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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통도사 매화 그리고 복수초

블친님께서 올려놓은 홍매화와 수양매 그리고 복수초를 보고 마음에 동요를 느껴

금년에 벌써 세번째 통도사에 갔다

계곡가의 느티나무와 벚나무들은 아직 깊은 겨울잠을 자고 있고 계곡의물은 바람에

파문을 일으키며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래도 소나무만은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고 세월의 깊이만큼 의젖하게

예나 지금이나 그자리에서 독야청청 울울창창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섬성만월교는 그많던 관광객들도 날씨 탓인지 보이지 안고 양쪽 가이드처럼 놓여있는

화분의 꽃들은 찾아볼 수 없고 황량하기만 하다

삼성 반월교를 건너 성보박물관 앞의 작은 나무의 홍매화는 피빛처럼 붉은 색으로 막피어나

있는 듯 없는 듯 자장매와 극락전 앞의 매화에 치여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주문 앞의 수양매 아직 몇송이 피어 있지만 아래에서 보듯 눈이 부실정도로

백옥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손병흥 시인은 이렇게 표현을 했다

 

매화꽃 필 무렵 손병흥

작은 눈물 고이듯 봄빛어린
찬바람 불어오던 긴 겨울지나
이른 봄 고운 나목마다 망울져


깊은 시름 짙은 향기로 물린 채
절로 봄소식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못내 수줍은 듯이 다가선 그 자태


봄바람에 실려 온 시린 그 마음마저
마른 나뭇가지에 고결한 향연 펼쳐낸
미처 눈이 다 녹아내리기도 전에


고운 눈꽃처럼 피어난 설중매처럼
이내 흠뻑 매화향기에 취해보는 봄날 

 

극락전 앞의 싱싱한 매화는 눈이 부시다고 하기 보다 오히려 시릴정도의 고운자태

사진을 찍기 위해 정좌를 하고 계시는 스님의 기품은 너무도 고명해 보인다

방향과 노출에 따라 색깔의 변화가 있다

극락보전 앞의 매화는 자장매 보다 늦게 피어서 인지 훨 싱싱하게 보인다

매화꽃 필 적에 / 손병흥

고독과 그리움이 쓸쓸함으로

묻어나는 설중매
한겨울 추위 속 피어나는

 

한 송이 매화 아련함
세찬바람 빗줄기에 젖고서도

 눈처럼 해맑은 모습

밤새내린 하얀 눈밭에

가장 먼저 발자국 남기고픈
온통 차갑게 스며드는

 

한기마저 멋진 풍경되어버린
점차 속삭이는 봄기운이

조금씩 완연해져가는 나날들

스치는 바람결에 전해지던

설렘 맑은 향기 고운 꽃망울
따스해진 양지 녘 햇살에

 

하나둘 꽃잎먼저 피워내는 봄꽃
꽃 중의 꽃 흰색 꽃이 피는

흰 매화 붉은 꽃 피우는 홍매화

 

꽃을 피운지 오래여서 일까 아니면 300년이 넘은 늙은 매화라서 일까

싱그러움은 이제 찾을길 없고 조금 초라한 모습으로 보인다

화가와 홍매화 손이시려 붓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붓놀림도 무디어 지는 예감이 든다

그 많은 진사들이 분주히 오가며 벼라별 음을 다 내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붓놀림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선승의 불경소리가 조용한 산사의 정적을 깨우고 있다

개산조당은 해장보각의 조사문이며 해장보각에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 율사의 영정과 고려 대장경이

보안되어 있다.해장보각 내부에 모셔져 있는 자장 율사의 영정은 순조 4년(1804년)에 그려진 것이다.

 

개산조당은 전각 정면에 있는 독립된 3칸의 조사문으로, 가운데 칸은 높은 솟을삼문 형식이다.

 양반가의 대문은 보통 3칸인데, 초헌 등의 수레가 드나들 수 있도록 중앙의 칸을 높게 만든다.

 궁궐이나 사당 같은 중요한 건물도 출입문이 삼문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개산조당은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해장보각의 부속 건물인 통도사 개산조당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유교 건축의 사당 형식을 취하고 있다.

봉발탑

 

봉발이란 스님이 밥을 얻으러 다닐 때 들고 다니는 그릇이란 뜻입니다.

이는 발우(鉢盂 : 부처 또는 비구가 소지하는 밥그릇을 말함)를 모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 하고서 평생 동안 가지고 다닌것이 헌옷 한 벌과 밥그릇 하나뿐이었고 평생을

무소유로 살았으니 입적하실때 수제자에게 물려줄 것 또한 밥그릇 밖에 없었으니 부처님이 입적을

하기 전 제자인 가섭존자에게 "발우를 보관하고 있다가 미륵불이 출현하면 물려주라"는 유언을 하며

발우를 맡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륵불이 출연하면 물려주라는 부처님의 유언에 따라 석조발우가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용화전 앞에 설치된 것입니다.

보이시죠? 봉발탑 뒤로 미륵부처를 모시고 있는 용화전의 현판이.....참! 미륵보살(彌勒菩薩)을 모르시는

분을 위하여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 세상에 나타날 부처이며 용화수 아래에서 석가모니가 제도하지 못한 모든 중생을 제도할 부처로

수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큰스님이 입적할 때 받는 발우를 제자로서는 큰 영광으로 알았다고합니다.

다시 돌아 나오며 극락보전 옆의 홍매화 다시 담아 본다

세월의 흔적

통도사 일주문에 눈도장 찍고 자장암으로 향한다

자장암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수도 하던 곳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회봉대사에 의하여

중창되었다고 하며, 1963년 용복화상이 중수하였다. 법당은 암벽을 의지하여 서향하였고 그 옆에는

1896년에 조각된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있다. 법당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가 나오는데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소위 금와공이 있어 유명하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하권 승유어급현화금와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명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 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함속게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간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 말한다.” 현재 자장암에는 관음전과 수세전,자장전이 위치하며,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과 영산 회상도,신중탱 등이 봉안되었다.

자장암 마애아미타여래삼존상(1896년 제작)’은 마치 불화의 초본을 바위에 옮긴 것 같은 조각으로서

희소성의 가치가 크다.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1936년 제작)’과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1935년 제작)’은 한국 근대 조각의 대표 작가인 김복진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근대기 신재료인 석고를 이용한 새로운 기법으로 제작한 대표적인 사례로 전통성과

근대성을 두루 갖춘 우수한 불상 작품이다.

양쪽 협시보살

 

부처님 머리는 파마를 한 것처럼 풍성하고 버들잎 모양의 눈썹에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다.

가운데가 옴폭한 바위 정면에 일정한 두께로 얕게 새겨져 있는데, 좌우에는 두 분의 보살이 함께 새겨져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림을 잘 그렸던 화사가 부처님과 두 보살을 석필(그림 그리는데 쓰는 기구)로

바위 면에 초안을 그리고 여기에 조각공이 윤곽을 따라 새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부처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높이가 4.54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부처님은 결가부좌한 상태로 전체적으로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들어 올린 아미타인(阿彌陀印)을 취하고 있다.

야외에 계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도록 본존불과 비슷한 재질의 암석으로 만든 낮은 불단도 있다.

부처님의 광배 부근에 범자(梵字, 산스크리트어)를 새겨 넣은 점도 특이하다.

이 부처님은 당시 아미타여래삼존상 도상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손꼽힌다.
출처 : 불교신문

관음전

금와보살은 지금부터 1400여년전 신라시대 진평왕 당시,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이곳 자장암 에서 수도를 하던 중, 얼굴이 금빛이고 생김이 마치 거북을 닮은 개구리를 발견하고

이를 기히 여겨, 암자 석벽에 직접 구멍을 뚫어 언제까지나 죽지말고 자장암고를 지키라는 불가사의한

수기를 내렸다 하여 '금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설은 설일뿐

14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해내려오는 설화에 그치지 않고 자장율사의 도력이 미쳐서 인지,

율사의 환생체인지는 알수 없으나, 현재까지 그 생김이 같은 개구리가 생존하고 있으며 쉽게

사람들의 눈에 비치지 않지만, 한번 나타나면 2~3일씩 꼼짝을 하지 않고 참선을 한다고 한다.

  자장암을 찾는 불자들은 금와보살을 접하면 이를 길조로 여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금와보살은 꼬박꼬박 자장암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 불자들도 평생가야 한번 볼까말까할 정도로 대하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오봉산 줄기

영축산 정상부

함박등과 영축산 능선 영축산정상부

솔방울이 많이 달린 모습

자장암에서 내려오며  nami님께서 다녀오신 보타암에 들려

복수초도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4~5월에 다시와서 야생화들을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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