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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보길도 마지막날

보길도에서 6박7일 일정이 끝나는 날 아침을 먹고 서둘러 신양진항으로 왔다

오늘은 농협 카페리호를 탄다 올 때는 장보고함을 탔었는데 배의 크기는 똑같은 것 같다

해남땅끝마을과 노화도 신양진항을 오가는 농협 카페리호

뾰쪽 봉우리가 보이는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도 보이고 고흥에 우주전망대도 보이는 것 같다

가는도중에 저기 달마산에 있는 미황사도 들렸다 갈 것이다

저기 보이는 봉우리는 완도상왕봉 같기도 한데 확실한 것은잘 모르겠다

잘있거라 신양진항이여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달마산 미황사에 왔다 갈길이 멀기 때문에 잠시 휘리릭 돌아보고 나와야겠다

전에 달마산 오르면서 자세히 돌아봤던 미황사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1692년(숙종 18)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경덕왕 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돌로 된 배가 사자(獅子) 포구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의조가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 올라보니 금의인(金衣人)이 노를 잡고 있고 큰 상자 안에 경전·비로자나불상·문수보살상·보현보살상·

40성중·53선지식(五十三善知識)·16나한·불화 등이 꽉 차 있고, 배 안에 있던 바위를 깨니 검은 황소 1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인도 국왕으로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으나 금강산에 절이 가득해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곳의 지형이 금강산과 비슷하므로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고 했다.

이에 다음날 소 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드러눕자

그곳에 통교사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지은 절이 바로 이 절인데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01년(선조 34)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다.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제947호)·응진당(보물 제1183호)·오백나한전·명부전·요사채 등이 있으며,

사적비와 여러 점의 부도가 전한다.

미황사 사천왕문 안에 들어선 신작 사천왕상들. 왼쪽이 남방 증장천왕이며 오른쪽은 동방 지국천왕.

두 신상의 발치에서 토끼와 용이 각각 상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험상궂은 얼굴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기존 사찰의 사천왕상들과는 전혀 다른 용모와 자태를 지녔다.

적송으로 짠 사천왕상은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적인 불신의 도상으로 만들었다.

백제 장인들이 건너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일본 나라현의 고찰 호류지(법륭사) 금당에 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사천왕상 도상을 주된 본보기로 삼았다. 호류지 사천왕상은 보관을 쓴 문인풍의 단아한 옷차림을 한 입상이다.

 

악귀 대신 동물이 발치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사학계에서는 현재 국내에는 없는 삼국시대 사천왕상의

유력한 원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발아래엔 미황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검은 소,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발밑에는 서부도전 부도에 조각된 토끼, 광목천왕 발아래엔 대웅전 기둥 위의 용,

다문천왕 발아래엔 동부도전 부도에 새긴 원숭이를 조각했다. 친근한 동물이 사천왕을 받들어 공덕을

짓는 모습이다.

새 사천왕상은 고대 선조들의 사천왕상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보겠다는 주지 금강 스님의 발원에서 비롯했다.

스님은 “1996년부터 실상사 홍척국사탑 같은 이 땅 각지의 옛 불탑에 새겨진 문양을 탁본 작업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선조들이 인간적 풍모로 새긴 사천왕상을 보면서, 현시대에 맞는 사천왕상을 구현하겠단

소망을 품었다는 것이다.

윤장대는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 때 쓰던 팔각형의 불경궤이다.

티벳의 마니차처럼 돌리기만 해도 불경을 읽은 것과 똑같은 효험이 있는 글자를 모르는 민초들을 위한

기원의 도구였다.

전통차집

달마산미황사 일원

해남 달마사 미황사 일원은 미황사를 포함하여 달마산 정상까지 수려한 지형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2009년에

명승 제59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현산면·북평면·송지면 등 3개 면에 접하고 있는 달마산은 높이 489m로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약 28㎞ 떨어져 있으며, 땅끝 가까이에 우뚝 솟은 산이다. 미황사는 749년(경덕왕 8)에

의조(義照)가 창건한 신라시대 고찰이다.

 

달마산은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일어선 산이다. 현산면이 머리에 해당된다면 북평면은 등에,

송지면는 가슴에 해당하는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이 산의 줄기는 땅끝의 사자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마산 일대의 암석단애는 달마산 북서쪽에 위치한 바람재로부터 달마산-귀래봉(471m)-도솔봉(421m)에

걸쳐 나타나는데, 길이가 약 6~7㎞에 달한다.

 

암석단애를 구성하는 기반지질은 변성퇴적암류인 덕룡산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런 기반암으로 암석단애를 이룬 곳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하다.

산 능선부를 점하는 변성퇴적암 계통의 규암질 암석단애는 풍화와 침식에 강해 급경사의 암봉을 이루는데,

마치 공룡의 등줄기를 방불케 할 뿐만 아니라 암색 또한 흰 빛을 띠고 있어 수려하고도 기묘한 경관을 나타낸다.

 

달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대한민국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다시 지었고, 영조 30년(1754)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미황사 뒷산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대한민국 육지의 끝을 표시한 것이다.

 

미황사 자하루(紫霞樓) -

자하루는 대웅보전과 마주보며 대웅전과 직선상에 서 있는 누각이다. 2001년에 다시 지었다고 하며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자하루를 누하진입하여 올라서면 왼편에 범종각과 청운당(靑雲堂)이 있다.

자하루의 초석은 자연석을 전혀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초석은 응진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 순서로 보면 응진당을 건립할 때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했고

2001년에 자하루를 새로 지으면서 그대로 자연석을 사용했다고 보면 되겠다.

달마대사상

종무소

뒤에 보이는 산이 달마산

지장보살님을 모신 곳이 명부전이고 미황사의 명부전은 대웅보전 옆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명부전 안에 있는 10대 시왕을 조각해 모신 사람은 '자화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유명한 공재 윤두서다.

그가 명부전에 10대 시왕을 모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절 근처에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 10대 시왕을 조성했는데 그 후 신기하게도 10명의

아들을 보았다 한다. 더욱 믿지 못할 일은 시왕 중 네 번째 시왕의 두 눈 크기가 실수로 서로 다르게

조각되었는데 그의 넷째 아들도 눈 크기가 달랐다 한다. 

 

1. 진광대왕(秦廣大王)
일 월을 상징한 관을 쓰고 손에 홀을 들고 문서, 벼루, 먹, 붓통 등이 있는 책상을 대왕의 앞에 그린다.

형벌은 칼산에 떨어진 도산(刀山) 지옥의 무서운 광경을 묘사한다.
2. 초강대왕(初江大王)
오른손에 홀을 받쳐 들고 있고 형벌은 성벽 밑에 끊는 물에 담기는 화탐(화탐) 지옥의 모습을 묘사함
3. 송제대왕(宋帝大王)
왼손에 홀을 잡고 오른손으로 기록문서를 점검하고 있다. 형벌은 얼음 속에 처넣는 한빙(寒氷) 지옥의 광경을

그린다.
4. 오관대왕(五官大王)
두손으로 홀을 잡고 앉아 있고 책상에 업경대와 두루마리, 책, 벼루 들이 진열되어 있다.

형벌은 칼로 몸 베기인 검수(劍樹) 지옥의 무서운 광경이 묘사됨

명부의 시왕 중에서도 우두머리라고 하는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 째 되는 날이라 하여

사십구재를 중요시한다. 이 명부전은 지장신앙과 명부시왕 신앙이 결합되어 불교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나타나게 된 이유이다.

5. 염라대왕(閻羅大王)
머리 위에 책을 얹은 관을 쓰고 양손으로 홀을 잡고 있다. 형벌은 발설(拔舌) 지옥으로 혀를 뽑아 쟁기질하는

모습과 칼을 쓰고 있는 죄인의 모습이 묘사된다.
6. 변성대왕(變成大王)
일광, 월광을 붙인 관을 쓰고 녹의 위에 주홍 대의를 입고 두 손에 홀을 받쳐 들고 있다. 형벌은 독사가

몸 감기인 독사 지옥의 무서운 광경을 묘사한다.
7. 태산대왕(泰山大王)
오른손에 수염을 잡고 왼손에는 홀을 잡고 산수화 병풍 앞에 바르게 앉아 있고 형벌은 톱으로 몸 자르기인

거해(거해) 지옥의 장면이 묘사된다.
8. 평등대왕(平等大王)
왼손으로 수염을 잡고 오른손으로 홀을 잡고 업경대 앞에 책을 펴 놓고 있다.형벌은 달구어진 쇠판에 올리는

철상(鐵床) 지옥을 묘사한다.
9. 도시대왕(都市大王)
일광, 월광 위에 책을 올린 관을 머리에 쓰고 주홍 대의를 입고 오른손을 수염을 잡고 왼손에 홀을 잡고 중앙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형벌은 바람길에 앉히기인 풍토(風土) 지옥의 무서운 광경이 묘사된다.
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오른손에 긴 장검을 세워 들고 왼손으로는 수염을 잡고 있다. 머리에는 털 투구를 메고 목에는 하얀 항건을 쓰고

주홍 가사 위에 갑옷을 입었다. 좌우에 녹사 판관, 사자, 귀왕 들이 배열하고 아랫부분에는 흑암(黑暗) 지옥의

성곽 광경이 묘사된다

삼성각

미황사 만하당 

미황사 만하당은 응진당 바로 동편에 위치하며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세심당에는 "미수(麋壽)"라는 편액미수는 '큰사슴처럼 오래 살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 시대에 이 미수(麋壽)라는 글씨를 가지고 회갑 등을 맞이하는 분에게"큰 사슴처럼 장수하세요"

라는 의미로 선물을 하곤 하였다고 한다.

세심당

세심당(洗心堂) - 대웅전 앞마당 동편에 위치한 세심당은 대웅전 앞마당을 두고 종무소와 마주보고 있는

형태이고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ㄴ'자로 되어 있다. 세심당과 일심관은 마주보고 있는 형태인데 일심관은

‘ㄱ'자로 되어 있다.

이렇게 달마산 미황사를 돌아보고 서울까지 가야할 분들 때문에 포기 하려다 

잠시만 둘러보자 해서 해남 대흥사로 왔다 나는 대흥사에 여러번 왔기에

미련이 없는데 처음 오는 분이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미황사에는 단풍이 별로던데 여기 대흥사에는 주차장부터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륜산에 오른지 5~6년 되는데 그사이 정상에는 데크시설도 보인다

저기 두륜산을 오른지도 5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대흥사 연못

초의 대선사상
초의선사는 조선 정조10년(1786) 에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한 후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40여 년간 수행하면서 선 사상과 차에 관한 저술에 몰두하여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특히 당시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대선사이자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으로서 지금까지 추앙을 받고 있으며 시, 서, 화에 능통하여 5절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 등 당대 최고의 거유 석학들과 깊은 교류를 통하여

도교는 물론 유교 등 범서에도 능통한 분이었다. 1866년 80세에 입적하였으며, 저서로는 《초의집(草衣集)》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이선내의(二禪來義)》가 있다.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지은 차서(茶書)인 《다신전(茶神傳)》이 있다. 다신전의 내용은 찻잎따기, 차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사찰을 돌아보는 사이 나는 이렇게 단풍을 보며 사진찍기에 바쁘다

대흥사 전경과 두륜산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사천왕문(四天王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이곳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진 문인데 이곳 대흥사에서는 사천왕 대신에 좌,우에 동자상을 배치한것이 특이하다.

https://blog.daum.net/kts450/7397066

 

해남 대흥사

      11월 14일 두륜산 산행을 마치고 대흥사를 둘러봤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 가운데 산행중에 사진기에 물이 들어가 습기가 차서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었으며 화질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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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

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祀)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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