수 있다.

큰무리선착장에서 광명항까지는 무의도 마을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소무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의바다누리길 8코스를 걸어야 한다.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소무의 인도교길'과 '명사의

해변길'을 따라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 남쪽 데크길 여기를 걷다보면 기기묘묘한 바다 암벽들을 만날 수가 있다

나는 이 데크길을 택하지 않고 물빠진 바다길을 택해서 이동을 했다

하나개 해수욕장 북쪽 해변을 줌인해본 풍경과 백사장

무의도에는 두개의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하나개 해수욕장과 사유지인 실미해수욕장이다.

특히 실미해수욕장에서는 썰물 때 바닷길이 열려 실미도까지 걸어갈 수 있다.

또 하나개해수욕장에서는 호룡곡산, 국사봉 등의 등산까지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호룡곡산은 안개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썰물에 바다체험을 하는 듯 

해변이 기기묘묘한 바위군들이 눈길을 끈다

호룡곡산과 하나개 해변은 원추리 군락지인 듯 곳곳에 많은 원추리 꽃이 보인다

바위에 덕지덕지 붙은 굴껍질

아주 작은 모래사장에 사는 게가 멋진 그림을 그려 놓았네

많은 동물 형상을한 해식바위들 하나하나 뜯어보면 아름답지 않은 바위가 없다

큰기대를 하지 않고 살방살방 걷든 해변 모래톱과 뻘 갈수록 아름다운 바위군을 보니

신발에 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만물상 같은 바위들에 눈이 팔려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걸었다

대나물

참나리도 보이고

해식동굴

절벽의 약한 부분이 파도의 작용으로 침식되며, 파도의 수압에 의해 확장된다. 파도의 압력은 동굴의

지붕을 통하여 보통 숨구멍(blowhole)이라고 하는 구멍으로 비말을 뿜으며 사라진다. 파도 내의 수력학적

압력변화는 틈이 생겨서 약해진 절벽면을 갈라놓는다. 파도에 의하여 운반된 암편(岩片)과 모래는 약한

암석물질들을 침식시킨다. 이와 유사한 종류의 동굴은 실트와 자갈을 운반하는 물의 기계적 작용에 의해

하천이나 강둑에도 형성된다.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

송창식의 무대도 보이고

해변에는 방갈로 들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

하나개 해수욕장
섬에서 가장 큰 갯벌이라는 뜻의 하나개해수욕장은 선착장에서 차로는 10분 정도면 도착한다.

밀가루처럼 입자가 고운 모래가 깔린 갯벌 앞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황해도 장산곶까지 보일 정도로 경관이 좋다. 바닷가에 원두막식으로 지은 방갈로에 숙소를

정하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과거 이 곳에서 촬영되어 인기리에 방영된 [천국의 계단]

세트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미해수욕장
실미 해수욕장은 2km에 달하는 초승달 모양의 해변 모래사장과 100여년씩 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썰물 때에는 실미해수욕장과 실미도 사이의 갯벌에는 아직도 낙지가 집을 짓고 민챙이와

칠게, 고동이 살아숨쉬는 등 갯벌이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울창한 노송숲을 사이에 두고 산림욕장과

텐트야영장 등이 있다

실미 해수욕장은 썰물 때는 실미도로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길이 마련 돼 있다

오른쪽이 실미도다

1968년 ‘1·21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1968년 4월 1일 북한침투작전을 위해 창설된 실미도 부대에서

3년 4개월 동안 훈련을 받아 오던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 23일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여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 민간인, 공작원 등 28명이 사망하고, 이후 생존 공작원 4명이 사형 집행되었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하는 이른바 ‘1·21사태’ 후 정부의 대북 강경 대응 방침에 따라 대북특수공작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1968년 4월 1일 중앙정보부의 ‘특수공작 지시’로 「공본작전비 제91호(1968.4.1)」에 근거해 창설된 실미도

부대는 ‘209파견대’, ‘684특공대’, ‘오소리공작대’ 등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3년 4개월간 특수공작훈련을 받았다.

실미도 부대원들은 본래 ‘특수공작 기본계획서’에 의해 사형수로 구성될 예정이었으나 법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민간인으로 대체되었다. 중앙정보부는 예산지원과 정기적인 훈련 상태 점검을 담당하였고, 공군이 부대

운영과 훈련을 책임졌다.

 

실미도 사건은 혹독한 훈련과 열악한 보급 및 보수 미지급에 불만을 품은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경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12시 20분경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던 중 인천에서 육군과 최초의 총격전을 벌인 후 두 번째 버스를

탈취해 오후 2시 15분경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이들은 저지하는 군·경과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다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부대원 대부분이 사망하였다.

군·경과 실미도 공작원들과의 교전 결과, 경찰 2명과 민간인 6명, 그리고 공작원 20명이 사망하고, 생존 공작원

4명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72년 3월 10일 사형 집행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이기에 실미도를 꼭 보고싶었다 들어가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으나 혼자가 아니기에 포기했다

실미도 해수욕장 풍경

 


http://youtu.be/jDPrBBzq-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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